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할 타자에서 최고의 4번 타자가 되기까지
2005년 프로에 데뷔한 박병호는 지난해 7월 31일 넥센으로 트레이드되기 전까지 7년 동안 통산 288경기에 출장해 125안타 25홈런 84타점 타율 1할9푼에 그쳤다. 고등학교 때 4연타석 홈런을 기록하는 등 거포 잠재력 하나는 인정받은 그였지만 스타급 선수들이 즐비한 LG에서는 그가 차지할 수 있는 자리가 없었다. 타석에 들어서도 한 번 삼진을 당하면 2군에 내려갈까 하는 부담감에 제 실력을 발휘할 수가 없었다. 지난해 트레이드 전까지 단 1홈런만을 기록하고 있던 박병호는 넥센에 온 뒤 두 달 동안 12홈런을 기록하며 잠재력을 폭발시켰다.
박병호는 예전에 비해 달라진 비결에 대해 "기술적으로는 좌측 타구의 질을 높이기 위해 스프링캠프 때부터 박흥식 타격코치님과 이야기를 많이 했다. 그 결과로 좌측 홈런이 많이 나오게 된 것 같다. 그 훈련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그리고 스프링캠프 때 연습경기를 하면서 (이)택근 형이 '투수가 자꾸 도망가려고 하는데 왜 너는 그걸 치려고 달려드느냐'고 조언을 해줬다. 그 전까지는 투수가 나한테서 도망가려고 한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데 그 뒤로 볼을 보는 눈이 좋아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리고 김시진 전 넥센 감독이 있었다. 박병호는 "감독님이 통산 1할 타자였던 나를 4번 타자로 만들어주셨다. 그 믿음이 없었다면 지금과 같은 성적을 내기는 힘들었을 것"이라며 고마워 했다. 박병호는 그 믿음 아래 지난해부터 하루도 빠짐없이 4번 타자로 출장했다. 가족의 힘도 컸다. 그는 "초등학교 1학년 때 야구를 시작했는데 3학년 때부터 부모님께서 주말 부부로 살면서 나를 뒷바라지 해주셨다. 지금까지 그만두고 싶을 만큼 힘든 적도 많았지만 가족 생각을 하면 다시 힘이 났다"고 말했다.
올 시즌 유일하게 전 경기에 선발 출장하고 있는 박병호는 7년차에 첫 풀타임을 뛰고 있다. 많은 이들이 그의 체력 고갈을 걱정했지만 그는 생각보다 수월하게 고비를 넘기며 거의 시즌 마무리 단계까지 와 있다. 박병호는 "4월에는 사실 성적이 좋지 않았지만 타점이 꾸준히 쌓여 자신감을 유지했다. 7월에 고비가 왔는데 체력이 떨어져 스윙 스피드가 느려지고 타격 폼이 바뀌었다. 그래서 오히려 연습량을 줄였다. 경기 전에 하는 수비 훈련, 타격 훈련을 거르거나 해서 체력 안배를 했다"고 밝혔다.
스물일곱 당당한 청년이자 가장, 박병호
이제 한국 나이 스물일곱 살이지만 어엿한 유부남 박병호. 아내 이지윤 씨는 얼마 전 일을 그만두고 그의 내조에 전념하고 있다. 그가 유명하지 않을 때부터 그의 곁을 묵묵히 지켜준 고마운 아내다. 박병호는 "요즘 쉬는 날에는 아내와 영화를 보거나 밖에서 밥을 먹는다. 외부 활동을 많이 하지는 못한다.
평상시에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기 때문에 가족들과 시간을 많이 보내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신을 좋아하는 그는 올 봄 왼쪽 팔에 커다랗게 새긴 문신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박병호는 문신에 대해 묻자 쑥스러워하며 "원래 문신을 새기는 것을 좋아한다. (팔 문신은) 스프링캠프 때 텍사스 레인저스 구장을 썼는데 조시 해밀턴의 팔 문신이 멋있어서 해봤다. 마오리족의 무늬인데 불과 검 모양이라 남성스럽고 강해 보여서 했다"고 말했다.'꽁지머리'는 자주 가는 미용실 디자이너의 추천으로 해봤는데 동료들의 반응이 좋아서 계속 하고 있다.
가장 친한 동료는 지난해 같은 팀이 됐다가 두산 베어스로 트레이드된 내야수 오재일(26)이다. 박병호는 "상무 때 룸메이트가 되면서 친해졌다. 지난해 내가 트레이드돼서 왔을 때도 많이 반겨줘서 좋았는데 이번에는 재일이가 트레이드돼 마음이 아프다. 예전 팀이었던 LG 선수들과도 두루두루 친하다"고 말했다. 팀에서는 의외로 브랜든 나이트, 앤디 밴 헤켄 등 외국인 선수들과 친분을 쌓고 있다. 박병호는 "나이트와 밴 헤켄이 항상 내 짧은 영어를 알아들어 주고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영어로 답을 해준다. 그 선수들도 나와 밥을 먹고 이야기를 하는 게 외롭지 않고 좋을 것"이라며 웃었다.
올해보다 내년이 더 기대되는 그의 성장은 '진행 중'
넥센은 올 시즌보다는 내년이 더 기대되는 팀으로 꼽힌다. 박병호 또한 앞으로의 발전이 기대되는 타자 중 한 명이다. 그러나 박병호는 내년 목표를 구체적으로 세우지 않고 있다. 그는 "박흥식 코치님과 3년 후에 홈런왕에 도전하는 선수가 되자 그랬는데 올해 뜻밖에 홈런이 많이 나왔다. 풀타임 3년을 뛰면서 꾸준히 성적을 내야 검증된 타자라고 생각한다. 홈런, 타점 이런 기록보다는 팀의 4번 타자로 자리매김할 수 있게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다만 올 시즌 MVP와 내년 초 WBC 선출은 가끔 꿈꿔보는 바람이다. 박병호는 "MVP가 되면 뭐라고 할지 자기 전에 누워서 생각해본 적은 있다. 세리머니까지는 생각해보지 않았지만 만약에 된다면 어떤 소감을 말해야 할까 생각해봤다. 무엇보다 김시진 감독님께 4번 타자로 만들어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을 제대로 드린 적이 없는데 감사함을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WBC에 대해서는 "선수로서 국제 대회 경험은 큰 자부심이 될 수 있다. 하지만 1루수 부문이 굉장히 치열한 것을 알고 있다. 그 선수들을 뛰어넘을 수 있게 좋은 성적을 내고 싶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가 고마운 마음을 전할 스승은 이제 없다. 넥센은 9월 17일 김시진 전 감독과의 계약 해지를 밝혔다. 박병호는 "감독님께서 성적 부진으로 물러나셨다. 나는 트레이드 된 지 얼마 안 돼서 마음이 안 아프다고 보실 수도 있겠지만 나뿐 아니라 모든 선수들이 충격을 많이 받았다. 감독님, 코치님들도 가족같이 지냈기 때문에 정말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남은 경기가 있으니까 팬들을 위해 남은 경기 최선을 다하는 게 감독님에 대한 도리인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하고 있다. 마음은 아프지만 끝까지 최선 다하자고 선수들과 이야기를 나눴다"고 전했다.
박병호는 예전 그가 몸을 담았던 LG에도 많은 애정을 가지고 있다. 특히 예전이나 지금이나 그에게 변함없는 응원을 보내주고 있는 LG 팬들은 그에게 고마움의 대상이다. 박병호는 "LG에 있을 때 잘 못해서 죄송스럽다. 팀은 다르지만 응원해주시는 것 알고 있고 LG 팬들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겠다"며 각오를 다졌다. 물론 지난해 들어온 그를 받아주고 응원해주는 넥센 팬들은 당연히 그의 든든한 지원군이다. 성실하고 정 많은 박병호는 팬들에게 내년 자신과 팀을 지켜봐 줄 것을 끝까지 당부했다.
글. 고유라 OSEN 기자 / 사진. OSEN
※ 이 기사는 KBO가 만드는 월간 야구 매거진 [더 베이스볼] 10월호에 게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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