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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드컵 人터뷰12 -이근호上] “하루 빨리 유럽의 분위기 느끼고 싶어”

정민건TV 2010. 2. 3. 02:29

 

 [ⓜ 월드컵 人터뷰12 -이근호上] “하루 빨리 유럽의 분위기 느끼고 싶어”

 

 

대한축구협회(KFA) 홈페이지에서는 DAUM과 공동 기획한 '월드컵 특집 릴레이 人터뷰'를 남아프리카 공화국(이하 남아공) 월드컵이 열리는 내년 6월까지 격주로 게재합니다.
'월드컵 특집 릴레이 人터뷰'는 2010년 남아공월드컵을 준비하는 대표팀과 대표팀 경기의 홍보를 위해 국내 최대 인터넷포털 운영사이자 KFA 공식후원사인 DAUM과 함께 기획하고 운영하는 홍보 프로그램으로서 한국축구의 국민적 붐 조성을 꾀하고자 하는 취지를 담고 있습니다.


인터뷰 대상은 월드컵과 관련된 인물들이며, 현 대표팀 선수들을 비롯해 추억의 스타, KFA 행정인, 역대 월드컵대표팀 감독 등이 릴레이 인터뷰에 참여할 예정입니다. 특히 KFA 및 DAUM 홈페이지를 통해 축구팬들의 질문들도 수렴해 궁금한 점들을 해소시켜드립니다. 인터뷰는 KFA 홈페이지와 DAUM 홈페이지에 기사와 동영상으로 게재됩니다.




12번째 인터뷰 대상자는 대표팀의 젊은 스트라이커 이근호(24, 이와타)입니다. 2005년 U-20 대표팀 시절만 해도 큰 주목을 받지 못했던 이근호는 K-리그에서도 1군 무대에 거의 나오지 못한 채 힘든 시기를 보내야 했습니다. 그러나 2006년 인천을 2군리그 챔피언으로 견인하며, MVP를 수상하면서 도약의 기틀을 마련합니다. 이어 2007년 대구로 이적하면서 축구 인생의 터닝 포인트를 잡은 그는 2년간 59경기에 나서 23골을 터트리며 K-리그 최고의 국내 공격수로 떠올랐습니다.

이와 같은 상승세를 바탕으로 이근호는 올림픽대표팀과 국가대표팀에서도 절친한 친구인 박주영(모나코)과 짝을 이뤄 큰 활약을 펼쳤습니다. 한창 상승세를 구가하던 시기였던 2008년에 베이징 올림픽에서 실패를 맛봐야 했던 그는 이제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월드컵 특집 인터뷰 12번째 주자로 인터뷰하게 되어 반갑습니다. 오랜만에 대표팀에 합류했는데, 어떤 느낌인가요?

새로운 선수들도 많고, 또 파주 NFC가 아니라 목포축구센터에서 모여서 조금 어색한 부분도 있어요. 그러나 다들 보던 얼굴들이라 적응은 잘하고 있습니다.

다른 선수들에 비해 하루 늦게 합류했어요. 가장 반가워하는 선수는 누구인가요?(웃음)

(강)민수가 와서 활짝 웃어주더군요. 제가 없어서 민수가 말도 없었나 봐요. 활짝 웃으면서 반겨주더라고요.(웃음) 형들도 모두 반갑게 맞이해줬습니다.

이제 동아시아연맹선수권을 앞두고 있습니다. 남아공 월드컵을 향한 마지막 테스트라고도 할 수 있는데요. 부담은 없는지.

부담이라기보다는 월드컵을 앞두고 마지막 경쟁을 하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좋은 모습을 보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죠. 이 대회 뿐 아니라 모든 대회가 긴장감이 있지만, 이번에는 한일전도 있기도 해서 모두들 더 신경이 쓰이고 잘해야겠다는 부담감도 조금씩 있는 것 같습니다.

동아시아연맹선수권은 현재 뛰고 있는 일본에서 열리죠. J리그에서 좋은 활약을 펼치고 있는 만큼 일본에서 일본 대표팀과 대결하는 기분은 더욱 남다를 것 같은데요.

남다르기보다는 일단 진다는 생각은 없어요. 이와타 동료들 중에는 오른쪽 풀백인 코마노 유이치 선수가 이번 대표팀에 뽑혔어요. 작년 J리그 득점왕이었던 마에다 료이치 선수는 선발되지 않았고요. 무조건 좋은 성적을 거둬서 이와타에 돌아갔을 때 팀 동료들 앞에서 당당하게 들어가고 싶습니다.

이번 동아시아연맹선수권에서 어떤 부분을 코칭스태프에게 어필하고 싶은가요?

항상 똑같아요. 새로운 것을 보여주려고 하기보다는 제가 잘할 수 있는 것을 보여주려고 합니다. 더 성실하게 움직이고 뛰면서 상대를 교란시키고 힘들게 해야죠. 그리고 제가 뜀으로써 동료들이 더 편하게 볼을 찰 수 있게 도움을 주고 싶고요. 또한 공격적으로 상대 배후를 침투해 찬스를 만드는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이제 예전 이야기부터 해보겠습니다. 부평고 시절 유망주로 이름을 떨치다가 2005년에 인천에 입단했습니다. 고교 졸업 후 곧바로 K-리그로, 그것도 인천으로 간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고교 시절부터 대학보다는 프로에 가겠다는 생각은 갖고 있었어요. 좀 더 좋은 환경에서 볼을 차고 싶어서요. 원래는 다른 팀에 가기로 되어 있었는데, 갑자기 인천에 신생팀이 창단되었고, 인천 출신 선수가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나와서 제가 가게 됐어요. 저도 그것이 더 좋을 것 같다는 판단이 들었죠. 고교 동기인 (김)승용이의 경우는 먼저 서울과 계약이 되어 있던 상황이었고, 저만 완전히 확정되지 않은 상황이었죠.

2005년은 네덜란드 U-20 월드컵에 참가한 해이기도 합니다. 당시만 해도 U-20 대표팀에서는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었죠. 경기에도 나서지 못했고요. 그 때를 회상해본다면.

어떻게 보면 U-20 월드컵에 나간 것도 운이 따랐던 것 같아요. 당시에는 실력이 많이 모자랐죠. 코치님들도 제가 막차를 탔다고 그러셨어요. 마지막 1명을 놓고 고민하다가 제가 됐다고요. 당시를 돌이켜보면 뛰고는 싶었지만, 정작 실력이 안 되어서 벽에 부딪친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더 열심히 해야 한다는 자극제가 되었죠.

그 시절에는 동료들에 비해 무엇이 부족했다고 생각하나요?

우선 K-리그에서 경기를 뛰지 못하는 상태였기 때문에 많이 조급했고, 자신감도 없었어요. 지금은 제가 하고 싶은 플레이를 한다면, 당시에는 감독님에게 보이기 위한 플레이를 많이 한 것 같아요. 그러다보니 스스로 위축되었고, 제 장점을 살리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인천에서는 2년간 2군에서 힘든 시기를 보내야 했습니다. 동년배 친구들이 1군에서 활약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기분은 많이 씁쓸했을 것 같은데요.

한 마디로 그 때는 노래 가사처럼 '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냐'였어요. 웃고 있어도 마음은 울고 있었죠. 친구들을 만나면 내색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는데도 조금씩은 보였던 것 같아요. 그 정도로 당시는 힘들었습니다. 제 친한 친구들이 전부 1군 무대에서 경기를 뛰고 있으니까 비교도 되고, 여러모로 힘들었죠.

그래도 2006년에 2군리그 MVP를 받았을 때 밝은 모습으로 인터뷰했던 기억이 납니다. 항상 긍정적인 성격인 것 같아요.

당시에는 2군에서 뛰면서 시즌 중반을 지나고 나서는 1군에 대한 생각을 버렸어요. 그리고 지금 2군에서 뛰고 있지만, 여기서 정말 잘해서 인정받고 싶다는 생각을 했죠. 그랬기 때문에 2군리그에서 우승하고, MVP를 받았을 때 결과에 만족하고 기뻤던 것 같아요.

2군리그 MVP를 수상한 이후, 대구로 트레이드되었습니다. 학교도 부평동중, 부평고를 나왔기 때문에 인천에 대한 애정이 컸을 것 같은데, 당시 심정은 어땠나요?

사실 이적은 그 이전부터 추진했었던 거예요. 인천에 있으면서 저에 대한 이미지가 너무 굳어졌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만약 잘하더라도 제 실력이라기보다는 오늘 컨디션이 좋아서 그랬을 것이라는 이미지를 갖게 된 것 같았어요. 그래서 새로운 환경에서 마지막으로 한번 도전해보고 싶었죠. 인천에서도 안 되는데, 다른 팀에 가서도 안 된다면 그건 제 실력이고, 제 능력 부족이니까요.

그래서 다른 팀으로 이적을 꾀했던 것인데, 그렇다고 인천에 나쁜 감정은 없어요. 실제로 대표팀 훈련에 들어오기 전에도 인천 2군과 같이 훈련하고 왔어요.

결과적으로는 대구로의 이적 이후 승승장구했습니다. 인천 시절과 비교했을 때 어떤 점이 바뀌었습니까?

우선 자신감이 많이 생겼어요. 인천에 있을 때는 제가 잘하는 플레이를 하기보다는 안정적인 플레이를 많이 했었죠. 그래서 제가 잘하는 플레이는 나오지 않고, 못하는 것을 하려다보니까 실수가 나왔고요. 그러나 대구로 가면서 자신감도 생기고, 팀에서도 제가 할 수 있게끔 자리를 마련해주셔서 마음껏 플레이를 펼칠 수 있었어요. 제 마음껏 플레이 하다보니까 좋은 결과를 얻은 것 같아요.

특히 에닝요, 장남석과의 3각 편대는 정말 위력 있었어요. 즐겁게 뛰는 모습이 역력했었던 것이 기억납니다.

그 때를 생각하면 골을 넣고 이런 것을 떠나서 경기장에 들어갔을 때부터 그냥 그 자체가 즐겁고 재미있었어요. 인천에서는 경기를 뛰지 못하고 밖에서만 봤는데, 직접 경기장에서 뛰니까 경기 출전만으로도 즐거웠죠. 그런 것이 표정으로도 나온 것 같아요.(웃음)

그 시절 2년 연속 K-리그 베스트11에 선정되었어요. 관련해서 축구팬도 질문을 했는데요. 인천 2군에서 시작해 K리그 정상 포워드가 된 결정적인 계기가 무엇이었는지 궁금하다고 물어봤습니다. (팀장 도병준님)

가장 중요한 것은 성실하게 훈련을 꾸준히 하고,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매달렸던 거예요.
인천에서 가장 인상적으로 배웠던 것이 장외룡 감독님이 항상 이야기하시는 "인내하고, 노력하고, 희생해라"였어요. 이 말씀이 잊혀지지 않아요.

언제든 기회는 올 것이라고 생각하고 운동했어요. 포기할 뻔한 시간들도 있었지만, 그것을 참고 꾸준히 하다보니까 조금씩 발전하는 부분이 나왔죠. 거기서 자신감이 생겼고, 축구를 즐기면서 할 수 있었어요.

K-리그 최고의 공격수 중 한 명으로 올라선 이후, 2009 시즌을 앞두고 유럽 진출을 모색했었습니다. 그리고 충분히 갈 수 있는 상황이었던 걸로 알고요. 막판에 틀어지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이었다고 생각하나요?

한 마디로 욕심을 조금 냈던 탓이죠. 갈 수 있었던 팀들도 있었고, 네덜란드의 한 팀은 계약서까지 갖고 왔던 상황인데, 더 좋은 팀이 있어서 이뤄지지 않았던 경우도 있었고요. 처음에 너무 욕심을 부리고 다가가지 않았나 싶어요. 그래서 쓴 잔을 마셨고, 아쉬움이 정말 컸죠.

고대하던 유럽 진출이 좌절되었을 때, 정신적인 타격도 컸을 것 같은데요.

사실 처음에 유럽 진출에 실패하고, 주빌로 이와타에 입단했을 때만 해도 괜찮았어요. 유럽에서 훈련도 같이 해보면서 나도 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들었거든요. 그리고 6월에 다시 기회가 올 거라고 생각했고요. 잃은 것도 있지만, 얻은 것도 있다고 생각하고 돌아와 의욕적으로 운동할 수 있었죠. 그런데 두 번째 실패하고 돌아와야 했을 때에는 정말 힘들더군요.

확실히 두 번째 진출 실패 이후 J리그에서의 페이스도 많이 떨어졌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게임을 뛰면서도 목표가 없었던 것 같아요. 처음 이와타에 왔을 때에는 6월 유럽행에 대한 목표가 있었는데, 두 번째 실패 이후에는 의욕도 떨어지고, 뭔가 나사가 하나 빠진 듯한 느낌이었죠. 집중력도 떨어졌고요. 작년 말부터 다시 가다듬었고, 또 대표팀 유럽 원정을 가서 덴마크, 세르비아와 대결한 이후 마음가짐을 새롭게 가다듬게 됐어요.

처음 이와타에 입단했을 무렵의 이야기를 잠깐 해보죠. J리그를 급하게 갔던 터라 준비도 안 된 상태였고, J리그 스타일이 K리그와는 다른 점이 있기 때문에 처음에는 낯선 부분도 있었을 것 같네요.

저도 제가 J리그에 갈 것이라고는 생각도 안했었고, 준비도 안 된 상태였죠. 그러나 당시 상황이 너무 힘들었고, 저는 경기에 뛰고 싶은 마음 뿐이었어요. 다행히 그 때는 이와타도 성적이 좋지 않아 어려웠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새롭게 합류한 저에 대해 동료들이 맞추려고 노력해줬어요. 그러다보니 서로 호흡이 잘 맞으면서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죠.

데뷔전부터 시작해서 엄청난 골 폭죽을 터트렸습니다. 초반 8경기에서 6골-5도움이었죠. 사실 이렇게까지 활약하리라고는 아무도 생각 못했는데, 본인은 어땠어요?

저도 그렇게까지는 예상하지 못했어요. 팀이 없는 상황에서 갔기 때문에 적응 시간도 필요했었고요. 그런데 하다보니까 되더라고요.(웃음) 다른 팀들이 저에 대해 대비를 하지 않았던 부분도 있고요.

넣은 골들이 대단했고, 특히 오미야를 상대로 수비진을 완전히 농락한 뒤 넣은 골은 최고였습니다. 솔직히 브라질 선수나 넣을 법한 골이었는데, 한국에서도 그런 모습은 보여주지 않았잖아요?(웃음)

원래 축구 선수들은 볼을 잡기 전, 찰나의 시간에 생각을 하잖아요. 그 때 생각했던 시나리오대로 완벽하게 됐어요. 제가 생각해도 정말 멋있는 골이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당시에는 그렇게 멋진 골이었는지는 몰랐어요. 그냥 골 넣었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죠. 이후에 동료들이 정말 대단하다는 말을 해주고, 경기가 끝난 후에 영상을 다시 보니까 정말 멋있는 골이었다는 느낌이 들더군요.(웃음)

이와타의 구세주로 칭송받던 와중에 다시 유럽 진출을 꾀해야 하는 상황이었죠. 구단이나 팬들에게 미안한 마음도 들었을 것 같네요.

예. 맞아요. 모두들 마지막까지 너무 잘해줬거든요. 제가 유럽으로 간다고 했을 때도 비난보다는 "가서 열심히 해라, 잠깐이었지만 같이 있어서 좋았다"는 격려가 많았죠. 작별회까지 해줄 정도로 정성을 다해줬어요. 그래서 일이 잘 풀리지 않아 돌아왔을 때는 민망스럽고 죄송스러웠습니다.

관련해서 축구팬의 질문이 있네요. 이와타 팬들의 환송 응원을 받고 나갔다가 다시 돌아왔을 때는 조금 민망했을 것 같은데요. 이와타 동료들과 팬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그리고 스스로는 어땠나요? (라꼴라올라님)

두 번째 유럽 진출에 실패하고 한국에 돌아왔을 때, 시간을 좀 더 갖고 기다릴까도 생각했어요. 그러나 시간이 너무 지체된 상황이고, 선수는 경기장에서 뛰어야 한다고 생각했죠. 주위에서나 허정무 감독님도 "지금 부끄럽더라도 가서 뛰어라. 너만 잘하면 상관없다. 빨리 경기를 뛰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조언해주셨고요. 그래서 마음을 가다듬고, 철판(?) 깔고 이와타로 갔어요.(웃음)

처음 갔을 때는 동료들이 많이 놀렸죠.(웃음) 전부 모인 자리에서 다시 인사하는데, 다른 말은 하지 않고 그냥 죄송하다고 한 마디 했어요. 선수들도 모두 웃으면서 받아줬고요. 팬들도 환영하고 기뻐해줬습니다. 저 혼자만 속으로 이런저런 생각하고 민망스러워 하고 그랬던 것 같아요.(웃음)

결국 J리그에서는 24경기 12골로 득점 11위로 마감했습니다. 경기당 득점으로 보면 2경기당 1골로 거의 최고 수준이었는데요. 어느 정도 만족하나요?

개인적으로는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후반기에 나태해진 면이 있고, 집중하지 못한 점도 있었죠. 더 좋은 기록과 결과를 얻을 수 있었는데 그렇지 못했기에 아쉬움이 많이 남아요. 페이스가 고르지 못한 점도 아쉽고요.

관련해서 여러 축구팬들이 질문을 했는데요. 유망주들의 J리그 진출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들이 많습니다. 실력이 정체되는 것 같다는 말들도 많고요. 이 부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습니다. (닉네임님, Kar님, 와우3세님, 이당윤님 등)

지금까지의 사례를 봐서도 성공한 경우가 많지 않더군요. 그리고 제가 직접 와서 느낀 것이 저나 선배들의 경우 우선 K-리그에서 인정을 받고 왔기 때문에 처음부터 대우를 해주고, 지원을 잘해줍니다. 따라서 정착하기가 더 편하죠.

그러나 고교나 대학에서 바로 온 선수들은 그런 대우가 없기 때문에 많이 힘들어요. K-리그에서 뛰는 것보다 더 힘들죠. 왜냐하면 말이 통하지 않는데 통역도 없고, 숙식 문제도 그렇고 여러 가지로 힘들거든요. 흔히 가깝고, J리그가 수비의 압박도 덜하기 때문에 한국 선수가 가면 성공한다는 이미지가 너무 강해서 쉽게 보고 접근하는 경향이 없지 않아 있어요.

제가 생각했을 때도 바로 일본으로 오는 것보다는 프로의 경험을 쌓는 것이 더 낫다고 봐요. 프로 세계에서 살아남는 것은 한국에서도 힘든데, 일본에서는 더 힘들죠. 일단 외국인 선수의 입장이고, '용병'으로서의 실력을 요구하거든요.

절친한 친구인 박주영 선수는 프랑스에서 완전히 자리 잡았고, 이청용이나 기성용도 축구 본고장에서 성공적으로 안착하고 있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 아쉬움도 많을 것 같은데요.

그런 점이 커요. 주영이만 봐도 경기를 하면 할수록 실력이 향상되는 것이 보이니까요. 그런 곳에서 뛰면서 실력이 발전하는 것을 보면 솔직히 부럽죠. 저도 빨리 나가고 싶은 마음이고요. 기회만 되면 빨리 나가고 싶어요. 유럽의 그 분위기, 아시아에서는 느끼지 못하는 분위기가 있기 때문에 그런 것들을 느끼고 싶습니다.

인터뷰=이상헌, 영상=정민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