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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드컵 인터뷰18 -김병지下] “재평가 만족,후배들 꿈 막고 싶지 않아"

정민건TV 2010. 5. 20. 07:54
 

[월드컵 인터뷰18 -김병지下] “재평가에 만족, 후배들 꿈 막고 싶지 않아”

 

2002 월드컵을 앞두고 열린 친선평가전에서 ⓒKFA 홍석균
- 98 프랑스 월드컵 좌절 이후 대표팀에서는 별로 좋은 기억이 없으신 것 같습니다. 2002 월드컵때는 히딩크 감독님의 선수단 휘어잡기에 희생양(?)이 되셨는데요. 그 시발점이 2001년 2월 27일 홍콩 칼스버그컵 파라과이전이었습니다. 당시 그 유명한 드리블 사건이 터졌는데,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서 당시 상황을 설명해주신다면요?

파라과이전을 앞두고 제가 무릎에 부상이 조금 있었어요. 두 번째 경기를 준비하라고 얘기를 들었고, 당시 그 상황은 앞에 잠깐 던져놓고 킥을 하는 상황이었어요. 그런데 그 킥에 대한 타이밍을 놓쳤어요. 그러다 보니까 한 번 더 치게 된 것이 뺏기게 된 것이죠. 뺏기게 된 상황에서 골키퍼가 나가 있으니까 그 공에 대한 마무리를 하려고 하다 보니까 드리블하는 상황이 된 것이죠. 실점을 하지는 않았지만 상당히 위험한 장면을 연출했어요.

- 히딩크 감독님이 오신지 얼마 안 됐을 때였는데, ‘내가 공격하는 골키퍼다’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었나요?

골키퍼가 공격하는 상황을 만드는 것은 쉽지 않죠. 어쨌든 그 실수의 여파가 개인적으로도 히딩크 감독님에게도 상당히 인상이 깊게 각인됐던 장면이었죠.

- 이후 하프타임때 바로 김용대 선수와 교체됐습니다. 당시 교체되기 전까지 드리블 사건이 향후 그렇게 큰 영향을 미칠지 예상하셨나요?

그렇게까지는 생각을 못했죠.

- 그런 사건에도 불구하고 김병지 선수는 히딩크 감독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히딩크 감독님에게 실력을 인정받은 것이라고 해석되는데요, 여기에는 안정성을 최우선으로 하는 플레이스타일의 변화가 뒤따랐습니다. 스타일을 변화시킨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텐데요.

지금도 그 장면들이 리플레이 되는 경우를 많이 봤고, 기억하는 분들도 많이 계시죠. 그런데 그 한 장면만 가지고 김병지에 대한 평가를 하시는데 그건 아니거든요. 왜냐면 그 사건으로 인해서 대표팀도 못하고 선수 생명이 끝났으면 모든 분들이 자연스럽게 김병지의 실수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넘어갔을 것이거든요.

그런데 지금 더 기억하고 그 얘기를 많이 하는 이유는 그 이후에 제가 보여줬던 도전, 이뤄냈던 성과와 과정들 이런 것들이 같이 연상이 되기 때문일 겁니다. ‘그때 그것만 아니었으면 김병지가 2002년 월드컵에도 주전으로 나가고 2006년, 2010년에도 했을텐데, 왜 그것 때문에 지금까지도 그런 힘든 상황을 맞이 하느냐’ 그런 생각 때문에 그 장면이 더 부각되는 거에요. 그렇지만 저에게는 그 실수했던 장면들 속에서 또 배웠죠.

2002 월드컵이 끝난 후에 전문가들이 이제 김병지는 정말 끝날 것이다. 나이도 많이 들었고. 그런 우려들을 많이 했었죠. 그게 저에게는 많은 자극제가 됐었고 또 다시 생각할 수 있는 기회들이 됐기 때문에 많은 일들이 있었던 것 같아요.

- 그 말씀은 스타일을 크게 변화시켰다기 보다는 단지 전진 플레이를 자제했다는 말씀이신가요?

지금도 단지 돌출행동을 안 한다는 것뿐이지 골키퍼로써의 방어하는 능력은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팀에서 요구하는 골키퍼와 수비 사이의 공간이 있거든요. 그 공간은 골키퍼들이 채워주지 않으면 수비수들이 다 막아낼 수 없어요. 지금도 그 부분에 있어서는 잘 컨트롤 하고 있어요.

경기력에 대해서는 제가 절대 양보할 수 없어요. 어떤 객관적인, 주관적인, 데이터상, 그리고 실전을 통틀어 실점한 유효슈팅이라든지 이런 모든 것을 가지고서도 자신 있게 경기력 만큼은 국내 최고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2002 월드컵 당시 모습 ⓒKFA 홍석균
- 당시 이운재 선수와 함께 대표팀에서 훈련을 하셨습니다. 두 선수가 함께 훈련하는 것만으로도 집중력이나 긴장감을 유지하는 측면에서 긍정적일 것 같은데, 당시에는 어땠나요?

그렇죠. 긍정적인 면을 가질 수 있죠. 그런데 모든 분들이 알고 계시기를 그날의 컨디션 같은 문제로 이운재 선수가 경기에 나갔다고 얘기를 하시잖아요. 제가 정확히 기억하기로는 당시에 제가 경기를 뛰는 걸로 다 알고 있었어요. 팀 분위기나 그날(폴란드전) 아침까지도 제가 경기를 뛰어야 되고. 훈련도 제가 뛰는 것으로 되어 있었어요.

그때 당시의 재미있는 얘기지만 그렇게 다 알고 있었어요. 운재도 그렇게 알고 있었고 저도 그렇게 알고 있었던 거에요. 경기를 뛰는 선수는 더 집중력이 있을 것 아니에요. 프로팀에서도 마찬가지지만 경기를 뛰지 않는 선수는 조금 소극적인 면이 있거든요. 그때 분위기는 솔직히 그런 것이 있었어요. 폴란드전 하기 바로 전까지요. 그때는 다들 그렇게 알고 있었던 거에요.

- 모든 선수들이 김병지 선수가 뛸 거라고 생각했다는 말씀이신가요?

분위기가 그랬던 것이죠. 운재도 그렇게 알고 있었고 저도 그렇게 알고 있었어요. 왜냐하면 저는 티켓을 집으로 보내줬는데 운재는 안 보내줬거든요. 월드컵인데 안 보내줬겠어요? 그때 당시에 조금 느슨하게 해서 조금 지적도 받았거든요. 그런데 경기날 아침 10시에 그게 바뀌었어요.

- 바뀐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그것은 감독님이 선택을 하신 거죠. 지금까지는 컨디션 때문이라는 얘기들이 많았잖아요. 그런데 이 얘기는 그냥 우리끼리 아는 그냥 재미난 과정이었어요. 흔히들 책에서 나온 얘기들이 컨디션 때문에 이운재 선수가 출전했다는 얘기들은 조금 미화가 됐어요. (웃음)

사람과 사람의 일은 같은 값이라도 차이가 있거든요. 히딩크 감독님이 파라과이전 이후에도 제가 잘했기 때문에 선발을 했었지만, 그 과정에도 얼마 동안 안 뽑긴 안 뽑았어요. 그런데 그 안 뽑히는 시간 동안 제가 K-리그에서도 최고로 잘했었어요. 그래서 분위기가 안 뽑으면 안 되는 분위기였어요.

어쩔 수 없이 뽑고 당시에도 제가 허리가 조금 아파서 운동을 못하는 상황이었는데 대표팀에서도 허리가 아파서 운동을 조금 못했었거든요. 그러니까 또 오해가 생기는 거죠. 그게 아닌데. 그러니까 또 안 뽑히다가 리그에서는 또 잘해가지고, 2001년 겨울에는 중간에 또 잘했었어요. 그때 당시에는 또 뽑혔던 기억이 나요.

인터뷰 중인 김병지 ⓒ손춘근
- 훈련은 같이 했지만 월드컵때는 한 경기도 출전하지 못하셨는데요. 3-4위전은 출전할 거라고 기대하시지 않으셨나요?

생각했죠. 왜냐면 벌써 해피엔딩은 다 됐으니까요. 마지막 축제라고 얘기하고, 경기하는 것만이라도 좋다고 생각하지만 나머지 선수들에게도 그 마지막 경기는 축제였거든요. 모든 국민들이 다 그렇게 생각했었거든요. 국민들의 정서는 그런 것까지도 다 받아들일 수 있는 정서를 가지고 있었어요. 설사 김병지가 뛰고 그때 당시에 뛰지 못했던 선수들이 뛰어서 졌던들 등을 두드려주고 감싸 안을 정서와 생각을 다 가지고 있었는데 그러지 못했어요.

오히려 국민들이 ‘4위하면 어떻고 3위하면 어떻냐, 그 동안 못 뛴 선수들 마음이나 좀 어루만져주지’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어요. 저도 국민의 한 사람이고 월드컵에서 잘되길 바라고 16강을 넘어서 8강, 4강, 우승하길 바라거든요. 마찬가지로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죠.

- 폴란드전은 우리 대표팀의 첫 승으로 기억되는 역사적인 날이었습니다. 당시 경기를 뛴 선수들 얘기를 들어보면 경기장을 가득 메운 붉은 옷의 관중들이 인상적이었다고 말을 하는데요. 당시의 붉은 물결과 98년 네덜란드전에서의 오렌지 물결 중에 애국심을 배제하고 어떤 것이 더욱 농도가 짙던가요?

대한민국이죠. 홈이었고 경기장 안 뿐만 아니라 경기장 밖에서도 다 느낄 수 있었으니까요. 경기력이 10~20% 정도까지 더 극대화 할 수 있다고 봐요. 반대로 네덜란드전이 치러진 마르세유 구장은 정말 98% 정도 오렌지 물결이었어요. 그 좋은 스쿼드에 전력 극대화가 10%까지 되면 상대하는 팀은 떨어지는 것이 있을 것 아니에요.

심리적인 것이 큰데, 경기경험이 있는 선수들은 반대로 전환시키는 사람들도 있어요. 경기경험이 많은 선수가 필요하다는 이유가 거기에도 있어요.

- 김병지 선수는 2002 월드컵 이후 가진 인터뷰에서 히딩크 감독을 존경하지만 히딩크 감독처럼 한 선수를 본보기로 삼아 선수단을 휘어잡는 행위는 하지 않겠다는 말씀을 하셨던 것으로 기억하는데요. 만약 김병지 선수가 감독이었다면 기량은 좋은데 마음에 안 드는 플레이를 하는 선수는 어떻게 활용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여러 예가 있고 방법론이 있을 거에요. 여러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을 해요. 정말 악의적인지 아니면 다시금 팀을 위해서 정상의 플레이를 할 수 있는지를 판단해야 되겠죠.

- 훈련과정에서 ‘어차피 나는 안 나갈텐데’라는 마음은 조금도 없으셨나요?

전혀 그렇지 않죠. 저는 아주 어렵게 운동을 했고 어려운 환경을 겪었고 어려운 시간을 많이 보냈습니다. 기본적으로 지금도 가지고 있는 생각이 제가 첫 출발할 때 어려운 점 보다는 아무리 제가 미끄러지고 떨어져도 그 상황보다 더 어렵고 떨어질 수는 없거든요. 남들이 생각하기에는 지금도 김병지가 월드컵을 나가야 되는데 월드컵에 못 나가니까 얼마나 마음의 상처가 많을까 생각하시는데 그 분들이 제 마음을 어루만져 주셔서 저는 감사하게 생각을 해요. 그렇기 때문에 경기에 대한 집중력을 항상 가지고 있었어요.

그리고 실제로 주전 선수가 부상을 당했을 때 뒤에 있는 선수들이 출전해 좋은 모습을 보였던 경우도 있기 때문에 월드컵 기간에는 좋은 준비를 했었어요.

포항 스틸러스 시절 ⓒKFA 홍석균
- 한일 월드컵 이후 김병지 선수의 실점율은 낮아졌습니다. 좋은 기량을 보여주셨는데요. 2006 독일 월드컵때는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대표팀에 선발되지 못하셨습니다. 당시 나이가 36세였는데, 정당하게 실력으로 평가 받지 못하는 것에 불만도 생기셨을 것 같은데요.

지금도 그런 얘기를 하죠. 선수들은 경기장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라고요. 프로팀에서 열심히 한 선수가 가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저도 개인적으로 지지를 하죠. 그런데 대표팀은 목표는 둘 수 있지만 스스로 선택해서 들어갈 수 있는 자리가 아니잖아요. 그 선택은 코칭스태프가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선택은 존중을 해줘야 되요. 왜냐하면 책임도 결국은 그 분들이 다 져야 되는 것이기 때문이죠.

제가 들어갈 팀이 없고 개인종목이라면 얼마나 편하겠어요. 기록, 상대성, 다 나오잖아요. 그런데 축구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죠. 그러기 때문에 그 평가에 대한 것은 주관적이든 객관적이든 나오는 것이거든요. 단지 선택에 있어서의 그런 것들은 존중을 해줘야 한다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어요.

- 현재 이운재 선수의 나이가 37세입니다. 실력에는 지장이 없는 나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지장은 없을 거라고 생각해요. 다만 거기에는 전제조건이 깔리죠. 체력에 있어서 문제가 없고 컨디션상의 문제가 없고 골키퍼가 가지고 있는 조건들이 있어요. 아까 제가 축구는 꼭 몸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고 했지만, 그래도 제일 첫째로 중요한 전제조건은 체력, 체격, 컨디션이 포함돼 있거든요. 그 바탕 위에서 민첩성이라든지 순발력이라든지 경기경험이 나오는 것이거든요. 그런 것들이 다 충족돼 있는 상태에서 37살, 40살 다 가능한 것이죠.

FC서울에서 활약하는 모습 ⓒKFA 홍석균
- 서울에서 뛸 당시 실점율은 상당히 낮았지만 순발력과 높이가 떨어졌다는 지적도 있었습니다. 팬들은 실점율이 낮은 것이 서울 수비가 좋아서라고 말을 하던데요.

좋은 팀이었어요. 수비수들의 도움이 없이 어떻게 골키퍼가 다 막았겠습니까. 물론 그 부분도 인정하는 부분이 있고요. 그때 당시에 서울 스쿼드가 좋긴 좋았는데 부상선수가 너무 많았어요. 심지어 2군 선수까지도 1군에서 경기를 뛰는 횟수가 허다했어요. 유효슈팅의 숫자라든지 제가 경기장에서 나오는 슈퍼세이브라는 상황을 보면 실점율도 좋았지만 방어율도 상당히 좋았던 해였어요.

그 다음에 순발력과 민첩성이 떨어지는 것 아니냐고 하셨는데, 당연히 떨어지죠. 제가 제일 좋았을 때가 100m를 11초 중반에 뛰었어요. 그렇지만 골키퍼는 보통 13초 뛰거든요. 그런데 35, 36세 때도 12초 초반으로 뛰었어요. 지금도 물론 12초 중반으로 들어오고 있고요. 떨어졌지만 기본적으로 골키퍼가 가지고 있는 13초보다는 훨씬 빠른 수준에 있어요. 제가 20세 중반의 민첩성보다 떨어진 것 아니냐고 하면 당연히 떨어졌죠. 그 부분은 인정하는 부분이에요.

- 2008년 1월 칠레전에서 5년 만에 대표팀 유니폼을 입으셨지만 안타깝게 허리 부상을 당하셨습니다. 일부 팬들은 김병지 선수가 어떻게, 어느 부위를 다치신 것인지 잘 몰랐는데요. 어떻게 다치신 것인가요?

허리 부상은 계속 짊어지고 갔었어요. 2006년도 월드컵에 뽑혔어도 걱정을 했었어요. 허리가 안 좋았으니까요. 뽑혀도 걱정이라는 생각이 드는 거에요. 그런 상황이었고. 2008년에 대표팀에 뽑혀서 운동을 하면서도 엄청나게 추웠어요. 그 운동 과정에 있어서도 안 좋았어요. 말을 못하겠더라고요. 오랜만에 뽑힌 고참 선수가 허리 부상 때문에 못 뛴다고 말하기가 힘들었어요.

그런데 시작하자마자 킥을 하는 순간에 벌써 터져버린 거에요. 마비증세가 왔거든요. 시작하자마자 그랬으니까 손들고 나갈 수도 없는 것이고. 그렇지만 과거의 경험을 통해 그 상황만큼 안 좋은 상황에서도 제가 가진 컨디션으로 방어할 수 있는 것들을 생각했어요. 활동반경을 줄이고 도전적인 것보다는 조금 더 기다리는 등의 경기 운영을 했어요. 무실점을 했는데 남들이 보시기에 제가 보여줬던 그런 경기와는 기대치에 못 미쳤죠.

제가 그날 병원에게 가서 수술을 했는데 디스크 수술을 하면 하나의 파편이 떨어져나간다고 하더라고요. 수술을 하고 나서 제가 그 살점들을 받았었어요. 다섯 조각, 여섯 조각이 나서 다 짓이겨져 있는 것을 제가 봤거든요. 어떻게 운동을 했냐고 하더라고요. 그때 제가 갖고 있던 심정, 절박함, 집중력이 45분을 잘 견뎌냈다고 생각을 하는데 얻은 것과 잃은 것이 너무 많죠.

2006년 월드컵 이후 대표팀에 뽑혀서 좋았었는데, 이것은 대표팀에 뽑혀서 좋았던 것은 아니었어요. 저는 두 번의 월드컵을 뛰었고 약 12년간 대표 생활을 했었고 2006 월드컵 이후에 제가 목표로 하고 있었던 것은 대표팀, 월드컵 같은 목표는 넘어섰어요. 다 경험을 해봤으니까요.

그런데 왜 좋았냐면 재평가를 받았다는 거에요. 김병지가 2002년에도 힘들다고 생각했었는데 도전을 해서 극복을 했고, 경기력을 바탕으로 2008년에 다시 대표팀에 뽑혔으니까요. 그 좋았던 느낌들이 불과 대표팀 되고 하루 이틀 만에 그 경기 때문에 다 사라졌잖아요. 극과 극을 달려버린 것이죠.

김병지의 마지막 A매치였던 2008년 1월 칠레전
- 이번 월드컵을 앞두고도 재평가를 받으셨는데, 재평가를 받았다는 것에 만족을 하시는 건가요? 아니면 어느 정도 월드컵에 대한 미련이 있으신 건가요?

(손끝을 강조하며) 월드컵에 대한 미련이라면 이만큼 있죠. 여기서 많은 생각을 할 수 있는 위치에 있어요. 제가 ‘월드컵을 가고 싶다. 잘하고 있는데 왜 안 뽑냐’고 하면 파장이 상당히 커져요. 이것은 잘못된 판단인 것이죠. 선수는 주어진 팀에서 최선을 다하고 좋은 모습을 보이는 것이 첫째잖아요. 저는 이 첫째 항목에서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을 해요. 좋은 경기력을 보였고 좋은 활약을 했으니까요.

그런데 지금 문제가 되고 있으니까 저한테 여론의 초점이 맞춰진 것이거든요. 제가 팀에서 잘 못했다든지 경기력이 안 좋았다면 제3의 선수한테 초점이 갔을 거란 말이죠. 지금은 K-리그에서 제일 경기력이 좋은 선수가 저라고 평가를 내리기 때문에 주변에서 관심이 저한테 온 것이거든요. 그 이후에 또 팀이 정상적으로 우승후보라 할 수 있는 팀들과 좋은 경기를 했고 좋은 선방을 했기 때문에 그런 것이죠.

그런 평가에 대해서 기쁘게 생각하는 것이지, 월드컵이 꿈이고 그런 것은 없어요. 저는 초연해요. 넘어섰어요. 그렇기 때문에 그것에 대해서는 한 번도 그런 것을 생각 안 했어요. 단지 염려스러운 것은 기사를 보면 댓글이 달리잖아요. 제가 월드컵에 나갔으면 하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제가 감히 ‘저는 안 나갑니다’라고 하는 것은 정말 제가 분위기상 여러 사람들에게 예의가 아닌 것 같아요.

대표팀에도 예의가 아니고 지금 힘든 시간을 갖고 있는 이운재 선수에게도 아니고요. 저는 그냥 제가 할 수 있는 제일 기본적인 것은 있잖아요. 팀에서 묵묵히 최선을 다하고 열심히 하는 거에요.

거기에 더하면 제가 월드컵 요만큼 나가고 싶다고 얘기를 하면 제가 20세 때는 월드컵 엄청 나가고 싶었거든요. 꿈과 목표였으니까요. 저는 그 꿈과 목표를 이루었어요. 제가 지금 월드컵에 나가서 해외진출을 하겠어요, 뭘 하겠어요. 그건 아니잖아요. 물론 국민들이 원하는 목표에 제가 도움이 된다고 하면 그것은 다른 방향의 설정이지만 지금 현재 대표팀에 있는 정성룡, 김영광 이런 선수들은 그 꿈을 이루고 싶어 한다는 말이에요. 또 제3의 골키퍼가 될 수도 있죠. 그런데 그 선수들의 꿈까지도 잠깐 동안 묶을 생각은 전혀 없다는 것이죠.

마찬가지로 몇몇 분들은 제가 은퇴해서 후배 선수들에게 길을 더 열어주는게 좋지 않느냐고 하시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제가 운동을 하면서 좋은 모습을 보이는 것이 팀에든 후배들에게든 도움을 주기 위해서 하는 것이지, 어느 특정 선수, 어느 특정팀에 해를 주기 위해서 선수 생활을 유지하는 것은 아니거든요. 그 부분에 있어서는 발전적으로 생각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 허정무 감독님 1기 대표팀에 뽑히신 것인데, 부상 회복 후 복귀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도 하셨을 것 같습니다.

그 시즌에 좋은 모습을 보였더라면 월드컵 예선전에 출전할 수 있는 기회가 왔을 수도 있다고 생각을 하는데 모든 분들의 보편적인 시각들이 있잖아요. 나이 38세, 39세. 그 다음에 사람 신체에서 제일 중요한 허리 수술. 이런 것들을 가지고 가니까 어쩔 수 없는 것이었어요. 그런 것을 극복하기가 쉽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2008년도에 그런 모습들을 경기장에서 못 보여줬기 때문에 그런 기회는 자동 소멸이죠.

FC서울 시절 이청용과 함께 ⓒ이상헌
- 미니 홈페이지에 쓰신 글을 읽어봤습니다. 37세부터 전성기라고 하셨는데, 지금도 전성기라고 생각하시나요?

연속이라고 봐요. 얼마 전에 이제 강원전을 마치고 많은 기자 분들이 오셔서 “지금 다시금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데”라고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지금 전성기가 아닙니다”라고 말을 했어요. 부상을 당한 2008년을 제외하면 지금과 같은 꾸준한 페이스였거든요. 그랬기 때문에 전성기라고 얘기했던 시기는 지금부터가 아니고 5년 동안 꾸준하게 좋았던 것 같아요.

- 얼마 전 월드컵 중계를 맡는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월드컵 출전에 대한 마음은 완전히 접으신 것 같았어요.

그런 얘기들을 했어요. 김병지를 쓸 수 있는 카드는 제일 마지막 카드에요. 프로팀 15개 구단 중에 제일 마지막이에요. 지금 뭐 정말 김병지 선수가 없으면 안 되는 정도의 상황이 된다면 그때 가서 저를 선발해서 필요한 위치에 갖다 놓는다는 얘기죠. 그런데 제가 먼저 논란의 중심에 서기에는 정말 부담스럽다는 것이죠. 그것은 아까도 말했지만 꿈을 키우고 있는 후배들을 위해서도 그렇고, 제가 가지고 있는 생각과도 일치하지 않는 것이에요.

해설 문제는 조금 앞서갔던 것 같아요. 100% 결정이라는 것은 아직 없잖아요. 단지 2006년도부터 그런 얘기들은 많이 들어왔었어요. 해설에 관련된 도움을 줬으면 한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지금 보도가 된 것이죠.

- 작년인가 하셨던 한 인터뷰에서 올해가 되면 밝힐 수 있는 목표가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었는데요. 그 목표가 무엇인가요?

조금 재미나게 비교를 하자면 지금 제 현재의 위치가 ‘말년 병장’ 같아요. 아주 군대에서는 적응을 잘해서 아주 짬밥이 딱이거든요. 그런데 군대에서 우리가 흔히 ‘말뚝을 박는다’고 하잖아요. 하사관으로 진급을 하려고 하면 확실히 그건 제 체질인 것 같아요. 그런데 사회에 도전하기에는 조금은 겁이 나는 부분이 있잖아요. 군대에서 적응하다가 다시 사회에 나가서 적응을 한다는 것이 조금 그렇잖아요.

지금이 딱 그 시기에요. 올 시즌이 끝나면 경기력이라든지 향후 분위기가 정해질 것 같아요. 그러면 그때 가서 정말 제가 신의손이 가지고 있는 최고령 기록을 목표로 할 것인지, 안 그러면 김병지를 혹하게 할 수 있는 좋은 동기를 줄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그때 가서 생각을 해보겠다는 얘기에요. 올 시즌이 끝날 때쯤이면 어떤 목표를 정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고향팀 경남에서 선수 생활을 장식하고 있는 김병지 ⓒ이상헌
- 젊은 꽁지머리의 98년 월드컵에 나갔던 김병지와 현재 경남에서의 김병지, 좋게 변한 점과 나쁘게 변한 점은 무엇인지 듣고 싶습니다.

그 때나 지금이나 많은 팬들에게 사랑 받고 있다는 점에 있어서는 너무나 좋아요. 그런데 조금 아쉬운 것은 ‘비운의 축구선수’라고 생각을 하시는데 그렇지 않아요. 많은 분들이 그렇게 표현해 주시는 것이 저에 대한 감성적인 향수 그런 것 같은데 그런 얘기를 많이 들을수록, 그런 팬들이 많다는 얘기가 결국은 저한테 애정 어린 생각들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기 때문에 너무나 좋아요.

그때와 지금이 다른 점이 있다면 딱 하나에요. 세월. 지금 김병지가 26세의 김병지라면 저는 국가대표 0순위에요. 부연할 것이 없잖아요. K-리그에서 제일 좋은 모습을 보이고 있고 젊고 그러니까요.

- 1995년도의 한 신문을 찾아보니 장래 목표가 98월드컵 출전과 유럽진출이라고 하셨던데요. 98월드컵은 출전하셨는데 유럽에서는 못 뛰셨습니다. 지금껏 이루지 못한 목표 중에 가장 아쉬운 것은 무엇이었나요?

유럽 진출을 못했어요. 그런데 할 수는 있었어요. 브라질도 갈 수 있었고 유럽도 갈 수 있었어요. 그때의 시대적인 분위기는 지금과는 달리 유럽 진출을 할 수 없는 분위기였어요. 계약조건도 그렇고요. 보통 계약을 하게 되면 그 팀에 종신이 되는 상황이었어요. 제가 가게 되면 필히 구단에 허락을 받아야 되는 상황이었어요. 지금처럼 FA 제도도 없었고요. 유럽 진출을 꾀하는 그런 분위기가 아니었어요. ‘팀에서 너를 필요로 하는데 어떻게 유럽을 가냐’라는 것이었기 때문에요.

그 대신 유럽에 갈 수 있는 마음을 조금은 가라앉도록 구단에서 처우 환경이나 이런 것은 잘해주셨어요. 그렇기 때문에 더 못나갔던 것 같아요.(웃음) 유럽 진출 실패에 대한 빈 자리를 채워주셨어요. 그래도 상당히 아쉬워요.

- 예정됐던 시간이 다 돼 인터뷰를 마쳐야 돼서 아쉽습니다.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계속 도전하는 김병지 선수가 되시길 바라겠습니다.

- 공식 질문 1. 축구는 (꿈과 희망이었고 사랑)이다.

축구는 꿈과 희망이었고, 사랑이었다고 표현하고 싶어요. 축구 가족도 많이 계신 것으로 알고 있어요. 정말 저희 집은 축생축사로 다 통해요. 저 뿐만이 아니라 집사람도 그렇고, 저희 아이들도 축생축사에요. 축구와 우리 가족들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라고 보시면 될 겁니다. 집에 아이들 유니폼, 스타킹, 축구화, 축구공 이걸 얘기하면 이해가 되실 거에요.

- 공식 질문 2. 월드컵은 (드림)이다.

드림이죠. 지나온 시점에서는 애환이 담겨있는 월드컵, 좌절과 희망을 줬던 월드컵, 좌절과 배움을 줬던 월드컵이에요. 그걸 통해서 제가 변했거든요. 김병지에 대한 평가에 변화를 줬기 때문에 41살까지 운동하는 이유가 거기에도 있어요. ‘거기에서 좌절을 맛보지 않았으면 훨씬 더 큰 자만에 빠지지 않았을까’ 하는데 그래도 그런 걸 느껴서 잘 극복하고 이겨냈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많은 팬들에게 사랑을 받고 운동할 수 있는 그런 계기가 됐던 것 같아요.


인터뷰=손춘근 / 영상= 정민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