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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드컵 人터뷰18 -김병지上] “98WC 네덜란드전, 좌절을 느꼈다”

정민건TV 2010. 5. 8. 04:11

 

[ⓜ 월드컵 人터뷰18 -김병지上] “98WC 네덜란드전, 좌절을 느꼈다”

 

[월드컵특집 人터뷰18] 김병지① "네덜란드전 좌절을 느꼈다 "

골키퍼의 전설 김병지 ⓒ손춘근
KFA(대한축구협회) 홈페이지에서는 DAUM과 공동 기획한 '월드컵 특집 릴레이 人터뷰'를 남아프리카 공화국(이하 남아공) 월드컵이 열리는 6월까지 격주로 게재합니다.

국내 최대 인터넷포털 운영사이자 KFA 공식후원사인 DAUM과 함께 기획하고 운영하는 '월드컵 특집 릴레이 人터뷰'는 2010 남아공월드컵을 준비하는 대표팀을 응원하기 위한 홍보 프로그램으로써 한국축구의 국민적 붐 조성을 꾀하고자 하는 취지를 담고 있습니다.

인터뷰 대상은 월드컵과 관련된 인물들이며, 현 대표팀 선수들을 비롯해 추억의 스타, KFA 행정인, 역대 월드컵대표팀 감독 등이 릴레이 인터뷰에 참여할 예정입니다. 특히 KFA 및 DAUM 홈페이지를 통해 축구팬들의 질문들도 수렴해 궁금한 점들을 해소시켜 드립니다. 인터뷰는 KFA 홈페이지와 DAUM 홈페이지에 기사와 동영상으로 게재됩니다.

18번째 인터뷰 대상자는 18년간 축구공을 막아오신 '골키퍼의 달인' 김병지(40, 경남) 선수입니다. 트레이드 마크인 '꽁지머리'로 잘 알려진 김병지 선수는 1992년 울산 현대에 입단해 포항, 서울을 거쳐 현재는 경남의 놀라운 상승세를 주도하고 있습니다.

90년대 중반 골키퍼지만 폭넓은 수비범위를 자랑하던 김병지 선수는 과감한 전진과 예사롭지 않은 공격본능으로 축구팬들의 눈을 사로잡았습니다. 1998년 K-리그 플레이오프에서는 경기 종료 직전 천금 같은 헤딩골을 터트려 소속팀을 결승전까지 올려놓기도 했습니다. 그는 골키퍼임에도 불구하고 K-리그 통산 3골을 기록했습니다.

그러나 김병지 선수가 축구 팬들의 머릿속에 깊게 각인된 것은 단지 그가 기록한 득점 때문이 아닙니다. 지난 18년간 그가 막아온 수 많은 슈팅 때문입니다. K-리그에서 510경기에 출장한 김병지 선수는 총 507골을 실점해 경기당 평균 실점율이 '0'점대에 머물고 있습니다. 이 기록은 현재 K-리그에서 뛰고 있는 골키퍼 중 단연 최고입니다. 또한 매 경기 K리그 최다출장 기록을 갱신하고 있어 '살아있는 전설'로도 불립니다.

1995년 대표팀에 데뷔한 김병지 선수는 1998년 프랑스월드컵에서 주전 골키퍼였습니다. 그는 수 많은 슈팅을 막아내며 대한민국 선수단에서 가장 눈에 띄는 선수였지만 끝내 고개는 들지 못했습니다. 멕시코와의 첫 경기에서 3골, 네덜란드에게는 5골이나 내줬기 때문입니다. 비록 네덜란드전에서는 5실점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20여 차례의 선방을 기록해 '야신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이후 2002 한일월드컵에서는 이운재(37, 수원) 선수의 뒤를 받쳐 대표팀 골문을 든든하게 했습니다. K-리그에서 여전히 최고의 선방을 보이고 있는 김병지 선수는 2006년에 이어 2010년에도 그 실력을 인정받아 대표팀 승선이 기대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2008년 1월 허정무 감독에 의해 대표팀에 선발된 그는 불의의 허리 부상으로 인해 대표팀에서 물러났습니다.

지난 2009년부터 고향팀인 경남FC에서 활약중인 김병지는 경남의 약한 수비력으로 인해 실점율이 올라갈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0'점대의 실점율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로 인해 경남은 현재 5연승을 기록하며 구단 창단 후 처음으로 K-리그 선두를 달리고 있습니다.

경남의 골문을 굳건히 지키고 있다 ⓒ이상헌
- 월드컵 특집 인터뷰 18번째 주자로 인터뷰 하게 되어 반갑습니다. 먼저 현재 상승세인 경남의 이야기를 안 할 수 없는데요. 경남의 상승세가 아주 무섭습니다.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으로서 경남 상승세의 요인은 어디에 있다고 보시나요?

(인터뷰는 지난 4월 28일로 K리그 10라운드가 치러지기 전)
여러 시너지 효과가 있었겠죠. 이것은 단시간에 이뤄진 결과가 아니에요. 우리 젊은 선수들이 결국은 다 2년차 선수들이에요. 1년차도 있고요. 작년 시즌 전기리그, 후기리그, 그리고 올해 전기리그를 세 번의 리그라고 보면 그 발전속도가 상당히 빨랐어요. 열정과 패기로 시작했지만 경험이 미숙한 관계로 작년 첫 출발부터 조금 어려웠고, 그 다음에 여름 동안 합숙훈련을 통해서 그런 어려운 점을 많이 보강해서 후기리그부터 좋은 모습을 많이 보여왔어요.

조금 부족했던 부분이 또 있었는데 작년 시즌을 아쉽게 마무리 지었고 이번 터키 전지훈련에서 작년에 부족했던 부분들을 철저하게 연습해서 부족한 부분들을 채웠죠. 시즌을 시작하면서 감독님께서 선수들에게 요구하셨던 부분들이 많이 있어요. 부분전술, 컴팩트한 포지션별 위치, 수비-미드필드-공격 간의 1선, 2선, 3선간의 유기적인 움직임 등 이런 것들이 약속과 관계된 것처럼 유기적으로 잘 움직이다 보니까 상승세를 탔죠. 그 상승세 속에서 선수들이 '어떻게 하면 승리를 할 수 있을까'라는 부분이 실전에서 많이 이뤄졌어요.

그런 부분은 감독님이 구상하시는 파트별 전술에 대한 움직임들을 미리 말씀을 많이 해주시거든요. 그런 것들이 실제로 경기장에서 득점도 되고 좋은 경기를 이끌어 내고 볼 점유율도 높이다 보니까 승리를 한 것 같아요.

- 매 시즌 보완해가고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신다면요?

우리 팀은 젊어요. 그렇기 때문에 힘, 열정, 패기, 순발력, 민첩성 등은 상당히 좋았거든요. 거기에 비해서 경험이 많이 부족했잖아요. 짧은 기간에 그런 경험들을 축적했다는 것이 좋은 것이고, 다른 팀에 있는 선수들이 2년 동안에 느꼈을 경험들을 이 선수들은 집중적으로 경기를 뛰었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짧은 시간 안에 그 경험들을 축적했어요. 작년 전기리그와 후기리그의 달라진 부분이 그런 짧은 시간에 겪은 경험들이죠.

이제 2010 시즌에 전지훈련을 통해서 이뤄낸 점은 전술적인 이해능력이 통해서 극대화됐던 것이죠. 그게 2010 시즌에 경기장안에서 나타났던 것 같아요.

- 지난 성남전에서 심판의 결정적인 오심이 나왔는데요, 당시 김병지 선수의 침착한 대처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선수로서 확연한 오심에 화가 날만도 했을 텐데, 어떻게 참아내셨나요?

항상 주심의 선언과 결정은 존중해야 돼요. 그렇지만 저희들도 알고 상대팀도 아는 경우가 있거든요. 그날 상황은 사실 조금은 다 아는 상황이었거든요. PK를 얻어냈던 송호영 선수도 알고, PK가 아님에도 PK를 준 김주영 선수도 알잖아요. 저도 그것을 다 봤었고. 그 상황은 절체절명의 상황이거든요. 2-1로 리드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 마지막 1분에 이루어졌던 상황이기 때문에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부분은 아니에요. 정확한 판단이 아니었다고 생각을 했기 때문에요.

그 상황에서 경남FC 쪽에서만 많이 흥분을 했죠. 아니라고 생각을 했기 때문에요. 그렇지만 이미 선언은 된 것이고, 선수들이 받아들이는 것이죠. 이런 상황에서는 어떤 어필을 하느냐가 굉장히 중요하거든요. 대기심도 있지만 그 분들의 심리를 자극하지 않는 범위에서의 어필은 필요하거든요. 그래서 재심을 요청했는데 결국은 PK가 인정됐어요.

감독님께서 그 상황을 아시고 조금 심하게 어필을 하셔서 문제가 됐었는데, 결론적으로 이야기를 하자면 PK 자체는 많이 아쉬웠지만 다행스럽게 고비를 잘 넘겼던 것 같습니다.

작년 시즌의 김병지 ⓒ이상헌
- 팬들은 당시 심판의 판정이 루시오 선수의 역전골에 대한 보상판정이었다고 말하는데요. 김병지 선수도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동의 못하죠. 루시오 선수가 핸드볼을 했다고 보면 미드필드에서의 과정을 두고 얘기하는 것 같거든요. 고의냐 아니냐 판단은 주심이 하는 것인데 그 상황이 핸드볼이라고 봤기 때문에 나중에 페널티킥 보상을 줬다고 생각한다면 이것은 엄청나게 큰 차이에요.

페널티킥에 페널티킥으로 보상 판정을 줬다고 한다면 1-1의 싸움이지만, 미드필드에서의 핸드볼 반칙을 안 불었으니까 페널티킥을 준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이뤄질 수 없는 비교죠. 요즘 보상판정이라는 것은 있을 수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것은 없어졌다고 생각을 합니다.

- 팬들은 당시 성남의 몰리나 선수가 일부러 실축했다는 말도 나오는데, 김병지 선수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조금은 미화됐다고 보고요.(웃음) 경기장 상태가 워낙 열악했어요. 몰리나 선수가 킥을 하기 전에도 잔디를 많이 다졌었고, 실축하고 난 뒤에도 잔디 탓을 했었거든요. 잔디 상태가 굉장히 안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일부러 그렇게 찰 것 같으면 백패스 하고 말죠.(웃음)

- 1995년 울산에서 K-리그 우승한 이후, K-리그 우승이 없습니다. (준우승만 2회) 올 시즌 경남에서 우승할 수 있을 것 같나요?

상당히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1위를 하기까지 9경기를 치렀는데, 1위를 하기 위해서 정말 어려운 도전을 했어요. 지금 5연승을 했지만 앞서 네 경기는 전문가들에게 우승후보라는 평가를 받았던 팀들인데, 우리는 상당히 고전을 할 것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렇지만 그 경기들을 도전을 해서 멋지게 이겨냈고, 이제 마지막 우승후보인 전북이 남아있는 상태에요.

전북을 이겨야 되는 도전을 해야 되고, 앞으로 지켜야 되는 도전이 우리 젊은 선수들에게는 지금까지 했던 도전들보다 훨~씬 더 힘든 도전이 될 것 같고요. 경남이 할 수 있는 일은 최선을 다하는 것인데 우승이라는 것은 그렇게 쉽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앞으로도 많이 험난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쉽지만은 않은 도전이라고 생각합니다.

- 경남이 우승을 차지하는데 가장 큰 걸림돌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가지고 있는 선수 가용 인원 내에서는 첫째는 부상, 둘째는 경고 누적으로 인해서 선수가 경기에 뛸 수 없는 상황이 생기는 것이죠. 그 이유는 다들 알다시피 우리 선수의 구성원이 그렇게 두텁지가 못해요. 저희들은 40여명의 선수들을 보유하고 있지만 그래도 즉시 전력감은 다른 팀보다는 열악한 상황이기 때문에 최대한 경기를 뛸 수 있는 선수들이 부상이나 경고 누적으로 인해서 이탈되는 것이 없어야 저희들이 전력 유지를 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 지금까지 울산-포항-서울을 거치신 후, 고향팀인 경남으로 이적하셨습니다. 프로페셔널이시니 모든 팀에서 열심히 뛰셨겠지만, 그래도 고향팀에서 뛰는 기분은 남다를 것 같습니다.

젊을 때 프로선수로서 가졌던 마음과 어떻게 보면 은퇴를 할 나이에 갖는 직업에 대한 생각은 다르게 다가와요. 젊을 때 나를 위해서 했던 운동과 이제는 제가 경기를 뛰지만 많은 가족들이 나를 보기 위해서 경기장을 찾거든요. 가족들이 기뻐하는 모습, 경기 끝내고 돌아갈 때의 자화상들을 생각하게 되면 훨씬 더 경기에 집중하게 되고 매 경기마다 소홀히 할 수 없는 힘이 되고 있습니다. 책임감이 좀 더 커졌다고 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 경남을 제외하고 울산-포항-서울 중에서 김병지 선수의 경기력이 가장 좋았던 팀은 몇 년도의 어디에서였나요?

팀적으로는 힘들었지만 2007시즌이 가장 좋았습니다. 38경기에서 25골 실점하고 21경기를 무실점했던 때가 경기력에 있어서는 제일 좋았던 것 같아요. 그런데 컨디션은 그때가 좋지는 않았어요. 사실 허리 부상도 있었고요.

- 그렇지만 당시에는 순발력에 대한 지적도 있었는데요.

35세 이후에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20대의 순발력보다는 떨어지거든요. 그것은 지금도 인정하는 부분이고 그때도 그런 것을 느꼈었어요. 그래도 참 신기한 것이 축구는 몸으로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는 것을 그 시기부터 느꼈거든요. 젊을 때 민첩성, 순발력으로 했다면 경험이 축적된 나이든 선수들은 미리 예측할 수 있는 능력도 생기고 지혜도 생기고 영리함도 생기거든요. 그런 부분들이 경기할 때는 상당히 많이 도움이 되고 경기 흐름을 읽을 수 있어요.

경기 흐름을 읽는 다는 것은 실점할 수 있는 상황을 미리 대처할 수 있는 상황을 알고 있다는 이야기거든요. 젊을 때는 몸으로 위험한 상황을 극복했다면 조금 경험이 쌓이고 그러면 지혜로움으로 미리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이 좋아졌다고 생각해요. 지금도 떨어지고 있는 것들은 조금씩 느끼거든요. 그렇지만 나이가 들수록 한 번에 떨어지는 것은 절대 막아야 되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체력의 한계는 자기 관리로 극복을 하고, 민첩성과 순발력이 떨어지는 것은 지혜로써 위기를 넘기고 있습니다.

- 울산, 포항, 서울 중에 가장 강했던 팀은 어디라고 생각하나요?

95~96년의 울산 현대가 제일 강했다고 생각해요. 선수구성 자체가 강했다고 생각하기 보다는 선수들이 갖고 있는 생각들이 참 잘 맞았던 것 같아요. 수비 라인의 선수들은 한 골만 넣어주면 무조건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을 가졌었고, 공격수들은 우리가 한 골만 넣으면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을 가졌어요. 한 골만 넣으면 무조건 지킬 수 있다는 생각을 가졌기 때문에 팀의 응집력이나 집중력이 상당히 좋았던 시기였어요.

- 경남까지 포함하신다면?

페이스는 올해 경남 같이 좋았던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 지난 서울전을 치르면서 509경기를 마쳤습니다. K-리그에서도 벌써 18번째 시즌이신데, 가장 힘들었던 시즌은 언제였나요?

아마 2008 시즌이었지 않나 생각해요. 부상 때문에 경기를 제일 못 뛰었던 시즌이니까요.

- 지난 18년간 가장 경기력이 좋았던 시즌과 나빴던 시즌은 언제라고 생각하시나요?

글쎄요. 개인적으로 얘기하자면 복잡한 것이 많이 있어요. 왜냐하면 팀 성적과도 연관성을 가지거든요. 개인 성적이 조금 안 좋더라도 팀이 우승하면 그만큼 좋은 기분을 느끼고 좋은 시즌을 마무리 할 수는 없거든요.

팀 성적이 좋지 못한데 개인 성적이 좋다는 것은 딱 하나의 위안거리밖에 안 되요. 개인적으로 괜찮게 했으니까 팀 성적이 안 좋아도 괜찮다 이런 정도죠. 개인적으로 조금 부족한 게 많더라도 팀이 우승한다면 '올해 너무 좋았어'라고 생각하게 되요. 감사함이 다 포함되는 것이 있으니까 너무 좋죠.

제일 기억에 남는 시즌은 98년도 헤딩골을 넣었던 시즌이 제일 기억에 남습니다. 포항과의플레이오프에서 헤딩골을 넣었고 준우승을 했어요. 왜 기억에 남느냐면 90년대 중, 후반의 공격하는 골키퍼라는 이미지가 많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그때 당시에는 경기장에 오신 분들이 그런 것을 많이 좋아하셨어요. 지금 안티 분들도 많이 계시지만 실제로 경기장에 나오셔서 응원하는 분들 보면 다 그런 재미있는 퍼포먼스를 원하셨고, 그 헤딩골의 의미는 공격하는 골키퍼의 마침표를 찍는 멋진 헤딩 슛이었죠.

그 헤딩슛이야말로 또 준 플레이오프의 마지막 절체절명의 순간에 나왔던 팀을 위한 아주 값진 헤딩골이었기 때문에 너무 많이 기억에 남습니다.

파란색 머리의 울산 현대 시절 ⓒKFA 홍석균
- 김병지 선수에게는 이 질문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은데요. 작년 시즌은 500경기를 향해 달려 오셨습니다. 이번 시즌은 몇 경기를 목표로 하고 계신가요?

기본적으로 정규리그는 다 뛰고 싶어요, 선수는 모든 경기를 뛰기를 원해요. 그렇지만 그것은 경쟁을 이겨낼 때 가능한 일이기 때문에 제가 가지고 있는 생각과 경쟁하는 것과는 평행선을 긋고 있습니다.

제가 경쟁에서 이겨야만 경기장에 나올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제 목표는 모든 경기에서 뛰는 것이고 후배들과 멋진 경쟁을 해야 합니다. 목표와 경기를 뛰고 싶다는 마음은 다를 수 있습니다.

- 꾸준하게 자신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방법이 있다면요?

큰 획으로 나누면 젊을 때, 가족을 가지고 난 뒤에, 그 다음에 아이들을 가지고 난 뒤라고 구분을 합니다. 목표와 동기부여는 처음에는 직업이니까, 내가 제일 잘할 수 있는 것이고 내가 목표로 삼았던 월드컵을 뛰어야 되기 때문에 열심히 했던 것 같아요.

가정을 가지고 난 뒤에는 아시다시피 기본적으로 축구 선수들이 다 갖는 마음은 하나같이 다 똑같아요. 축구를 좋아하고 내가 하는 일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 그것은 기본적으로 가져가지만 책임감이라는 부분이 더해지죠. 그리고 아이들을 키우면서 생기는 동기부여는 우리 아이들이 아빠가 축구선수라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그런 자부심 등의 부분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 열심히 했던 것 같습니다. 아이들이 축구를 하니까요.

- 이렇게 많은 경기에 뛸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요인을 꼽는다면 무엇인가요?

첫째는 경기력이죠. 지금도 혹자들은 말하죠. 이름으로 뛰는 것 아니냐. 그렇다면 차범근 감독님이 다시 뛰셔야 되고 조광래 감독님이 다시 돌아오셔야 되요. 축구선수는 첫째가 경기력이에요. 저는 은퇴할 나이가 지났지만 경기력으로 그런 것을 극복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 전에 한 인터뷰에서 신의손(사리체프, 현 고양 대교 GK코치) 선수가 43세까지 뛰었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는데 그 기록을 깨실 생각은 없나요?

매 시즌이 마지막이라고 생각을 해요. 제가 원하는 것과 평가기준은 다르거든요. 경기력이 없으면 나이든 선수들은 그 해가 마지막이라는 생각들을 가지고 항상 운동에 임하죠. 그런 경기력이 받쳐줄 때 매년 기록을 써내려 가는 거에요. 제가 이루지 못한 것은 신의손이 가지고 있는 그 기록만을 남겨놓고 있어요.

최다 연속출장(153경기), 한 시즌 최다 무실점경기(21경기), 최다 출전경기(510경기). 이제 꼭 하나 남은 기록이 최고령이기 때문에 올해 열심히 하고 또 선수 생활 연장의 필요성을 느낀다면 연장해야 되겠죠. 그게 아니고 선수보다 더 동기를 부여할 수 있는 그런 목적이 있는 일들이 있다면 그때는 한번 과감하게 생각을 해봐야 될 나이인 것 같아요. 젊다면 당연히 내년에 뛰어야 되지만 지금에 와서는 그런 생각들을 잘 가져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 신의손 선수의 최고령 출장 기록을 그렇게 간절히 원하시지는 않는 모습입니다.

가족들은 원해요.(웃음) 주변에서는 선수일 때의 모습이 제일 좋다고 얘기를 해요. 앞서 얘기했듯이 경기력이 받쳐준다면 제일 기본적인 것은 선수 생명 연장이 제일 우선적이 돼야겠죠. 선수는 경기장에 있을 때가 제일 아름다워 보이니까요.

98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당시의 대표팀과 김병지 ⓒ베스트일레븐
- 이제부터는 '월드컵 人터뷰'인 만큼 월드컵과 관련된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우선 국가대표팀 데뷔전부터 이야기를 할 텐데요. 1995년 6월 5일 코리아컵 코스타리카전이었습니다. 당시 경기가 기억나시나요?

기억납니다. 데뷔전이었기 때문에 너무 기뻤고 설레었고, 그때 당시가 꽁지머리였기 때문에 기억이 납니다.

- 다시 그때의 꽁지머리로 돌아갈 생각은 없나요? (웃음)

은퇴에 대한 이벤트, 퍼포먼스라면 가능하겠지만 지금은 트레이드 마크이기 때문에 머리를 묶는다는 것보다는 제 이미지를 유지하는 것이 낫겠죠. 은퇴 경기 때나 가능하지 않을까요?

- 당시 대표팀 감독님이 박종환 감독님이셨는데요. 박종환 감독님은 당대 최고의 골키퍼였던 사리체프(신의손) 선수를 지켜보신 분이시기도 합니다. 박종환 감독님께서 사리체프에 대해서 말씀을 하시던가요?

그러지는 않으셨어요. 그때 당시 사리체프와의 비교는 경기장에서 소속팀과의 비교는 많이 됐었어요. 국내에서는 제가 유일하게 경기를 뛰었고. 당시 사리체프는 외국인 용병중에서 아주 탁월한 기술과 기량을 가지고 있어서 팀이 이기는데 많은 역할을 했던 선수였어요.

그때 당시에도 비교해보면 서로간의 실점율, 방어율 등등 이렇게 해서 아주 박빙의 승부였거든요. 결국 개인적인 차이는 크지 않았지만 팀 적인 차이는 컸어요. 일화는 매 시즌 우승을 했고, 당시 울산 현대는 우승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 차이가 컸던 것 같아요.

- 김병지 선수가 K-리그에 힘겹게 입문하셨을 때, 사리체프도 K리그에 발을 들였습니다. 몇 년 후 사리체프는 최고의 골키퍼가 됐고 김병지 선수는 외국인 골키퍼에 대항하는 유일한 토종 골키퍼가 됐는데요. 당시 사리체프 골키퍼의 장점은 무엇이었고, 김병지 선수의 장점은 무엇이었나요?

사리체프 선수의 장점이라면 위치를 잡는 것이 아주 탁월했고, 일대일 장면이었을 때 지키는 골키퍼의 표본이었어요. 먼저 선택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상대 골게터들이 아주 부담스러워 했었어요. 거기에서 나오는 아주 쉬운 처리를 했고 그런 방어 능력이 사리체프의 제일 좋은 장점이었어요.

(골키퍼가)먼저 움직이게 되면 공격수가 움직임을 보고 반대쪽으로 편하게 넣을 수 있는데 지키게 되면 심리적으로 상당히 압박을 받게 되거든요. 거기다가 뒤에서 수비수들이 도움을 주고 있으면 급한 것은 공격수거든요. 그때 당시만해도 우리나라 골키퍼들이 먼저 움직이는 경우가 상당히 많았었거든요.


98 프랑스 월드컵에 나선 대표팀과 김병지 ⓒKFA 홍석균

- 박종환 감독님의 뒤를 이어서 차범근 감독님이 대표팀을 맡으셨습니다. 차 감독님은 1992년에 울산에서 김병지 선수를 과감하게 기용하신 분이기도 한데요. 당시 차 감독님과는 특별히 통하는 무엇인가가 있었나요?
차범근 감독님이 좋아하는 스타일을 보면 아주 빠르고 체격적으로 좋은 선수들을 좋아해요. 그리고 스페셜한 무엇인가를 가지고 있는 선수를 많이 좋아하셨어요. 저는 골키퍼로서 조금 작은 키였지만 아주 빠르고 민첩성 있는 부분을 좋아하셨기 때문에 저에게 기회를 주신 것으로 기억하고 있어요.

- 1998 프랑스 월드컵 아시아 지역 예선에서 힘들지 않게 본선에 올랐습니다.(6승 1무 1패) 당시 자신감이 대단했을 것 같은데요.

개인적으로 얘기하자면 다른 골키퍼들과 비교해서 특별하게 빨랐어요. 그런 것이 방어력하고 관계가 깊거든요. 어쨌든 상대 공격수가 슈팅을 하게 되면 손 끝이든, 발 끝이든 막는 것이 최고거든요. 남들보다 빨리 갈 수 있고, 빨리 생각할 수 있고, 빨리 예측할 수 있고, 빨리 손을 대는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것이 경기장에서 나타났었죠.

그렇기 때문에 세계적인 선수들과 비교를 해도 이길 수 있었다고 생각을 했었어요. 바르테즈(프랑스)도 유명했었고요. 인기 있는 골키퍼들은 캄포스(멕시코)도 유명했었고요. 칠라베르트(파라과이)도 유명했었고요.

- 반면 당시에는 김병지 선수가 너무 골문을 비우고 나온다는 지적도 있었습니다. 도쿄에서 가진 일본전에서도 로빙 슈팅으로 선제골을 내주기도 했는데요. 당시 그 논란에 대해서 어떻게 대처하셨나요?

전문가적인 입장이 있고 비전문가적인 입장이 있어요. 보는 입장에 따라 조금 다른 것이 있거든요. 짧은 시간에 설명하자면 스루 패스가 들어와요. 그러면 최종 수비수의 역할을 하는 선수들은 발로 미리 걷어내는 수가 있어요. 그러면 평가는 그냥 잘 걷어냈다고 생각을 하지 선방을 했다고 생각을 안 해요. 그런데 기다렸어요. 그러다가 실점을 하게 되면 '일대일 상황이었으니까 어쩔 수 없었네'라는 평가를 내리지만 실제로 뛰어나와서 쉽게 발로 막았으면 실점을 안 하는 것이거든요. 기다렸다 막으면 멋진 선방이 되는 거에요.

실제로 골키퍼의 방어 능력은 슈팅을 막는 것보다 수비수들을 컨트롤해서 슈팅을 안 오게 하는 골키퍼들이 제일 좋은 골키퍼에요. 그 다음에 수비수들이 슈팅을 줄 수 있는 어려운 상황을 미리 나가서 선방하는 게 두 번째 고요. 그리고 마지막은 어쨌든 실점을 하지 않는 골키퍼가 잘하는 것인데, 제가 말하는 1, 2, 3단계가 있는데 3단계에 와서 막고 실점하는 경우에 있어서는 실제로 골키퍼들이 방어능력에 있어서는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이죠. 사람의 본능의 차이는 정말 눈 깜짝 할 사이에 일어나는 일들은 다 똑같이 느끼거든요.

왜 나가서 막느냐, 왜나가서 실수를 하느냐라고 생각하시지만 데이터를 보면 제가 나가서 실점했던 것은 실제로 거의 소수점에 불과해요. 그렇지만 나가서 막았던 쉽게 클리어링 해냈던 부분들이 많았고요. 지금에 와서 저의 8년 동안 실점율이 거의 평균이거든요. 그런 방어에 대한 능력들이 꾸준함의 연속을 주고 있다고 보시면 정확할 것 같아요.

그것은 빠르고 느리다고 해서 이뤄질 수 있는 부분이 아닌 것 같고 경기의 흐름이라든지, 경기의 맥을 읽는다든지, 최종수비와 골키퍼와의 커뮤니케이션이라든지 이런 부분을 잘해야 되요. 나가서 실수를 해서 공격적인 성향이 있고 이런 것은 예전에 세계적인 추세였다고 보는 부분도 있잖아요. 그 시대에 그런 것이 있었고. 그것 때문에 제 이미지에 문제가 되는 부분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어요.

팀에서 정하는 그런 전술적인 부분들도 많이 있어요. 포백(Back-4)라인을 서게 되면 골키퍼는 골키퍼 뿐만 아니라 최종 수비의 능력도 겸해야 되거든요. 포지션상의 역할도 있고 기본적으로 공격하는 골키퍼로서의 그런 이미지는 괜찮았고요. 당시에는.

98 프랑스 월드컵 네덜란드전이 끝난 후 ⓒKFA 홍석균
- 당시 김병지 선수는 '대한민국의 넘버 원' 골키퍼임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전 국민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으면서 월드컵에 참가하셨는데 당시의 경기력을 냉정하게 평가해보신다면요?

단점도 많이 있었죠. 축구는 혼자서 하는 운동은 아니죠. 그래서 완벽할 수는 없는 것이죠. 체격적인 부분에 있어서 단점이 있었고, 신장면(184Cm)에서도 좀 작았었고요. 그 다음에 경험이 조금 부족했었던 것도 단점이 될 수도 있죠. 실력적으로도 수준 높은 교육을 받지는 못했잖아요. 불과 대표팀 되기 몇 년 전, 프로팀에 와서 골키퍼에 대한 전문가로부터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그런 시간들이 저한테는 부족했던 부분들이었어요.

- 98 월드컵 첫 경기가 멕시코전이었습니다. 하석주 선수가 첫 골을 넣고 퇴장당해 1-3으로 역전패 했는데요. 당시 멕시코의 긴 크로스가 번번히 상대의 머리에 연결되며 허무하게 무너졌습니다. 당시 순발력에 너무 의존한 나머지 공중볼 처리 능력에 의문부호가 붙었는데요.

실점하는 장면은 기억이 나요. 앞서 말씀 드렸듯이 체격적인 부분이 조금 작았던 점은 열세 에 있었는데, 그 상황은 정상적인 크로스가 아니었었어요. 굴절되는 크로스였기 때문에 낙차가 컸다기 보다는 타이밍상에 낮게 오는 볼이 갑자기 굴절돼서 높게 오는 볼이었거든요. 그 상황에서는 어떤 골키퍼라도 막기 힘들 수 있는데, 오히려 키가 작았기 때문에 그걸 못 막았다기 보다는 키가 컸으면 따라가지도 못해요. 민첩성이 떨어지기 때문에요.

장단점이 있는 것이죠. 민첩성이 있는 선수들은 많이 따라가는 반면에 실점을 하게 되면 키가 작아서 먹었구나 하는데, 키가 큰 선수들을 그냥 보고 있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죠. 제가 앞서 말씀 드렸다시피 본능적인 민첩성, 순발력은 큰 차이가 없지만 키가 작은 선수와 큰 선수의 차이는 크거든요. 똑같은 얘기로 키 작은 선수과 큰 선수가 붙었는데 메시 같은 선수가 일대일로 드리블하면 큰 선수들도 못 뺏어요. 반대로 메시가 세계에서 제일 좋지만 제공권 싸움에서 위로 오게 되면 당연히 키 큰 선수가 이기는 것은 쉬운 것이니까요.

비 전문가와 전문가들이 보는 시각차가 있는 것이죠. 그 상황이 정상적인 크로스냐 굴절된 것이냐는 다르죠. 슈팅이 땅볼로 오더라도 수비수 맞고 굴절돼서 골키퍼 역방향으로 가는데 왜 다이빙을 못 뜨냐고 할 수도 있어요.. 당연히 못 뜨거든요. 본능은 이미 이쪽으로 가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요.

지적 사항인 제공권에 대한 것은 인정을 합니다. 체격적으로 정상적으로 높이에 있는 것은 당연히 차이가 있으니까요. 그런데 골키퍼의 입장에서 보면 골대의 높이는 244Cm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185정도만 되면 더 이상 높이 가는 볼들을 잡을 필요는 없거든요. 근데 키가 한 5Cm만 더 컸으면 좋겠다는 아쉬움도 있어요.(웃음)

네덜란드전에서 패한 후 경기장을 빠져나가는 김병지와 선수들 ⓒKFA 홍석균
- 두 번째 경기는 네덜란드전이었습니다. 너무 많이 이야기를 하셔서 이제는 무덤덤해졌을 것 같은데요. 당시 전반전에 두 골을 실점했는데 전반전이 끝난 후 라커룸 분위기는 어땠나요?

힘들었죠. 저희들이 첫 경기를 졌기 때문에 두 번째 경기는 어떻게 해서든 최대한 승점이 필요한 경기였고. 그 경기가 승점이 필요한 이유는 다른 것이 없잖아요. 16강에 대한 목표를 두고 있었기 때문에요. 상대가 네덜란드인데 0-2로 지고 있었다는 것에 대해서는 상당한 심리적으로도 부담감이 작용했고, 16강 좌절이라는 것에 대해서도 염려를 하지 않을 수 없었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라커룸에 분위기는 정말 많이 가라앉았죠.

- 네덜란드의 경기력을 보고도 좌절스러운 점이 있었나요?

저 뿐만 아니라 그날 뛰었던 우리 선수들이 다 그런 것을 느꼈을 거에요. 그때 당시에 네덜란드의 스쿼드는 세계 최강이라고 했었거든요. 전세계 모든 전문가들이 내리는 평가를 봤을 때 우승후보 세 팀 안에 들어갔었거든요. 그런 팀을 상대로 경기를 한다는 것은 상당히 힘들다는 것을 미리 알고 들어갔었죠.

- 실제로도 그렇게 많은 격차가 나던가요?

경기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상당한 차이를 느꼈죠. 좌절을 느꼈습니다.
- 당시 실점은 골키퍼로서는 어찌할 수 없는 골이었습니다. 그래서 수비수들에게 화가 나시기도 했을 것 같은데요. 실점을 하고 선수들을 다그치는 장면을 볼 수 있었습니다. 네덜란드 전의 가장 큰 패착은 무엇이라고 생각을 하셨나요?

경기력 차이죠. 실력차이가 제일 큰 패착이었어요. 분위기도 조금은 네덜란드가 가져갈 수 있는 분위기가 됐었어요. 1차전에서 우리는 멕시코에 졌고, 네덜란드는 당연히 16강에 올라간다고 했는데 벨기에와 비겼어요. 네덜란드 입장에서는 우리를 이기지 않고서는 16강에 대한 그림을 그릴 수 없었기 때문에 집중력 차이가 엄청 났죠.

물론 벨기에 전에서도 경기력 차이가 엄청 났지만 득점을 하지는 못했어요. 멕시코는 3-1로 이겼고요. 그렇게 되면 네 팀 중에서 두 팀이 올라가는 상황이었는데 네덜란드는 상당한 집중력을 가질 수 있는 분위기였죠. 우리도 최소한의 승점을 얻기 위해서는 수비에서 안정적인 것보다는 공격적으로 나갔어야 했기 때문에 힘든 상황이었죠. 1차전에서 멕시코에게 승점을 땄더라면 전술 운영상 조금은 안정된 경기를 할 수 있었을 거에요. 여러 힘든 상황이 연출 됐었어요.

- 네달란드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선수가 있었다면?

베르캄프죠. 그때 당시에도 전 세계에서 제일 공격력을 갖춘 선수로 평가 받았었고 실제로 경기장에서 그런 모습을 보였고 최고의 선수였다고 생각합니다.

- 네덜란드 전에서 큰 실패를 경험하시면서 세계의 벽에 걸려 넘어졌다고 표현하시는 걸 봤습니다. 그 경기를 통해서 세계의 벽을 넘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한다고 느끼셨나요?

느낀 것이 너무나 많아서 한 순간에 이루어 질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 이후에 많은 벽들을 하나씩 넘어왔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2002, 2006, 2010인 지금은 16강에 대한 밑그림을 충분히 그릴 수 있는 위치까지 온 것만해도 많은 단계를 넘어왔다고 생각하거든요. 어린 선수들이 국제경험을 통해서 정말 큰 리그에 가서 많은 경기를 할 수 있는 환경이 되어야 된다고 생각을 해요. 그런 선수들이 결국은 대한민국을 위해서 경기에 나간다고 하면 경쟁력도 있고 실력적으로도 전혀 밀리지 않는 상황을 연출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여전히 남아있는 벽이 있다고 느끼시나요?

많이 남아있죠.
- 멕시코와 네덜란드전 패배로 인해 우리 대표팀은 16강 진출이 좌절됐습니다. 마지막 벨기전을 앞두고는 차범근 감독님이 사퇴하셨는데, 벨기에전에는 어떻게 동기부여를 했나요?

언론을 통해 그렇고 주변에서 많은 얘기들을 해주셨기 때문에 국내 상황도 알고 있었어요. 그래도 우리들에게 남아있는 원정 1승이라는 목표를 위해서 벨기에 전에 총력을 하자는 마음 가짐을 가졌죠. 그렇게 해야만 앞서 말한 세계의 벽을 하나씩 넘을 수 있는 그림을 그릴 수 있다고 생각을 했어요. 그렇게 해서 벨기에전 만큼은 꼭 승리하자는 생각을 갖고 있었어요.

- 차 감독님 사퇴 후 팀 분위기는 어땠나요?

많이 힘들었죠. 예선전을 잘 치러서 자력으로 일찌감치 결정을 짓고 월드컵에 대한 준비를 잘 할 수 있었어요. 그만큼 같이 오랫동안 고생하셨던 분이 월드컵 결과 때문에 중간에 그만두는 상황이 발생했을 때는 상당히 힘들었어요.

→ ②편에 계속...

인터뷰= 손춘근 / 영상= 정민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