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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준희 샤우트풋볼208] 에우제비우, 지코, 텔레 산타나의 축구 전설

정민건TV 2011. 4. 27. 02:48

 

[ⓜ 한준희 샤우트풋볼208] 에우제비우, 지코, 텔레 산타나의 축구 전설

- 축구 역사상 최고의 팀은 어디일까 (9) -

1. 과르디올라의 바르셀로나
2. 미켈스의 아약스
3. 사키(&카펠로)의 밀란
4. 세베스의 무적 헝가리
5. 1970 브라질
6. 디 스테파노의 레알
7. '토털풋볼' 네덜란드
8. 베켄바워의 바이에른
9. '카테나치오' 인터밀란
10. 페이슬리의 리버풀
11. 플라티니의 유벤투스
12. '조가 보니또' 산토스
13. '더 머신' 리베르
14. 디 스테파노의 미요나리오스
15. ‘갈락티코’ 초기의 레알
16. ‘골든 트리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17. 크라이프의 ‘드림팀’ 바르셀로나

 

(지난 회에 이어...)

 

18. 벨라 구트만의 벤피카 (1962-1965)

- 1960년대 전체를 통틀어 평가할 경우 유럽 최우수 클럽이라 해도 과언이 아님. 그만큼 긴 기간에 걸쳐 위용을 뽐냈던 클럽. 60년대야말로 벤피카 클럽 역사 최고의 황금기.
- 1961년, 62년 챔피언스리그 2연패. 1960년까지 5년 연속 유럽을 호령하던 레알 마드리드의 시대가 저물면서 정상의 자리를 넘겨받은 주인공이 바로 벤피카. 특히 1962년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벤피카는 디 스테파노, 푸스카스, 헨토, 델 솔, 산타마리아 등을 포함했던 레알에 5-3의 기념비적 승리를 거둔다. 3-3 상황에서 두 골을 넣으며 벤피카의 승리를 이끈 사나이가 바로 약관 20세의 에우제비우였다. 한 해 전인 61년에는 결승전에서 바르셀로나를 3-2로 꺾고 우승을 차지하는데, 당시의 바르셀로나에는 라슬로 쿠발라, 루이스 수아레스, 산도르 코치슈, 졸탄 치보르와 같은 대선수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 벤피카는 63년, 65년, 68년에도 챔피언스리그 결승전까지 올라 준우승을 차지한다. 각각의 경우에 우승을 거머쥔 클럽은 밀란, 인터밀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였다.
- 벤피카의 챔피언스리그 2연패를 이끌었던 감독은 축구 전술사의 중요한 인물들 중 하나인 벨라 구트만이었다. 헝가리 국적의 구트만은 구스타프 세베스, 마르톤 부코비와 같은 헝가리 지도자들과 더불어 4-2-4 포메이션을 발전시킨 공로자들 가운데 한 명.
- 전술사적으로 구트만은 잉글랜드 지도자 지미 호건의 영향 하에 성장한 ‘다뉴브 학파’(스코틀랜드식 짧은 패스와 기술을 중시. 오스트리아, 헝가리 등이 대표격. 오스트리아 대표 팀에 관해서는 추후 다시 설명 예정)의 계보에 놓여 있는 인물. 다혈질적 성향으로 구단과의 마찰이 잦아 어떠한 팀에서든 평균 2년을 넘기지 못하고 다른 팀으로 옮겨가곤 했다. 그 결과 그는 헝가리, 오스트리아, 네덜란드, 루마니아, 포르투갈, 브라질, 우루과이, 이탈리아, 스위스, 그리스 등 수많은 나라에서 지도자 생활을 함. 그가 지도했던 대표적 클럽들만 해도 밀란, 포르투, 벤피카, 상파울루, 페냐롤 등이 있다.
- 상파울루 시절(1957-58) 구트만은 4-2-4 포메이션을 브라질 축구에 유행시키는 데에 적잖이 영향을 미쳤다.
- 구트만의 벤피카는 어쩌면 브라질 공격 축구의 ‘유럽 클럽 버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듯.
- 역대 전설급 선수인 에우제비우 이외에도, 플레이메이커 마리오 콜루나는 당대 위대한 선수 대열에 꼽힌다.

 

19. 지코의 플라멩고 (1980-1983)
- 60년대 펠레의 산토스에 이어, 유럽 클럽을 넘어섰던 대표적 남미 세력. 70년대부터 80년대 초반까지의 시기에서 브라질 최고의 클럽이라 해도 무방하다.
- 플라멩고는 1981년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에 이어 인터컨티넨탈 컵에서 밥 페이슬리 감독, 케니 달글리시가 이끄는 당대 정상의 클럽 리버풀을 3-0으로 완파, 유럽을 놀라게 했다.
- 특히 이 리버풀 전에서 플라멩고의 에이스 지코는 유려한 개인기와 탁월한 시야, 절묘한 패스 능력을 유감없이 과시하며 리버풀을 농락하는 두고두고 인구에 회자될 만한 최고의 경기를 펼쳤다. 이 시기야말로 70년대부터 스타덤에 올랐던 ‘하얀 펠레’ 지코가 최절정기를 맞고 있던 시절이라 하겠다.
- 지코 뿐 아니라 이 시기의 플라멩고는 전설적인 당대 브라질 대표 팀(추후에 다시 설명될 예정)의 주요 선수들을 보유하고 있었는데, 특히 좌우 측면 수비수들인 주니오르와 레안드로가 그 주인공들. 주니오르와 레안드로의 위협적인 오버래핑 공격은 상대들에 공포감을 안겨주곤 했다.
- 1983년 지코가 세리에A 우디네제로 떠나면서 전설적인 플라멩고의 황금시대가 저물게 된다. 

 

20. 텔레 산타나의 상파울루 (1991-1993)
- 브라질 축구사의 거목 텔레 산타나 감독이 지휘봉을 잡았던 시절(1990-1996)의 상파울루. 이 기간 동안 산타나 감독은 상파울루에서 브라질컵 하나를 제외한 가능한 모든 트로피들을 손에 넣었다.
- 가장 괄목할만한 업적은 역시 1992, 93년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와 인터컨티넨탈 컵에서 모두 2연패를 이룬 것. 이는 앞서 설명한 바 있는 펠레의 산토스, 지코의 플라멩고에 이은 브라질 클럽 축구의 쾌거라 할 만하다.
- 상파울루의 인터컨티넨탈컵 2연패가 특히 역사적인 이유는 유럽의 전설적인 두 팀을 차례로 꺾었기 때문. 1992년 상파울루는 요한 크라이프의 ‘드림팀’ 바르셀로나(라우드럽, 스토이치코프, 쿠만이 포함된 팀)을 2-1로 물리쳤고, 1993년에는 파비오 카펠로의 밀란(바레시, 말디니, 파팽이 포함된 팀)을 3-2로 누른다. 당대의 바르셀로나와 밀란이 자체로 축구사의 위대한 팀들임을 고려하면, 단판 승부라 해도 이 두 팀 모두를 이겼다는 사실은 자체로 적잖은 의미를 지닌다.
- 상파울루의 커다란 성공은 거장 텔레 산타나가 지도자 경력의 막판을 화려하게 장식했다는 점에 있어서도 충분히 기념될 만하다. 특히 1982년 축구사에 길이 남을 탁월한 역량의 브라질 대표 팀(지코, 소크라테스, 팔카웅, 에데르, 세레조, 주니오르, 레안드로 등)을 만들어내고도 월드컵 4강 고지를 밟지 못했던 산타나 감독으로서는, 경력 말기에 거둔 클럽에서의 성공으로써 얼마간 보상을 받은 셈이 됐다.
- 당시의 상파울루에는 당대 브라질의 대표적 미드필더인 라이, 명수문장 제티, 경험 많은 세레조, 그리고 카푸와 레오나르두, 뮐러 등이 포진하고 있었고 주니뉴 파울리스타의 경력 또한 이 때에 시작되었다. 대표 팀에서의 산타나의 축구가 그러했듯 상파울루 또한 매우 공격적인 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