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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런던올림픽] 유도 조준호 '스스로 빛을 발하다'

정민건TV 2012. 7. 29. 15:38


조준호(25)|국가대표 유도 선수
  • 2011 세계유도선수권대회 남자 66kg급 동메달
  • 2011 국제유도연맹 뒤셀도르프 그랜드슬램 남자 66kg급 은메달
  • 2010 이탈리아 월드컵 유도대회 남자 66kg급 금메달
조준호.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유도를 했던 그는 중·고등학교때까지 동생 조준현과 함께 부산을 주름잡는 쌍둥이 유도선수로 유명했다. 하지만 용인대 1학년 때 국가대표 훈련 파트너로 태릉선수촌 생활을 시작한 이후, 그는 ‘조준호’라는 자신의 이름이 아닌 ‘최민호의 그림자’라는 수식어로 존재할 수 밖에 없었다. 베이징 올림픽 때는 자신의 이름을 걸고 선수로 출전할 수 없다는 사실에 남몰래 눈물을 흘렸다. 지난해부터 최민호 선수가 66kg급으로 체급을 올리면서 둘은 훈련파트너가 아닌 경쟁자가 되었다.

조준호는 2010년 이탈리아월드컵유도대회 남자 66㎏급 금메달을 시작으로 2011년에는 국제유도연맹 뒤셀도르프 그랜드슬램 남자 66㎏급 은메달, 세계유도선수권대회 남자 66㎏급 동메달, 여명컵 전국유도대회 남자 66㎏급 금메달 등 수많은 대회에서 메달을 따며 세계랭킹을 올리기 시작했다.

조준호는 더 이상 빛이 있어야만 존재하는 그림자에 머물지 않았다. 묵묵하게, 꾸준하게 스폰지처럼 주위의 빛을 빨아들였다. 잡기 기술은 김재범에게 배우고, 잡기 이후의 움직임은 왕기춘에게 배웠다. 세계 최고라고 생각하는 최민호 선배의 기술을 비디오로 수백 번씩 돌려보며 분석하고 머릿속에 그려 넣었다.

조준호는 겸손하게도 ‘나의 기술엔 별로 내세울 것이 없다’고 말하지만, 이미 그의 몸에 녹아든 수많은 기술들은 오로지 그만의 것이다. 그는 이제 스스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그 빛이 런던을 환하게 밝히는 날이 멀지 않았다.


#1. 남자, 눈물을 흘리다.
조준호의 국제대회 랭킹은 8위였고, 최민호는 체급을 바꾼 지 얼마 되지 않아 올림픽 출전이 가능한지 여부도 불투명했다. 하지만 최민호는 특유의 저력을 발휘해서 국제대회 랭킹을 무섭게 올리기 시작했고, 조준호를 바짝 추격했다. 결국 둘은 올림픽 출전 티켓을 놓고 맞붙었다.

창원에서 열린 최종선발전에서 조준호는 최민호에게 눈깜짝할 사이에 ‘한판’으로 패했다.

“저는 정말 (최민호 선수의) 그 기술에 대해 완벽하게 방어를 했다고 생각했어요. 최민호 선수는 제 우상이고, 존경하는 선배여서 연구를 진짜 많이 했거든요. 더 이상 완벽하게 방어할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한순간에 넘어가 버리더라고요. 정말 넘어갈 수가 없는 상황이었는데. 아... 진짜...”

아쉬운 좌절의 순간이 지나고 조준호는 올림픽 출전에 대한 마음을 접었다. ‘이제는 훈련도 끝났구나’ 생각하니 조금 개운한 느낌도 들었다. 그러나 다음날, 대한유도회는 조준호를 국가대표로 선발했다. 세계랭킹 8위의 조준호가 랭킹 28위인 최민호보다 본선 무대에서 유리할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조준호는 그 소식을 최민호 선배로부터 직접 들었다.

“저는 최민호 선배가 얼마나 힘들게 훈련해서 최종선발전까지 올라왔는지 잘 알기 때문에, 그 힘든 과정을 제가 모두 지켜봤기 때문에, 선배한테 졌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깔끔하게 포기할 수 있었어요. 그런데 아침밥을 먹다가 최민호 선배한테 전화를 받았어요. 선배가 네가 됐다고, 축하한다고, 내 몫까지 더 열심히 하라고 말씀해 주셔서......”

조준호 선수는 울컥, 하고 말을 맺지 못했다. 수만 가지 생각이 스쳤으리라. 그의 눈에 반짝, 하고 눈물이 빛났다. ‘눈물나나 봐요’, 그가 어색해 할까봐 일부러 말을 건넸더니 그는 농담처럼 “지금 울어야 되지요?”하며 손수건을 꺼내 눈가를 닦았다. 그리고 조금 쑥스러운 기색으로 “제가 눈물이 많습니다.”라고 덧붙였다.

죽기 살기로 상대방을 들어 메치야 하는 유도 선수들. 수없이 깃을 잡고 힘을 겨룬 횟수만큼이나 주저앉은 상대의 손을 잡아 일으켜 세워 주던 그들. 그 사이를 이어주는 끈끈함의 깊이를 과연 어느 누가 짐작할 수 있을까.

조준호 선수는 자신이 과연 떳떳하게 올림픽에 나갈 수 있는 선수인지를 고민하며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고 했다. 선배를 제치고 선발된 미안한 마음 때문이다.

“우여곡절 끝에 선발이 되긴 했지만, 이제는 저 혼자만의 올림픽이 아니잖아요. 더 열심히 부끄럽지 않은 경기를 해서 좋은 성적으로 보답하는 게 답인 것 같습니다.”

다행이다, 그가 마음을 다잡아줘서. 그가 선배의 몫까지 더 열심히 뛰겠다고 다짐해줘서, 참 다행이다. 좋은 성적은 그림자처럼 따라올 것이다.




#2. 투병중인 어머님을 위해서
“일본에 이노우에 코세이라는 선수가 있습니다. 시드니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데 어머님이 올림픽을 얼마 안남기고 돌아가셨다고 해요. 그가 시상대에 어머니 영정사진을 들고 올라갔었죠.”

조준호 선수는 한동안 침묵했다. 그리고 나서 베이징올림픽 당시 힘들었던 속내를 털어놓았다. 그는 베이징올림픽부터 태릉선수촌에 입소해 훈련파트너 생활을 했다. 가족들은 그의 훈련에 지장을 줄까봐 걱정한 나머지, 어머니가 위독하시다는 소식을 그에게 전하지 않았다.

“동생을 만났는데 뭔가 이상했어요. 결국 어머니가 간이 안 좋으셔서 많이 위독하시다는 걸 알게 됐죠. 병상에 계신 어머니가 제가 올림픽에 나가는 걸 보고 싶다고 하셨대요. 저도 그러고 싶었지만 이미 베이징올림픽 선수 명단은 결정이 났고... 그래서 운적이 있어요.”

눈물 많은 그는 아마도 이노우에 선수의 모습을 떠올리며 울었을지도 모르겠다.

어머니는 지금도 투병중이시다. 무뚝뚝한 아들은 아직 정확한 병명을 여쭤보지도 못했고, 아들의 컨디션에 영향을 줄까봐 어머니는 병환에 대해 말을 아끼신다. 다행히 그전보다는 나아지셨다고 했다.

“반드시 잘해야 합니다. 제가 결승까지 가야 TV에 나올 테니까요. 그러면 처음으로 TV를 통해 아들을 보시게 되겠지요. 어머니를 위해서라도 좋은 성적을 내고 싶습니다.” 그의 담담한 목소리가 오히려 미덥다.


#3. 런던 올림픽, 끝나기만 해봐라!
올림픽을 준비하는 동안 가장 힘든 일은 무엇이었을까. 조준호 선수는 고개를 저으며 이렇게 말했다.

“어떤 게 더 힘들다고 꼽을 수가 없어요. 하루하루가 계속 힘들어요. 매일 더 힘들어지죠. 쉬는 시간조차 힘든 것 같아요.” 쉴 때도 오로지 시합만 생각한다. 시합 생각을 하지 않는 시간은 기도를 할 때 뿐이다. 하지만 훈련이 아무리 힘들다고 엄살을 부려도 그에게 유도만큼 소중한 것은 없다.

“유도는 제게 친구 그 이상이에요. 유도는 제게 김치라고 해야 할까요. 한국 사람은 김치 없으면 안 되잖아요. 유도가 없는 제 인생은 상상도 안 해봤고, 상상할 수도 없어요.”

유도를 김치에 비유하다니, 다부진 대답치고는 참 절묘하다.

“올림픽이 끝나면 실컷 잠을 자고 싶어요. 제가 잠이 많거든요. 맛있는 거 먹고, 열두 시간이고 열네 시간이고 푹 자고 싶어요.”

꽃다운 청춘인데 잠만 자고 싶으랴. ‘연애할 생각은 없냐’고 넌지시 물었더니 “아우, 많아요!”라고 대답하며 환하게 웃는다. 키도 크면 좋겠고, 예쁘고 착하면 좋겠다며 이상형을 늘어놓는 모습은 유도 선수 조준호가 아닌 평범한 청년 조준호다.

어쩌면 평범한 청년 조준호의 모습을 보는 것은 이번이 마지막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런던 올림픽이 끝나면 그는 평범한 청년이 아닌 세계적인 영웅이 될지도 모르니까.




#4. 조준호 선수의 각오 한마디!
안녕하세요 유도 마이너스 66키로급 조준호입니다.

제가 처녀출전이라서 걱정하시는 분들도 많고, 여러 가지 우여곡절 끝에 선발이 되어서 올림픽에 나가게 되었지만 그만큼 더 열심히, 부끄럽지 않은 경기해서 좋은 성적으로 꼭 보답할 수 있도록 열심히 하겠습니다.


인터뷰&진행 : 배나영
영상&사진 : 정민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