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4월 23일 중국과의 정기전을 통해 A매치 데뷔전을 치렀으며, 1999년 6월 12일 코리아컵 멕시코전에서 A매치 데뷔골을 터트렸습니다. A매치 통산 68경기에 출장해 17골을 기록 중이며, 2002 한일월드컵에서 미국전 동점골과 이탈리아전의 극적인 연장 결승골, 2006 독일월드컵 토고전 결승골 등 중요한 경기에서 값진 골들을 선물했었습니다.
K-리그에서도 총 139경기에 나서 55골-14도움을 기록했으며, 1999년 K-리그 MVP와 베스트11 수상 등의 성과를 올린 바 있습니다.
2002 한일월드컵 미국전에서 골을 넣고 환호하는 안정환 ⓒKFA |
- 다시 대표팀 이야기로 넘어오면 히딩크 감독 부임 이후 한 동안 일명 '안정환 길들이기'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대표팀에도 잘 뽑지 않았는데, 히딩크 감독의 그런 전략이 본인에게 자극제가 되었나요?
아무래도 감독이라는 사람이 선수를 인정하지 않으면 선수로서는 굉장히 상처를 받을 수도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인정받으려고 노력을 할 수도 있거든요. 두 가지를 다 받았던 것 같아요. 제가 더 열심히 잘 해야겠다는 생각도 했고, 반면 자꾸 저를 자극하니까 화도 나고 그랬던 것 같아요.
- 그러고 보니 얼마 전 김병지 선수가 인터뷰에서 히딩크 감독을 존경하지만, 히딩크 감독처럼 한 선수를 희생양으로 삼아 팀을 결속시키는 스타일의 지도자는 되고 싶지 않다는 뉘앙스로 말한 적이 있습니다. 안정환 선수의 생각은 어때요?
그런 방법을 쓰는 감독님도 나쁘지 않다고 봐요. 어차피 그 선수를 쓰겠다고 생각하고, 그 선수를 팀에 도움이 되게 만들기 위해서 하는 것이라면 그 어떤 희생도 선수가 받아들이고 따라가야 한다고 생각을 해요. 그렇게 길들이는 것도 감독님의 성향인데, 히딩크 감독님의 경우 다른 팀에서도 다 성공을 했잖아요. 괜찮은 방법인거 같아요. 물론 나중에는 더 좋은 방법이 나오겠죠. 축구는 무한대니까요.(웃음)
- 2002 월드컵이 다가온 시점에서 서서히 팀의 주축으로 자리 잡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월드컵 본선 1-2차전에서는 황선홍 선수의 교체 멤버로 피치를 밟았어요. 아쉬움은 없었나요?
아니에요. 그 때는 당연하다고 생각했어요. 선홍이 형이라는 큰 산이 있었으니까요. 워낙 잘하셨고, 우리는 거기에 맞춰가는 거였어요. 사실 2002 월드컵에 어쩌면 못 간다고 생각을 했어요. 선홍이 형, (김)도훈이 형, (최)용수 형에 (이)동국이도 있었죠. 좋은 선수들이 너무 많이 있었기 때문에 저에게는 큰 산이었어요. 일단 최종명단에 들어서 조금이라도 게임을 뛰면서 도움을 줘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죠.
- 3차전부터는 주전을 차지했습니다. 그리고 황선홍 선수가 선발에서 제외됐죠. 개인적으로는 안정환-황선홍 투톱도 꼭 보고 싶었는데요.
그런 생각은 하지 않았어요. 감독님의 전술에 맞춰갔으니까요.
- 히딩크 감독님이 주전으로 기용하면서 특별히 주문했던 점이 있었나요?
편하게 많이 뛰면서 움직이고, 네가 가지고 있는 것을 운동장에서 보여주기만 하면 된다고, 다른 거 할 필요 없이 지금처럼만 열심히 하면 된다고 말씀해주셨어요. 월드컵 준비 과정에서는 힘들었지만, 막상 본선에 들어가서는 굉장히 편하게 해주셨던 것 같아요.
" 이번 월드컵이 끝나면 너에게 굉장히 많은 기회가 올 테니까 너는 그걸 위해서 열심히 뛰면 된다 " 고 조언해주시는 것을 듣고, 월드컵 전에 저를 길들일 때 받았던 화 같은 것이 전부 없어지더군요.(웃음) 그렇게 보면 제가 그 때 히딩크 감독님에게 길들여졌던 것이 맞는 것 같아요. 그만큼 저보다 몇 배 똑똑함을 갖고 계신 분이였습니다.
- 이탈리아와의 16강전은 아마 안정환 선수에게도 최고의 날이었을 겁니다. 사실 페널티킥 실축과 연장 결승골까지. 그야말로 지옥과 천당을 넘나들었는데요. 어떤 경기로 기억하나요? 꼭 이기고 싶었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이탈리아에서 받은 설움이 있었기 때문에 그만큼 이기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죠. 하지만 워낙 우리보다 잘하는 팀이었기 때문에 이길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못했어요. '우리는 목표했던 16강에 들었고, 상대는 우리보다 강팀이다. 일단 열심히 하고보자, 져도 우리는 본전이다' 이런 생각을 했었죠. 그런 모든 선수들의 마음이 우리가 이길 수 있었던 원인이었어요. 재미있었던 것은 이탈리아 선수들과 계속 말싸움을 했어요. 제가 이탈리아 선수들과 다 아니까 이탈리아 벤치 선수들이 저를 욕하고, 저도 경기장 안에서 상대 이탈리아 선수들을 욕하고 정신이 없었죠.(웃음) 페널티킥을 실축한 것은 너무 갑작스러웠기 때문에 저로서는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당황했던 것 같아요. 원래 제가 페널티킥을 차는 것이 아닌데, 갑자기 감독님이 경기 전에 저보고 차라고 하시더라고요. 그 경기에서 페널티킥이 나올 줄 알았는지, 신기한 점이 있으신 것 같아요.(웃음) - 저도 현장에서 그 경기를 봤는데, 선제골을 뽑아낸 후의 이탈리아 수비망은 정말 견고해 보였었죠. 절대 골이 들어갈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까지 들었거든요. 뛰는 공격수 입장에서는 어땠나요? 힘들었죠. 이탈리아 선수들이 워낙 포지션을 잘 차지하고 있었거든요. 선수들이 전부 똑똑한 선수들이기 때문에 우리보다는 한 수 위였죠. 우리가 가진 것은 열심히 뛰는 것이었고, 최선을 다하다보니까 이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 마지막 결승골 순간, 같이 뛰었던 말디니 선수는 체력이 떨어져서인지 점프를 못했던 것이 기억나네요.(웃음) 그것을 인식했나요? 그냥 저는 뒤로 한 발 뺐다가 다시 떴는데, 점프를 미리 떴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그런 것 때문에 말디니 선수가 타이밍을 놓친 것 같아요. 저도 제가 너무 미리 뜬 것 같아서 헤딩을 못할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하늘이 도왔죠. 크로스 올라온 볼도 느리게 왔고요. 운이 좋았어요. - 8강 스페인전은 내용 면에서는 만족스럽진 않았던 것 같아요. 스페인 축구를 좋아한다고 들었는데, 직접 만난 스페인은 어땠나요? 날씨도 더웠고 힘들었던 경기였습니다. 우리는 조 예선부터 16강 이탈리아전까지 강팀들과 연이어 붙으면서 정말 많이 뛰었거든요. 체력을 다 소진했기 때문에 힘들었죠. 스페인도 마찬가지고요. 두 팀 모두 날씨가 더워서 힘들었던 것 같아요. 그 때문에 좋은 경기를 하지는 못했죠. - 2002 월드컵 이후 이탈리아전 골든골이 발단이 되어 페루자에서 나와야 한 것은 유명한 사실입니다. 이탈리아에 막 적응한 상황에서 아쉬움도 컸을 것 같은데요. 이제 거의 적응해서 맞춘 상태였는데, 갑자기 그렇게 나올 줄 몰랐어요. 사람의 운명이 이렇게 바뀌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렇지만 어쩔 수 없었어요.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죠. 2002 월드컵 끝나고 가장 많이 아쉬운 부분이에요. 만약 이탈리아에서 더 뛸 수 있었으면 지금의 (박)지성이처럼 유럽에서 꾸준히 활약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죠. 그러나 어쩔 수 없잖아요. 그것으로 인해서 저를 기억해주시는 분도 많기 때문에 좋게 생각해야죠. - 페루자가 아니더라도 다른 팀으로도 갈 수 있지 않았나요? 블랙번 이야기도 있었고요. 예. 블랙번과는 계약을 다 마쳤고, 사인까지 했었어요. 일주일 후에 영국으로 넘어가려고 비행기 티켓하고 집하고 준비를 다 해놨는데, 갑자기 분쟁이 생긴 거예요. 페루자와 부산 사이에 소유권 분쟁이 터졌고, 블랙번과 계약을 했지만 어쩔 수 없이 파기할 수밖에 없었죠. 소송이 걸리면 제가 뛸 수도 없는 것이니까요. 그러다가 결국 일본으로 가게 된 거죠. - 그렇게 잉글랜드행이 좌절된 상황에서 일본에 갔을 때는 의욕이 많이 사라졌을 것 같네요. 그렇죠. 중간에 운동 공백기까지 있었거든요. 그러나 다른 생각도 있었어요. 일본에서 좀 더 잘해야지만 다시 유럽으로 나갈 수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못하면 그냥 계속 있어야 되니까요. 결국 일본에서 좋은 결과를 얻어서 다시 나갈 수 있었습니다. - 어떻게 보면 일본에서 꾸준히 있었으면 경기력 측면에서는 더 유리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도 드네요. 프랑스나 독일에서 힘든 시기를 보냈던 걸 생각하면 말이죠. 아니에요. 저는 프랑스에 갔을 때도 새로운 경험을 해서 너무 좋았어요. 물론 그 때는 힘들었지만 어차피 운동하는 시간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저는 거기서 뛰었다는 것만으로도 개인적으로 만족하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볼 때는 뭐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가고 싶어도 못가고 뛰어보지도 못하는데 갈 팀이 있고 뛸 수 있는 팀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선수한테 좋은 겁니까. 한국에서도 프랑스에 가고 싶어 하는 선수가 정말 많잖아요. 그런 면에 있어서는 행운아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독일도 옮긴 과정에서 말 못할 사정이 있지만, 독일에서 준비했기 때문에 2006 독일월드컵에 보탬이 될 수 있었고요. 프랑스와 독일에서 뛰었던 것에 대해 다른 사람들은 인정을 안 해주지만, 개인적으로는 좋은 경험이었고, 많이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생각해요. - 사실 안정환 선수의 경기력이라면 프랑스나 독일에서 좋은 경기를 할 수 있을 거라 기대했습니다. 무엇이 문제였나요? 프랑스의 FC메스는 팀이 너무 약했어요. 좋은 선수들도 많이 없었고요. 싸게 선수들을 데려와서 성적을 내려는 팀이었는데, 그런 부분에서 아쉬웠죠. 프랑스에서는 정말 힘들었어요. 워낙 흑인선수들이 많아서 태클 범위나 이런 것에서 버티지를 못하겠더라고요. 프랑스가 '아트 사커'의 이미지를 갖고 있지만, 리그를 접하면 굉장히 거칠어요. 이탈리아보다 더 힘들다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
- 어쨌든 그런 와중에 2006 독일 월드컵에 다시 나가게 됐는데, 이번에는 확실하게 후반 조커 형태로 기용되었습니다. 토고전에서는 결승골까지 넣었지만, 이후에도 여전히 교체멤버였습니다. 불만도 있었을 것 같은데요. 그렇죠. 시간이 더 있었으면 잘 할 수 있었을 거라는 생각은 누구나 갖는 것이니까요. 하지만 팀이 그렇게 가는 것이고, 또한 코칭스태프에서는 제가 그렇게 짧은 시간에 팀에 더 보탬이 되고 도움을 줄 수 있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에 그렇게 투입시킨 것이겠죠. 그래서 저는 거기에 맞춰서 준비를 했어요. 사실 90분을 뛰는 것보다 짧은 시간 동안 팀에 도움을 줄 수 있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어차피 팀은 다 같이 하는 것이기 때문에 뛰고 싶다고 뛸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 관련해서 네티즌 분들이 질문을 해주셨는데요. 2006년 스위스전에서 안정환 선수를 좀 더 빨리 투입시켰으면 분위기가 많이 반전되었을 것이고, 그렇게 지지는 않았을 거라는 아쉬움을 나타내셨네요. 또 베어벡 당시 수석코치가 안정환 선수를 조커로 기용하자고 조언했다는 이야기에 대해서도 질문을 했고요. 그건 저도 모르겠어요. 아마 베어벡 코치님이 2002년에 저를 그렇게 활용해서 재미를 봤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일 수도 있겠죠. 스위스전의 경우에는 저도 좀 아쉬웠어요. 득점 기회가 있었는데, 시간이 더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했죠. - 2002 한일월드컵과 2006 독일 월드컵. 두 대회에서의 자신의 경기력을 비교한다면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아무래도 2002년이 피지컬적으로나 여러 면에서 더 좋았죠. 그런데 2006 월드컵에서 우리가 나름대로 좋은 성적을 냈거든요. 1승 1무 1패를 했고, 원정을 나가서 치른 월드컵에서 첫 승도 거뒀고, 프랑스와 비기기도 했어요. 그렇지만 전 대회인 2002 월드컵의 성과 때문에 빛이 바랜 것 같아 아쉬워요. 2006 월드컵을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잖아요. |
- 여러 과정을 거쳐 2007년에는 드디어 K-리그로 복귀합니다. 부산이 아니라 수원이었는데요. 결과적으로는 성공적이지 못했어요. 단순히 몸 상태가 떨어졌던 것만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요. 모르겠어요. 저도 어차피 쉬었던 기간이 있었기 때문에 경기를 더 많이 뛰었으면 빨리 회복할 수 있었고, 팀에 도움을 줄 수 있었을텐데...아무래도 감독님은 성적을 내야 했기 때문에 기다려주지 못했을 수도 있죠. 선수 입장과 감독님 입장은 다르니까요. 개인적으로는 저에게 시간을 더 주시고, 제가 타이밍이 끊어지지 않게 도움을 주셨다면 팀에 더 많이 도움이 됐을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어차피 성적을 내야 하는 상황에서 기다릴 수 없는 부분도 있으셨을테니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다고 생각해요. - 이듬 해 친정팀인 부산으로 옮깁니다. 수원 시절과 비교할 때 부산에서의 1년은 어땠나요? 그 때는 몸 상태가 괜찮은 상태였죠. 팀이 약했지만 그래도 저 나름대로 정말 열심히 뛰고 최선을 다 했던 것 같아요. 팀이 더 좋은 성적을 내는데 보탬이 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제가 생각하기에는 부산에서의 경기력이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어요. 최선을 다했고, 수원에서 못했기 때문에 부산에서 잘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요. - 부산은 안정환 선수의 친정팀인데요. 오랜만에 친정팀에 복귀하니 어떤 느낌이 들었나요? 아무래도 가서 보니까 아쉬운 부분이 많더라고요. 예전에는 정말 관중이 많았었는데 말이죠. 그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관중석의 반 정도만 찼으면 했는데 열기도 많이 떨어졌고, 많이 약해져있더군요. 개인적으로 친정팀인데 많이 아쉬웠습니다. - 팀이 안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고군분투하는 모습도 많이 보였습니다. 베테랑으로서 자신의 경기력 외의 다른 부분까지 신경 써야 한다는 점이 부담으로 작용하는 것 같기도 했는데요. 그런 부분에 대해 황선홍 감독님께서 많이 주문하셨어요. 팀이 약하다보니 그런 쪽으로도 신경을 많이 썼죠. - 더 좋은 환경에서 축구를 했다면 더 많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을 텐데라는 아쉬움은 없었나요? 그런 부분도 있죠. 항상 저는 팬들에게 죄송하다는 말밖에 드리지 못하겠어요. 더 좋은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는데 여러 가지 여건으로 인해 못 보여드렸던 것 같아요. - 많은 팬들이 부산과의 재계약을 원했는데, 결국 무산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저도 부산에서 뛰면서 마무리 하고 싶었는데 구단과 입장차가 있었던 것 같아요. 자세한 말씀을 드리지는 못하지만, 더 뛰고 싶었던 것은 사실이에요. |
- 정말 많은 팬들이 안정환 선수를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 볼 수 있기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후반 조커로서의 가치는 충분히 있다는 반응들인데요. 본인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모르겠어요. 워낙 대표팀이 잘하고 있기 때문에 제가 들어가서 얼마나 도움이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어요. 물론 가고 싶은 마음이 없지는 않지만 현실적으로 제가 얼마나 도움이 될 수 있을까, 대표팀에 들어가려면 여러 가지 과정이 있는데 그것은 감독님의 결정에 따라야 될 것 같아요. 만약에 뽑힌다면 저로서는 마지막 월드컵이니까 목숨을 걸고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할 거예요. 물론 뽑히지 않더라도 받아들어야죠. '아! 내가 부족하니까 지금 젊은 선수들이 잘하고 있으니까'라고 말이죠. 제가 젊었다면 그런 생각을 안 하겠지만, 아무래도 지금은 젊은 선수들보다 부족하니까요. - 아무래도 감독들의 입장에서는 대단한 커리어를 지닌 베테랑 선수를 벤치에 두는 것에 대해 부담스러워하는 경향이 있을 것 같아요. 그런 것은 모르겠어요. 제가 대표팀에 간다 해도 선발로 게임을 뛰고 싶다는 욕심은 없어요. 만약 진짜 간다면 5분이나 10분을 뛰면서 도움을 주는 거죠. - 실제로 2010 월드컵 아시아 1차 예선에서는 대표팀에서 젊은 선수들과 함께 했었습니다. 세대교체가 이뤄지는 시점이었는데, 어떤 느낌이었나요? 당시에는 새로운 선수들이 바뀌면서 팀을 만들어가는 단계였고, 저도 오랜만에 들어간 거라 정비가 되지 않는 상태였죠. 지금은 젊은 선수들이 계속 꾸준히 하고 감독님이 잘 이끄시니까 강해졌잖아요. 그 때는 다소 어수선한 분위기였던 거 같아요. - 개인적으로 볼 때 박주영 선수와 안정환 선수가 상당히 공통점이 많다고 느낍니다. 단순히 플레이 스타일적인 측면이 아니라 한국축구에서 보기 힘든 유형의 공격수라는 점, 슈팅 타이밍이나 번뜩이는 감각 등에서 말이죠.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들어보지는 못했는데, 주영이도 기술적인 축구를 하니까 그렇게 생각하시는 것 같네요. 주영이는 아직 발전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있고 젊기 때문에 저보다 더 좋은 선수가 될 거에요. 프랑스에서도 잘하고 있고요. 스타일 면에서는 저와 조금 다른 점이 있는데, 그걸 비교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지는 않아요. - 그렇다면 한국 최고의 테크니션이라는 말에는 동의하시나요? 최고는 없는 것 같아요. 색깔이 다른 스타일의 축구를 해서 많이 독특하다는 말을 듣긴 했지만 말이죠. - 테크니션 이야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예전 부산 시절에 수비수 6~7명을 제치고 넣은 골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정말 대단한 골이었거든요. 기억하세요? 예. 기억합니다. 동영상으로도 많이 돌아다녀서 봤어요. 그 때는 자신감도 넘치고 스피드가 받쳐주니까 가능했죠. 그런 것이 젊은 선수들의 장점이에요. 지금 그렇게 한다면 말이 안 되죠.(웃음) 설명은 못하지만 젊은 선수만의 장점이 나왔던 것 같아요. - 많은 분들이 미우라처럼 오랜 세월 현역에서 뛰어주길 원하고 있습니다. 스스로는 어느 정도까지 생각하고 있나요? 사실 내년까지 뛰고 은퇴할 생각도 있는데, 기회가 되면 좀 더 하고 싶긴 해요.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으니까요. 체력이 너무 없어서 그만해야 될 때까지 하고 싶지는 않고요. 어느 정도 아쉬움이 있을 때 그만두고 싶어요. - 앞으로의 목표나 계획은 무엇인가요? 지도자는 아직 생각하지 않고 있어요. 그러나 유소년 축구 육성은 꼭 해보고 싶어요. 저도 어렸을 때 잘 배웠기 때문에 많이 도움이 되었거든요. 유럽이나 다른 나라를 많이 돌아다녀봤지만 유소년 클럽 문화가 굉장히 잘 되어 있어요. 그 아이들에게는 꿈보다는 놀이로 다가오는 것 같은데, 그렇게 한 번 해보고 싶어요. 결국 유소년 축구가 강해야 한국축구도 강해질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
- 이제 본격적으로 축구팬들이 질문한 것들을 여쭤보겠습니다. 이탈리아, 독일, 프랑스, 일본, 중국 등 정말 많은 나라에서 선수 생활을 하셨는데요. 제일 자신 있는 외국어는 어떤 나라의 언어인지 궁금합니다. 가장 자신 있는 언어는 없어요. 옮길 때마다 잊어버리게 되더군요. 사람이 그렇더라고요.(웃음) 그래도 생활하는데 불편함은 없을 정도로 조금씩은 하니까 인생에 큰 도움이 된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하면 아무래도 이탈리아어가 가장 자신 있었죠. 그런데 지금은 많이 잊었고, 일본어도 많이 잊어버렸네요. 프랑스어의 경우에는 도저히 못 배우겠더군요. 너무 어려웠어요.(웃음) - 젊은 시기의 안정환 선수는 창의성 있는 플레이만을 고집하던 선수였습니다. 의미 없는 공 돌리기는 절대 하지 않으려 했던 것 같아요. 덕분에 공을 너무 끈다는 등의 비판도 많이 받았었죠. 저는 요즘 그 때가 그립습니다. 아무튼 이런 스타일을 고집하다 버리게 된 계기가 된 것은 무엇인가요? 제가 하고 싶은 대로 플레이를 했던 것도 있지만, 당시에는 축구에 눈을 덜 떴기 때문에 그랬던 것 같아요. 배우는 단계였으니까요. 여전히 많이 부족하지만, 그래도 지금은 그 동안의 경험이 있으니까 그런 플레이는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요. 패스나 빠른 조직력으로 축구를 하기 때문에 옛날처럼 드리블로 다 제치고 그런 것은 없어졌죠. 그 당시에는 그런 축구가 맞는 것일 수도 있고, 지금은 이런 축구가 맞는 것일 수도 있고 그렇죠. 축구는 매일 발전하니까 어떻게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 갑자기 생각이 났는데요. 수원에서 첫 골을 넣은 뒤 한 손은 입가로, 다른 한 손은 귀에 갖다 댔었죠. 당시에 이 골 세러머니의 의미를 수원을 떠난 후에 알려주겠다고 했는데, 그 답을 아직 못 들었어요.(웃음) 그 때는 더 많이 뛰고 싶었기 때문에 불만의 표시였을 수도 있죠. 워낙 좋지 않았고 선수로서 많이 스트레스를 받았던 시기라 불만의 표시였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또 관중들의 환호를 이끌어내기 위한 것도 있었고요. - 서울공고 시절 당시 친구였던 정광민 선수하고는 연락을 하는지요. 고교 시절 안정환 선수와 더불어 서울공고 전성기를 이끌었던 선수였잖아요. 고교 졸업 후에는 대학이나 프로를 다른 팀으로 가서 연락이 끊어졌죠. 그 친구도 기술이 정말 좋았어요. 서울공고 때 감독님이 박윤기 선생님이셨는데, 그 분에게 많이 배웠던 것 같아요. 기술적인 부분에서, 특히 슈팅이나 접는 플레이 등도 박윤기 선생님이 많이 가르쳐 주셨죠. - 베컴이나 이천수 선수처럼 휘어지는 프리킥이나 슈팅을 잘 구사하셨는데, 세리에A로 진출한 이후부터는 패스나 슈팅이나 모두 직선으로 강하게 차는 형태로 바뀌셨어요. 이유가 궁금합니다. 이탈리아에서는 여유있게 감아차고, 생각하고 할 시간이 없었어요. 워낙 수비가 강하게 붙으니까요. 자연적으로 빨리 결정을 해야겠다고 생각을 해서 그렇게 변했던 겁니다. - 예전 부산대우 로얄즈 시절 안정환 선수와 부산대우는 굉장했었습니다. 지금의 부산과 비교할 때 격세지감을 느낄 것 같은데요. 아무래도 관중이 적어지니까 좋지 않죠. 부산은 야구가 워낙 인기가 많으니까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는 것 같아요. 축구만 좋아할 수는 없으니까요. 옛날처럼 관중이 많이 오면 팀도 자연스럽게 더 이기기 위해 노력하면서 윈-윈이 될 것 같은데 열기가 많이 식었죠. 언젠가 는 더 올라오리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 축구를 하면서 가장 행복했던 때와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힘들었을 때는 언제였나요? 본의 아니게 운동을 쉬고 팀을 찾는데 시간을 보내는 것이 가장 힘들었던 것 같아요. 가장 행복했던 때는 경기장에 나가서 골을 넣고 박수를 받는 순간이죠.(웃음) - 안정환 선수에게 있어 베스트 골을 꼽는다면요? 아무래도 2002 한일 월드컵 이탈리아전에서의 골든골과 2006 독일 월드컵 토고전 결승골이죠. 이탈리아전 골은 저에게 기쁨과 슬픔을 동시에 준 골이고, 토고전 골은 기쁨을 준 골이에요. 그 두 골이 가장 기억에 남는 것 같아요. - 안정환 선수는 유독 빅 매치에 강한 것 같습니다. 부산대우 시절부터 안 선수 본인에게 동기부여만 확실하게 된다면 어느 누구보다 경기력이 좋았어요. 큰 경기에만 나가면 강한 면모를 보이는 이유가 무었인지요? 모르겠어요. 운이 많이 따른 것 같아요. 아무래도 그게 혼자 힘으로 되는 것 같지는 않아요. 이탈리아전에서 골을 넣은 것은 크로스가 좋았던 것 같고, 그 전에 기현이가 골을 넣었기 때문에 찬스가 있었던 것이기도 하죠. 토고전도 천수가 넣으면서 결승골의 기회가 온 것이고요. 혼자 힘으로 한 것이 아니고 주위에서 도움을 줬어요. 다 같이 받아야 할 사랑을 제가 골을 넣다보니까 좀 더 받은 것 같아요. - 마지막으로 팬들에게 인사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팬들에게 좋은 경기를 더 많이 보여드려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서 항상 죄송하고요. 팬들이 항상 저를 사랑해주시고 응원해주시는 만큼 언제까지 운동할지는 모르겠지만 여러분들에게 순간 순간 즐거운 모습, 기쁨을 줄 수 있는 경기를 하겠습니다. 항상 사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긴 인터뷰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판타지스타로서의 면모를 많이 보여주시길 기대합니다.
* 공식질문1. 축구는 (내 모든 마음)이다. 제 인생에 있어서 축구는 저의 모든 생각? 마음인 것 같아요. 항상 갖고 있으니까요. * 공식질문2. 월드컵은 (꼭 뛰고 싶은 경기)이다. 꼭 뛰고 싶은 경기? 축구 선수 최고의 경기? 꿈의 경기라고 보면 되겠죠. |
'♡ 스포츠영상발전소 > 국가대표축구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월드컵 人터뷰8 -황선홍下] "팬들의 비판은 공격수로서의 숙명" (0) | 2009.12.16 |
---|---|
[ⓜ 월드컵 人터뷰8 -황선홍上] 94월드컵 부진보다 98월드컵 좌절이 더 고통 (0) | 2009.12.13 |
[ⓜ 월드컵 人터뷰7 -안정환上] '이탈리아에서의 2년이 인생 바꿔' (0) | 2009.12.13 |
[ⓜ 월드컵 人터뷰6 -기성용下] 셀틱에서의 시작, 충분히 좋은 기회! (0) | 2009.12.10 |
[ⓜ 월드컵 人터뷰6 -기성용上] "유럽 원정 통해 한 단계 발전할 수 있을 듯" (0) | 2009.11.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