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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드컵 人터뷰5 -서정원下] 오랜 현역생활... 철저한 몸 관리

정민건TV 2009. 11. 11. 11:58

 

 

 대한축구협회(KFA) 홈페이지에서는 DAUM과 공동 기획한 '월드컵 특집 릴레이 人터뷰'를 남아프리카 공화국(이하 남아공) 월드컵이 열리는 내년 6월까지 격주로 게재합니다.

 

 '월드컵 특집 릴레이 人터뷰'는 2010년 남아공월드컵을 준비하는 대표팀과 대표팀 경기의 홍보를 위해 국내 최대 인터넷포털 운영사이자 KFA 공식후원사인 DAUM과 함께 기획하고 운영하는 홍보 프로그램으로서 한국축구의 국민적 붐 조성을 꾀하고자 하는 취지를 담고 있습니다.

 인터뷰 대상은 월드컵과 관련된 인물들이며, 현 대표팀 선수들을 비롯해 추억의 스타, KFA 행정인, 역대 월드컵대표팀 감독 등이 릴레이 인터뷰에 참여할 예정입니다. 특히 KFA 및 DAUM 홈페이지를 통해 축구팬들의 질문들도 수렴해 궁금한 점들을 해소시켜드립니다. 인터뷰는 KFA 홈페이지와 DAUM 홈페이지에 기사와 동영상으로 게재됩니다.

 


 

* 99년부터는 한국에 복귀해 수원에서 2004년까지 5년의 시간을 보내셨습니다. 다시 돌아온 K-리그, 그리고 수원이라는 클럽은 어땠나요?

- 원래 프랑스에서 4년 계약을 했는데 1년 2개월 정도 뛰었고, 팀에서는 나를 팔지는 못하겠고 임대를 하겠다고 하더라고요. 스위스 리그로 가라는 겁니다. 그래서 당시 '이적하겠다'는 뜻까지도 전했죠. 그러던 찰나에 친정팀이었던 안양 LG에서 '들어오라'고 러브콜을 보냈어요. 그 때 수원 삼성에서도 저를 원했고요. 저는 국내 복귀 조건으로 1년 후 다시 해외진출을 다시 하는 조건을 달았고, 결국 모든 조건을 충족한 수원 삼성으로 거취를 정했죠.

그런데 수원 삼성에서 뛰다가, 99년 하반기에 십자인대가 끊어졌어요. 다시 해외로 나오려고 준비도 했고, 조율도 했는데 십자인대가 끊어진 거예요. 아쉬웠죠. 지금 생각해도 타이밍이 잘 맞지 않았다는 부분이 항상 아쉬웠습니다.

 

* 5년이란 시간이 결코 짧은 것은 아니지만, 팀의 레전드가 되기에는 다소 짧은 느낌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수원 팬들로부터 레전드로 칭송받는 이유가 무엇이라 생각하시는지요?

- 십자인대가 끊어진 이후 생각을 해봤어요. 그때는 이미 나이도 좀 들었던 때이기도 해서 수원 삼성과 5년 계약을 했어요. '이 팀이 나를 믿어주니 나도 이곳에 모든 걸 걸겠다'는 마음으로 뛰었죠. 수술을 받고 들어온 후 정말 열심히 했죠. 주장도 했고, 플레잉 코치를 하면서 팬들과의 교감도 많았어요. 사실 팬들이 정말 중요하거든요. 세계 어디든 그렇지만, 선수에게는 굉장히 중요한 존재에요. 선수들은 열심히 뛰어 보답하는 게 보답하는 방법이고요.

동료들한테는 미안했지만, 제가 서포터즈 '그랑블루'가 주는 '올해의 선수상'을 3년 연속을 타게 됐어요. 서포터즈가 주는 상을 여러 번 받으면서 애정이 더 생겼죠.

 

* 한국에서 열린 2002 월드컵에 참가하지 못한 점이 아쉬우셨을 것 같습니다. 여러 네티즌들이 관련 질문을 하셨는데요. 히딩크 감독 시절인 2002년에 한 차례 대표팀에 소집된 적이 있지만, 평가전에서 출전을 안 시키더군요. 그때 느낀 심정과 최종명단에서 떨어졌을 때의 느낌은 어떠셨나요? 당시 국내에서 좋은 활약을 펼쳤는데 말이죠. (메롱바가 좋아님 淸海津님 別님)

- 히딩크호 1기부터는 소집이 됐었죠. 하지만 앞서 말한 대로 십자인대가 끊어져 제 컨디션을 찾기 힘든 상황이었는데 '내 몸이 정상이 아닌 상황'에서 소집이 된 겁니다. 히딩크호에서 5기까지 소집이 됐다가 결국 대표팀에서 나왔죠. 하지만 이후 AFC 아시아클럽선수권에서 두 골을 넣고, 우승을 차지하면서 제 컨디션도 좋아졌어요.

몸이 좋아지니 다시 대표팀에 소집이 됐고 언론에서도 많이 출전을 예상했는데, 당시의 두 경기에서 모두 못 뛰었어요. 소집 후에 소속팀에 복귀하니까, 당시 수원 감독이던 김호 감독님이 너무 화를 내셨어요. 몸도 괜찮았고, 관록 있는 선수였는데 차출해 놓고 한 경기도 못 뛰게 한 데 대해 축구협회에 '앞으로 데려가지 말라'고 화를 내셨죠.

결국 그 뒤로 대표팀에 못 들어갔어요. 만약 제가 나이가 어렸으면 대표팀에 합류하고 싶다는 욕구가 컸겠지만, 저로서는 스스로를 컨트롤 할 수 있었던 나이였고 월드컵도 나가봤기 때문에 큰 미련은 없었습니다.

 

* 이후 다시 오스트리아로 건너가셨습니다. 적지 않은 나이에 다시 유럽행을 결심하게 된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저도 나이가 적지 않다는 생각은 했어요. 수원과의 5년 계약이 끝난 후의 목표가 있었어요. 제가 앞으로 지도자를 하려고 생각했었고, 그것을 위해서라도 유럽에 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 유럽으로 나가 깊숙이 느끼고 오자는 마음을 먹었는데, 당시 수원의 마르코 페차이 코치가 '아직 몸이 괜찮은데 더 뛰지 않겠냐'는 제의를 했는데, 저도 좋았죠. 그 나이에 나가서 잠깐이라도 운동을 더 해가며 유럽을 느끼는 것도 좋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유럽에) 나를 불러줄 팀이 있겠느냐는 생각도 했는데 페차이 코치가 전화를 해보더니 '바로 오라고 한다'고 하더라고요.

계약이 끝나니 수원에서도 코치로 다시 계약을 하자는 제안을 했죠. 하지만 제 뜻을 전하고 유럽으로 향했습니다. 수원 구단을 설득 한 후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로 갔죠. 맨 처음에는 6개월만 뛰며 공부할 곳을 찾자는 생각을 했는데, 몸이 괜찮은 거예요.(웃음) 그렇게 뛰다가 1년씩 계속 연장을 해가면서 선수 생활을 이어갔죠.

 

* 오스트리아에서 좋은 평가를 받으셨어요. 오스트리아에서의 3년이 서 코치님의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 사실 운동 자체보다는 지도자 생활을 염두하고 훈련하고, 배웠던 거죠. 연패할 때 코칭스태프는 어떻게 하나, 운동은 어떤 스타일로 하나, 훈련 프로그램은 어떻게 짜나. 저는 그런 쪽으로 더 관심을 갖게 됐죠. 또 좋은 점은 시간 될 때마다 UEFA컵, UEFA 챔피언스리그, 빅 리그 경기 등 많은 경기를 볼 수 있었다는 거죠. 선수 시절 보는 것과 지도자 생활을 염두 해 두고 보는 건 또 다르더라고요. 그 곳에 머물며 2006년 월드컵부터 유로 2008까지 잘 챙겨볼 수 있었죠.

 

* 이것도 네티즌 질문입니다. 2006년 오스트리아에서 전성기 못지않은 활약을 하셨습니다. 그로 인해 서 코치님의 경험이 당시 월드컵 대표팀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조심스레 대표팀 발탁 가능성도 점쳐졌었는데요, 만약 대표팀에 뽑혀 2006년 월드컵에 나갔더라면 어땠을까요? (별사탕님 옥토버님 홍승필입니다님 서상원님 Warmer님)

저도 당시 몸은 좋았거든요.(웃음) 재밌는 에피소드는, 오스트리아 기자들이 당연히 제가 월드컵에 나갈 줄 알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아니다. 너희들이 우리나라 실력을 모르는 거다. 나 같은 선수는 엄청 많다'고 말했죠.(웃음) 그때 정말 좋은 선수들이 많았죠. 출전하면 좋기야 좋죠. 하지만 정말 욕심은 가지지 않았어요.

 

유럽에서 UEFA 지도자 자격증을 따려고 하셨던 걸로 압니다. 한국으로 돌아오게 된 이유는 무엇인지요?

정말 따고 싶었어요. 유럽에 있으면서 UEFA C 라이센스를 취득했죠. 물론 아시아에서 해도 괜찮지만, 유럽의 프로그램을 느껴보고 싶었거든요. 이후 B 라이센스를 준비하는데, 여러 가지 여건이 너무 어렵더라고요. 또 그쪽에서는 기본적으로 스포츠 의학, 심리학 등을 이수해야 했습니다. 여려 면으로 힘든 부분들이 있었습니다.

 

이제 지도자로서의 길로 접어드셨습니다. 어떤 지도자가 되고 싶으신가요?

어찌 보면 우리나라 축구가 발전을 하면서, 지도자들의 세대가 점점 바뀌어가는 시기인 것 같아요. 중요한 것은 젊은 지도자들이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이죠. 기본적으로 공부를 안해서는 안 되고요. 젊은 지도자들이 더 많은 것을 보고 배우고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앞으로는 선수들도 잘 하는 선수들이 유럽에 나가서 더 많은 것을 배워 오면 우리나라 축구를 발전시키는 거고요. 그런 과정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우리나라 대표팀도 발전 했다고 보고요.

 

축구인으로서의 최종적인 목표는 어떻게 설정하셨는지요?

누구나 다 가지는 꿈일 겁니다. 프로팀 감독도 해보고 싶고 대표팀 감독도 하고 싶죠. 젊은 사람들이 지도자를 하게 되면, 바뀌어야 돼요. 선수를 대하는 부분이나 지도하는 부분도 바뀌어야죠. 유럽이 좋다고 무조건 유럽의 것을 선호하면 안 되겠죠. 우리나라에 맞는 시스템도 함께 곁들여야 해요. 지도자라면 선수들의 정신적인 부분도 이해를 해야 하고요. 억지로 선수를 나의 시스템에 맞추는 것은 원하지 않습니다. 선수들의 장점을 잘 살려줄 수 있는 지도자가 되고 싶어요.

 

이제 추가적으로 네티즌들의 질문을 받아보겠습니다. 다양한 곳에서 선수 생활을 하셨는데, 만약 한 팀으로만 돌아가서 1년의 시간이 주어진다면, 어느 시기로 돌아가고 싶으신가요? (롸긴님)

글쎄요. 유럽에서 펼쳐보고 싶은 뜻이 많았는데 못 이룬 부분이 많았거든요. 스트라스부르에 있을 때 차별 때문에 돌아왔다는 게 아쉽네요. 그 때 더 활약할 수 있었다면 더 좋은 팀으로 갈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이 됩니다.

 

선수 생활 중에 가장 인상 깊었던 경기와 가장 아쉬웠던 경기를 꼽아주세요. (88만원 세대님)

인상 깊었던 때로는 월드컵 때가 가장 인상이 깊었고요. 프랑스 리그 때도 많이 기억이 남네요. 아쉬웠던 때는 바르셀로나 올림픽 때가 가장 아쉽네요. 돌이켜보면 충분히 더 잘 수 있었던 경기들이었던 것 같아요.

성격이 온순하고 부드러우신데, 축구 같은 격한 운동을 업으로 삼았던 선수로서 조용한 성품이 공격수로서의 자질에 영향을 준 적은 없었나요? (롸긴님)

선수라면 당연히 운동장에서의 이미지와 운동장 밖에서의 이미지는 달라야 한다고 생각해요. 지금 부드럽다고 해서 운동장에서 부드러울 수는 없거든요. 운동장에서는 다 쏟아야죠. 운동장 안에서만큼은 (경기에) 미쳐야죠.

서 코치님은 수원의 레전드이십니다. 수원에서 2번의 아시아 챔피언과 3번의 리그 우승을 비롯해 많은 우승을 경험하셨는데, 수원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와 수원팬들에 대한 추억을 말씀해주세요. (럭셔리님)

수원 때의 기억이 많이 나요. 기억날 수밖에 없는 게, 수원에 있을 때 우승컵을 10개 넘게 가져왔거든요.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는 AFC 아시아클럽선수권에서 우승했을 때였던 것 같네요.

최근 유소년축구가 많이 활성화되었고, 서 코치님도 유소년 축구교실을 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현재 한국의 유소년 축구가 선진국과 비교해 어떤 점이 부족한지, 그리고 어떤 식으로 발전해야 하는지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아이리스님)

클럽 시스템이 많이 도입은 됐다고 하지만, 많이 아쉬운 부분은 있습니다. 선수들이 자라나는 단계를 보면 초등학교에서 중학교로, 또 고등학교, 대학교, 프로팀까지 가는 과정에서 지도자가 5번 이상이 바뀝니다. 가장 중요한 시기에 지도자의 변화를 계속 겪는 거죠.

하지만 클럽시스템의 경우에는 총 감독 지휘 하에 나이에 맞는 프로그램에 맞춰 차근차근 단계를 밟죠. 우리나라는 다르잖아요. '이기기 위한' 경기를 해야 하잖아요. 몸에 기술과 좋은 습관을 익혀야 되는 나이에 이기기 위한 경기를 하는 부분이 아쉽습니다. 클럽이더라도 클럽 시스템에 맞춰 총 감독이 꾸준히 미팅을 가져야 한다고 봅니다.

90년대 한국축구는 유럽에 비해 기술은 부족했으나 빠른 측면 공격과 투지가 장점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기술은 많이 좋아졌지만 예전 같은 투지가 점점 떨어져 가는 것 같아 아쉬운데요. 지금 젊은 선수들이 잘해 주고는 있지만 정신적인 면에서 충고해 주실 부분이 있으신가요? (Feel님)

현재 U-20 대표팀 경기를 봐도 빠르고 압박이 강한 경기를 하다 보니 패스가 많이 이뤄지죠. 하지만 1:1 능력은 확연히 떨어져요. 그래서 이번 U-20 대표팀 공격수들을 지도할 때는 과감히 돌파하라고 요구했어요. 메시, 호날두 같은 선수들만 봐도 빠른 템포의 공격을 하면서 1:1 돌파까지도 합니다. 조직을 허물려면 그런 돌파가 필요하거든요.

팬들이 보는 입장에서도, 힘들게 전방까지 가서 뒤쪽으로 패스하는 경우가 생기면 답답하죠. 이번에 항상 강조한 건 좋은 상황에서의 과감한 돌파예요. 요즘 선수들이 그런 게 많이 줄었던 것 같아요. 같은 상황에서도 안전하게 뒤로 빼기만 하는 부분이죠.

현재 한국의 젊은 선수들 중에 서 코치님과 스타일 측면에서 가장 비슷한 선수를 꼽는다면 누구인가요? 그 선수의 장점과 함께 조언도 해주세요. (天上天下唯我獨尊님 역삼각님 희망을 품는다님)

저와 똑같을 수는 없죠. 제가 측면에서 뛰었으니까 요즘 측면 선수들을 보면, 이청용 선수가 닮았다고 볼 수 있네요. 최근 이청용 선수를 보니 자신감이 굉장히 높아진 것 같고, 이번 세네갈전에서도 자신감 넘치는 경기를 펼친 것 같아요. 빠른 템포의 경기를 하다가 들어와서 그런지 더 좋아진 것 같아요. 우리나라 선수들이 그걸 배워야 되요. 빠른 템포 속에서 컨트롤을 하고, (공격에서) 연결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한 것 같아요. 타이밍과 스피드도 우리 선수들이 아직 부족한 것 같고요.

오래된 팬이에요. 축구 외적인 부분을 물어 볼께요. 평소에 가족들과 어떻게 지내시는지 궁금합니다. 세 아이가 너무 귀엽던데, 시간 나실 때 아이들과 어떻게 놀아주시는지 이런 것도 궁금하고요. (티거님)

제 일을 하는 데 있어서 가족은 너무 중요해요. 우리나라에서는 일을 하다 보면 가정에 대한 중요성을 느낄 환경이 안 갖춰진 것 같아요. 제가 유럽에 있을 때는 운동을 하고 오면 놀기도 하고 여행도 다녀오고 했는데, 한국에서는 이상하게 그걸 못하겠더라고요.(웃음) 문화가 여러 가지로 틀린 게 뭐냐면, 아이들이 학교와 학원에 매어있죠. 우리 아이들은 사실 유럽스타일로 키워요.(웃음) 학교에서 기본적인 교육은 받고, 사람 됨됨이만 잘 되면 좋을 것 같네요. 자라는 나무의 가지를 쳐주는 역할을 하고 있죠.

유럽에 있을 때는 여행도 같이 가고, 함께 공도 찼는데 한국에서는 그러지 못했어요. 제 일을 하고 아이들도 학교 가고 하다 보니 소홀해 지더라고요. 한국에서는 저도 운동 외적으로 사람들도 만나고 하니까요.

본인이 윙들 중에서는 최고의 속도를 가지고 계시다고 생각하시는지? 또 상대방이지만 정말 빠르다고 느끼신 분은 있으신지? 카니자, 오베르마스, 리베리, 로벤. 호아킨 등 빠른 윙어들을 좋아하다보니 궁금해요. (데리다님)

워낙 좋은 선수들이 많은데요, 메시나 호날두 선수가 정말 잘하는 것 같아요. 수비수의 타이밍을 잘 뺏으니까요. 리베리 선수도 상당히 좋은 것 같아요. 유럽에 있을 때 리베리 선수를 많이 봤어요. 리베리가 바이에른 뮌헨으로 가기 전부터 '왜 저 선수가 명문 클럽으로 안갈까' 생각했는데, 결국 바이에른 뮌헨으로 가더라고요. 정말 잘하는 선수였어요.

프로팀에서는 14번, 대표팀에서는 11번 유니폼을 많이 입으셨어요. 서 코치님은 개인적으로 어떤 등번호에 애착이 가시는지 정말 궁금하네요. (신지우님)

어릴 때부터 달았던 번호가 11번이고, 수원에 오면서 14번을 달았죠. 저에게는 그래도 11번인 것 같아요. 초등학교 때부터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대표팀까지 11번을 달았으니까요.

스피드를 특징으로 하는 선수들의 경우 강한 임팩트를 남기고 빨리 은퇴하는 경우가 많은데 본인이 롱런할 수 있었던 비결은 뭔가요? (別님)

저는 빠른 선수가 오래 못 간다는 말을 이해를 못했어요. 그래서 스스로 '그래 내가 한번 깨보자'라는 생각을 했었고, 또 하나는 자기관리를 잘 해야겠다는 생각도 했죠. 청량음료도 잘 안 먹고, 커피도 안 먹었죠. 그렇게 해보니 느껴지더라고요. 저는 당당하게 후배 선수들에게 말해 줄 수 있어요. 빠르다고 단명 한다는 것 없고, 몸 관리 하면 오래 뛸 수 있다는 겁니다. U-20 대표팀 선수들도 '진짜 안 먹었냐'고 궁금해 하더라고요.(웃음) 그래서 어려운 게 아니라고 말했죠. 콜라 마실 때 주스를 마시라고 했어요. 저희 집에 가서 냉장고를 열어 봐도 청량음료가 하나도 없어요.

 

외국으로 나가려고 하는 후배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어요. 외국에서 적응하는데 제일 중요한 노하우를 제시해 주신다면? (-이호림-님)

저는 운동선수들에게 결혼을 빨리 하라고 조언하고 싶어요. 특히 해외에 나가게 되면, 혼자 생활하기 굉장히 힘들어요. 유럽의 감독이나 코치들도 선수들에게 빠른 결혼을 권유해요. 경기가 끝나도 심리적으로 휴식이 되기도 하고 이야기 할 동료도 돼 주고요. 내 건강을 체크해서 음식도 해 줄 수 있고요. 여러모로 안정적이죠. 아무리 좋은 선수도 외로움은 피할 수 없죠. 외로움은 컨디션 저하의 요인이 될 수 있어요.

그리고 긍정적인 사고를 가졌으면 합니다. 매우 중요하죠. 선수들이라면 당연히 경기에서 안 풀릴 수도 있고 못 할 수도 있죠. 그걸 품고 있으면 컨디션이 떨어질 수밖에 없죠.

 

서 코치님도 90년대에 상당히 많은 한일전에 출전하셨습니다. 당시 일본 선수 중에 라이벌이라고 느낀 선수가 있으신지 묻고 싶습니다. (현규님)

운동선수들이라면 모두가 라이벌이죠. 당시에는 미우라 선수와 라이벌이었던 것 같아요. 몸 풀다 보면 저에게 장난치는 선수가 미우라였어요.(웃음) 그 당시에는 미우라 선수가 일본 공격수들 중 가장 유명했죠. 당시 한일전은 대단했습니다. 어른들께서 과거의 아픔이 있다 보니 한일전은 무조건 이겨야 한다는 정신이 있었어요. 그런 정신이 승리할 수 있었던 원인이었던 것 같네요.

서 코치님은 아기자기한 모습보다는 스피드를 활용한 돌파 위주의 모습을 많이 보여 줬는데요. 프랑스에 한번 갔다 온 직후에는 개인 기술이 한층 좋아졌던 모습을 보여줬던 것 같아요. 선수 생활 동안 기술적으로 조금 부족했다거나 아쉬웠던 부분은 없습니까? (carrema님)

제가 좀 서두르는 성향이 있었던 것 같아요. 골문 앞에서도 여유를 갖지 못했던 부분도 있었고요.

현역 시절과 비교할 때 현재의 K-리그 시스템이나 환경, 수준 등이 얼마나 달라졌다고 생각하나요? (POQ님)

우선 전체적인 발전은 많이 했다고 봅니다. 그 발전 속에서도 아쉬운 부분이 많았던 것 같아요. 팬들이 많이 줄어든 부분들도 있고요. 프로선수들이라면 운동장에서 모든 것을 발산해야 하죠. 선수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말로 인터뷰 하지 말고 운동장에서 인터뷰를 하라'는 거예요. 운동장에서 모든 걸 보여주면 좋은 평가가 따라온다는 겁니다.

긴 인터뷰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는 지도자로서 한국축구를 위해 애써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인터뷰= 김형준.이상헌 / 영상= 정민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