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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런던올림픽] 배드민턴 정재성 '다섯 가지 고백'

정민건TV 2012. 7. 24. 12:38


[ⓜ 2012런던올림픽] 배드민턴 정재성 '다섯 가지 고백'  


정재성(31)|국가대표 배드민턴 선수
  • 2012 전영오픈 슈퍼시리즈 프리미어대회 남자복식 우승
  •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배드민턴 남자 복식 동메달
  • 2009 세계 배드민턴 선수권대회 남자복식 준우승
두 명의 선수가 짝을 이루어야 한다. 파트너와 호흡이 맞아야 한다. 자신의 역할을 다하되 서로를 믿어야 한다. 복식 경기만의 매력이다.
배드민턴 남자복식 세계랭킹 1위를 달리는 ‘정재성-이용대’ 조의 영광은 어느 한 사람이 만들어낸 것이 아니다. 아무리 한 사람의 기량이 뛰어나다 해도 다른 한 사람이 대등한 실력으로 받쳐주지 않으면 절대 상대를 꺾을 수 없다.
런던올림픽은 정재성이 이용대와의 마지막 금빛 호흡을 맞추는 시간이다. 은퇴를 결심한 정재성은 22년간의 배드민턴 인생을 최고의 자리에서 마무리하고 싶다. 돌아가신 어머니와의 약속 또한 지켜야 한다.
세계 최강의 점프력과 스매싱을 자랑하는 168cm의 작은 거인, 정재성. 그는 더 이상 ‘용대의 남자’로 머물지는 않을 것이다. 그는 이제 자신의 이름 석 자를 국민의 가슴에 새길 준비를 마쳤다.


[고백 1 : 어머니와의 약속을 지켜야 한다]
런던올림픽에 도전할 생각은 전혀 없었어요.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1회전 탈락이라는 실패를 맛보고 나서 제 자신이 너무 싫었거든요. 9살에 배드민턴을 시작해서 18년 동안을 노력해 왔는데 고작 1회전 탈락이라니. 선수라면 누구나 올림픽 출전을 목표로 하고, 금메달을 따는 걸 목표로 하잖아요. 그런데 시작도 하기 전에 실패한 기분...

저에게는 너무나 큰 충격이었죠. 두 번 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은 시간이에요. ‘나는 이래서 성공할 수 없는 거야’라며 제 자신에게 화도 많이 내고, 욕도 많이 했어요. ‘나는 뭘 해도 안돼’ 그러면서 배드민턴 라켓이고 뭐고 다 던져버리고 싶었어요. 배드민턴을 그만두고 싶었죠.

두 달 동안 배드민턴 라켓을 잡지 않았어요. 암투병 중인 어머니 곁에서 시간을 보냈죠. 베이징올림픽은 저에게도 충격이었지만, 평생을 ‘우리 막둥이’하시며 살아온 저희 어머니한테도 충격이었거든죠.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지 못해서 너무 죄송스러웠어요.

15년 동안 암으로 고생하셨던 어머니는 2009년에 돌아가셨어요. 어머니가 돌아가시던 날, 어머니의 손을 붙들고 약속을 했죠. 다시 올림픽에 도전해서 메달을 따오겠다고, 기다리셨던 성과를 꼭 보여드리겠다고. 이 약속을 꼭 지키겠다고.

저는 어머니와의 약속을 지키고 싶어요. 그래서 이번 런던올림픽이 제게는 둘도 없이 소중한 대회이자 특별한 대회에요.




[고백 2 : 금메달을 따면 바로 한국에 오고 싶다]
금메달을 따면 하고 싶은 일이요? 글쎄요, 메달을 따든, 못 따든 정말 많이 울 것 같아요. 금메달을 딴다면 그동안 고생한 시간들을 떠올리며 기뻐서 울 것 같고, 따지 못하면 아니나 다를까, 나는 이런 힘든 일을 두 번이나 겪는구나, 이런 생각을 하면서 울 것 같아요.

9살에 배드민턴을 시작해서,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집을 나가서 살았거든요. 그러다보니 부모님의 사랑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부모님이 이렇게 따뜻한 분들이라는 걸 모르고 살았어요. 어머니 생전에 사랑한다는 말을 해본 적이 딱 한 번 밖에 없어요. 어머니를 안아드린 적도 딱 한 번밖에 없고요.

금메달을 따면... 한국에 빨리 돌아오고 싶어요.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어머니 산소로 달려갈 거에요. 어머니와의 약속을 꼭 지켰다고, 이렇게 좋은 색깔의 메달을 땄는데 보여드리지 못해서 너무 죄송하다고, 어머니께 말씀드리고 싶어요. 늘 가슴에 품어왔던 생각이에요.


[고백 3 : 돈 때문에 그만두고 싶었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되어 진학을 앞둔 시점이었어요. 집안 형편이 너무 어려웠죠.

부모님께서 돈을 빌리고 갚지를 못하셨는데 빛쟁이들이 저희 집에 찾아오고 그랬어요. 부모님들은 집을 나가 계시고, 저희 4형제는 잠도 못자고 그럴 때였죠. 빚쟁이들을 붙잡고 제가 울면서 그랬죠. 대체 그 돈이 얼마인지는 모르겠지만, 나중에 제가 돈을 벌어서 꼭 갚아 드릴 테니까, 오늘은 돌아가시면 좋겠다고.

어머니한테 몰래 전화가 왔는데 ‘엄마가 미안하다, 너희들한테 이런 꼴을 보여서 미안하다’ 그러셨죠. 부모님 원망을 많이 했어요. 아무리 자식이지만 부모님의 모습이 부끄러웠고.

그 때가 정말 힘들었어요. 돈이 없으면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걸까, 동기들은 다 대학교를 가는데 나는 실업팀을 가야 하나, 차라리 배드민턴 선수를 그만두고 레슨을 해서 돈을 벌까, 돈을 벌어서 빚을 갚아드려야 하나 고민을 많이 했어요.

돈, 돈, 돈 하는 게 싫었어요. 이런 일이 왜 나에게만 닥치는지 너무 괴로워서 배드민턴을 그만두고 싶었어요. 하지만 제가 잘 할 수 있는 건 배드민턴 뿐이었죠.

지금 생각하면 오히려 이런 일들이 제게 약이 된 것 같아요. 배드민턴을 더 열심히 할 수 있게끔 해주었고, 성공하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을 갖게 되었죠.

제가 방황했다면 부모님한테는 더 힘든 시기가 됐을 거에요. 그래서 방황하고, 반항하고 그러고 싶지는 않았어요. 대신 어머니께 약속을 했죠. 배드민턴 선수로 성공해서 매달 용돈 100만원씩 꼬박꼬박 드리겠다고. 다행히 좋은 성적도 나고 집안 형편도 조금씩 좋아지면서 저는 그 약속을 지킬 수 있었어요. 그런데 어머니는 그 때부터 몸이 아프기 시작하셨죠.


[고백 4 : 작은 키 때문에 남들보다 더 화려해야 했다]
저는 어릴 때부터 키가 작았어요. 그래서 ‘정재성은 성공하기 어렵지’, ‘성공하기 힘들거야’ 이런 말을 많이 들었어요. 키가 작다고 성공할 수 없는 건 아닌데! 화가 굉장히 많이 났어요.

배드민턴은 키가 좀 커야 유리한 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키가 작으면 그만큼 점프를 많이 이용해서 타점을 높게 잡으면 돼요. 솔직히 키가 작아서 불리한 점이라고는 단지 스매싱 때릴 때의 타점? 타점이 낮다는 것 뿐이거든요.

저는 키가 작기 때문에 남들보다 더 특별해야 한다는 걸, 남들보다 더 화려해야 한다는 걸 잘 알고 있었죠. 그래서 저는 어깨 힘을 기르고, 점프력과 스피드를 키우기 위해 웨이트 트레이닝을 굉장히 많이 했어요. 빠른 발놀림과 높은 점프와 강한 어깨를 꾸준히 만들어 왔기 때문에 지금 이렇게 할 수 있는 거예요.

키가 작지만 배드민턴에 도전하시는 분들, 절대 좌절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고백 5 : 용대에게 서운한 적 전혀 없다]
이용대 선수만 스포트라이트를 받아서 서운한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용대는 노력했고, 금메달을 땄고, 스타가 되었으니 관심을 받는 게 당연한 거죠. 만약에 제가 베이징에서 메달을 땄다면 저도 분명히 사람들에게 알려질 기회가 있었겠죠. 물론 제 주위의 사람들은 제가 주목받지 못하는 사실을 안타까워하지만, 저는 금메달을 딴 선수도 아니고, 좋은 성과를 내지 못했기 때문에 저보다 용대가 관심을 받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어떻게 보면 용대에게 배울 점이 참 많아요. 나이는 저보다 어리지만 훈련에 성실하게 임하고, 똑똑하고, 자신의 일을 알아서 잘 해요. 선수들끼리 재미삼아 게임을 해도, 그것마저도 지는 걸 싫어하죠. 지금까지 파트너로서 7년째 함께 달려와 준 것에 고맙고, 다른 생각하지 않고 배드민턴에 열정을 다해줘서 고맙고. 런던올림픽에 가서 좋은 결실을 맺고, 같이 웃었으면 좋겠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꼭 최고의 선수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얘기해 주고 싶어요.


인터뷰&진행 : 배나영
영상&사진 : 정민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