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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문선 축구담론2] 스위스전 오프사이드 논란에 대한 회고

정민건TV 2008. 11. 11. 01:56

 

 

 By 정민건 (ing)

 

 [ⓜ 신문선 축구담론2] 스위스전 오프사이드 논란에 대한 회고

 

앞으로도 옳은 이야기만 할 것이다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신문선 교수는 자신의 인생에 스위스전 해설이 주홍글씨처럼 따라다닐 것임을 잘 알고 있다.

  

어느덧 2년 4개월이 지난 일임에도 불구하고 당시 심판진의 판정과 신문선 교수의 해설은 지금도 논란이 되는 것이 사실이다.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 신문선 교수는 자신의 해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여전히 신문선 교수는 주위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고 해설자로서 정확하게 맥을 짚고 설명했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고 답했다.

" 방송인은 심판이 아닙니다. 그리고 감독도 선수도 아니죠. 방송인의 영역으로 해설자가 볼 수 있는 것만 설명합니다. 당시 해설자로서 경기를 지켜보면서 주심이 골을 선언했고, 부심은 깃발을 들고 있었죠. 이 상황에서는 왜 주심이 골을 선언했는지 명확하게 설명해야 하는 게 해설자의 몫입니다. "

신문선 교수는 부심이 깃발을 들고 있었음에도 골이 선언된 장면에 처음에는 자신도 의아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는 당시 상황에서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고 주심이 골을 선언한 만큼 느린 그림을 통해 이 장면을 분석해봤으면 좋겠다는 생각했다고 한다. 그리고 곧이어 리플레이가 이어졌다.

 

이 상황에서 신문선 교수는 아쉽지만 알렉산더 프라이의 골이 오프사이드가 아니라는 해설을 남겼다. 왜 그랬을까? 그는 당시 상황을 종이에 그려가며 설명했다. 일부 네티즌들이 제기한 국제축구연맹 홈페이지에 게시된 오프사이드 룰에 대해서도 잘못 해석한 것이라고 일축했다.

" 이호의 발에 볼이 터치 되기 전, 스위스의 사비에르 마르가에스의 패스가 골문 쪽으로 향하지 않는 횡 패스이기 때문입니다. 공격 방향으로의 의지가 없었고 이호의 발에 맞고 굴절되었기 때문에 오프사이드가 적용되지 않았던 거죠. 때문에 이골이 왜 선언되었는지 설명해야 했습니다. 물론 부심은 깃발을 들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농구가 다심제인 반면 축구는 주심만이 휘슬을 불고 결정합니다. 그 경기가 끝난 뒤에도 전혀 문제가 없었습니다. "

신문선 교수는 한국과 스위스의 경기가 끝난 뒤, 제3국의 경기를 중계하다 뒤늦게야 국내에서 당시 상황에 대한 논란, 그리고 자신의 해설에 대한 논란이 빚어졌다고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축구계 전문가들의 반응도 마찬가지였고 자신이 바라본 시각은 틀림이 없다고 강조했다.

 

" 독일 월드컵 이후 국내 심판들을 위한 심판 강습회를 위해 FIFA 심판 교육위원이 방한했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많은 기자와 해설자들이 그 자리에 있었고 저 역시 함께했었습니다. 논쟁을 불러 일으킬만한 여러 가지 예시 장면이 제시되었는데, 한국과 스위스전의 그 장면은 빠져있었습니다. 난리가 났죠. 우리에게는 큰 사건이었으니까요. 하지만, 그 장면은 논쟁의 거리가 되지 않았다고 하더군요. 마찬가지로 독일 RAI 방송에서 경기후 당시 한국과 스위스전에 대한 이야기가 흘러나왔습니다. 독일 축구의 영웅 귄터 네쳐가 간단히 해설하고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더군요. 왜 한국 선수들은 주심의 휘슬이 울리지도 않았는데 뛰지 않았느냐고 말이죠. "

이유를 떠나 신문선 교수는 당시 여파에 상당히 힘겨운 시기를 보내야만 했다. 신문선 교수는 이기고 지는 결과에 목을 매는 문화와 그에 대한 흐름을 거꾸로 돌이킬 수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인터넷에서 잘못된 정보를 가공하고 미디어는 사실인 양 보도해 많은 상처를 입었다고 한다. 최진설, 정선희 등 최근 잘못된 정보로 인해 고통 받았던 몇몇 연예인의 심정 역시 이해한다는 반응이었다.

하지만, 신문선 교수는 포퓰리즘에 대한 압박으로 인해 대중 앞에서 숨지 않았다며 자신의 입장을 정리했다. 그리고 다음을 통해 활동을 재개하는 이유는 딱 하나라고 한다. 전문가의 판단과 행동이 대중심리에 의해 공격받는다고 해서 꺾이게 되면 축구뿐만 아니라 사회 각 분야에 심각한 선례를 남기기 때문에 어떠한 상황에서도 옳은 이야기를 할 것이라는 점이다.


교육자로서 살고 싶은 신문선, 팬들과도 함께 하고 싶다

 

" 저는 1998년 프랑스 월드컵이 끝나고 나서 너무 유명해졌던 것 같습니다. 때문에 스스로 나를 버려야겠다는 생각도 했죠.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전 해설자가 제 직업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이 외도를 언제 끝내야 좋을지 고민했죠. "

신문선 교수는 해설가로서의 삶을 떠난 것에 대해 다시 한 번 홀가분하다며 강조했다. 그리고 자신은 교수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고 가장 소중한 클라이언트는 직접 가르치는 학생이라며 대학 강단에서 교육자로서의 일에 전념하고 싶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그래서 방송계로 다시 돌아갈 여유가 없다고 지적했다. 당분간 대학 강단에서의 교수로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묵묵히 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다만, 다음을 통해 축구팬들과 만나게 되는 것을 수락한 것은 이유가 있었다고 한다. 다음을 통해 팬들과 쌍방교류를 나누면서 좀 더 축구문화가 성숙하는 데 분명 자신이 해야 할 몫이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대중과 함께 축구에 대한 사랑과 담론을 공유하고 싶다고 밝혔다. 축구계의 이슈, 갈등 그리고 경기에 대해 자신의 생각과 지식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좋겠다는 뜻을 남겼다.

 

 

" 신문선은 쓴 소리꾼, 신문선은 야당인사라고 보시는 분들이 많은 것을 잘 압니다. 하지만, 이제는 너무 강한 것도 지양하고 부드럽게 대중과 공유의 장을 만들고 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