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um 스타人터뷰] 그라운드의 철인, 김기동 축구 히스토리 下
◆ 김기동의 감독님들 - “왜 이리 운동시간이 안오지? 빨리 훈련하고 싶다.”
* 500경기 출전, 포기할까?
2010년에 많은 경기를 못나가면서 생각이 많았다. 500경기 출전이라는 목표가 쉽지만은 않겠구나, 여기서 그만둘까, 이런 생각도 했다. 하지만 생각을 바꿨다. 여기서 그만두면 안되겠다, 왜냐, 나도 살아있다는 걸 보여줘야지, 여기서 끝내면 퇴물이다, 이렇게 제 자신을 채찍질하는 시간이 되었다. 다행히 황선홍 감독님 오시면서 "1년 더 해야 하는거 아니야"라고 좋게 말씀 해주셔서 자신감도 생겼고 목표로 했던 500경기를 달성하게 되었다.
늘 말하지만, 김기동이 운동장에서 뛰는 걸 보고, ‘이제 힘들어보인다’ 이런 말이 나오면 언제든 그만둘 거다. 그런데 그런 말은 한번도 못들어봤다. (웃음)
* 황선홍 감독 부임 이후
사실, 좋았다. 선수 시절에 같이 룸메이트도 해봤고, 훈련도 같이 했고. 싫어하는 분이 오면 좀 그렇지 않나. 잘 챙겨주던 선배님이 감독으로 온다니까 내심 좋았다. 내가 나이도 있고 그러다보니 배려를 많이 해주시는 것도 느꼈다.
하지만 어려운 점도 있다. 잘해주는 사람한테는 나도 뭔가 보답을 해줘야 하지 않나. 감독님이 나를 이렇게 배려해 주시는데, 나는 뭘 해줘야 하나, 그러다가 선수들 사이에서 중심을 잘 잡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행동이나 말을 조심하게 되고, 신경이 쓰였다.
* 포항 연습생 시절, 허정무 감독의 조련
당시는 어렸고 힘도 붙지 않은 상태였는데... 그때 허정무 감독님이 많이 무서웠다.
하루는 너무 힘들어서 쉬고 싶길래, 운동을 하지 않고 구석에 있었는데 감독님께 딱 걸렸더니 "방으로 와!"라고 하셨다. 나이도 어린 놈이 다른 사람보다 열심히 하지 않는다고 크게 혼났던 날이 기억난다.
* 지난 감독들과의 궁합
예민한 질문인데 (웃음) 말씀을 드리면 다른 감독님들이 서운하시고 그러지 않나. 한국 감독님들은 한국적인 정서가 있고, 외국 감독님들은 외국적인 정서가 있다. 어떻게 보면 저는 외국 감독님들과 잘 맞았던 것 같다. 니폼니시 감독과 파리아스 감독을 만났을 때 제1의 전성기, 제2의 전성기를 맞았으니까.
* 행복한 연습벌레
처음에 포항에 있을 땐 운동이 재미있어서 한 게 아니라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했다. 그런데 유공에 와서 니폼니시 감독과 훈련할 때는 참 재미있었다. 운동시간을 기다릴 정도로. 왜 이리 운동시간이 안오지? 빨리 훈련하고 싶다, 그럴 때가 있었다.
* 지도자 데뷔 시점
몇년전부터 ‘너 언제까지 선수 생활 할거야’ 묻는 분이 계신데, ‘하는데 까지 해봐야죠’라고 대답한다. 그러면 그 분이 ‘그래, 선수는 그만두면 못하지만, 지도자는 언제든지 할 수 있으니까 하는데까지 열심히 해봐라’ 하시더라. 지도자를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긴 하는데. 결정을 선뜻 못내리겠다.
* 인생 후반기의 꿈
이제는 선수로서의 생활을 접고 지도자로 갈 수 있는 터닝포인트가 되는 상황이긴 하다. 아, 사실, 새로운 것에 도전하려니까 두려움과 설레임이 공존한다. 이런 경험들을 잘 정리를 해야 좋은 지도자가 되지 않겠나. 언젠가 국가 대표 감독도 도전해보고. (웃음)
◆ 슬럼프 - “다들 괜찮다고, 잊어버리자고 했는데 제가 못 잊겠는걸 어떻게 해요.”
* 방황의 6개월
99년도에 결혼도 했고, 니폼니시 감독과 보내는 마지막 해여서 잘 지내던 중이었다.
동대문 경기장에서 울산 현대하고 컵대회 결승전을 했다. 내가 생각해도 그날 경기를 정말 잘했다. 내 플레이에 내가 깜짝 깜짝 놀랄 정도로! (웃음) 그날 너무 잘했는데, 마지막에 제가 패스를...
우리 편한테 준다고 패스를 했는데 인터셉트를 당해서 상대 선수 발에 걸렸다. 제가 패스한 공을 상대 선수가 바로 툭! 차서 골을 넣었다. 골든골로 연장전이 끝나 버렸다. 띵~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주장이었던 강철 코치가 ‘기동아 잊어버리자’ 하고, 형들도 ‘괜찮다, 다 잊어버리자’ 그러는데, 막상 나는 못 잊겠는 걸 어떻게 하나. 그 뒤의 경기들은 너무 힘들었다. 6개월 정도는 거의 최악의 경기를 했던 것 같다. 자신감도 안생기고, 뭘 해도 힘들고, 어색하고... 괜히 힘들었다. 경기장에 나가는 것 자체가.
* 슬럼프 극복하기
술도 마시러 가고, 여행도 가고, 쉬어도 보고,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보고 다해봤는데 극복이 안되더라. 이 때 느낀 건데 슬럼프나 어려운 일이 닥치면 다른데서 해결책을 찾을 게 아니더라. 죽으나 사나 훈련을 더 해야 한다. 훈련으로 이겨내고 훈련으로 채워야지, 더 미친 듯이 매달려야지 이길 수 있다. 더 열심히 해야 한다. 지금 생각해도 그 해가 너무너무 힘들었다. 하하...
◆ 아내는 내조의 여왕 - “어이구, 지금 여기서 이벤트를 해달라는 거야?”
* 첫눈에 반했던 미인
아내는 인천에서 살았다. 유공 숙소는 인하대 정문 옆에 있었고, 나는 그 근처에서 살았다. 운동 끝나고 저녁 식사를 하고, 친한 선배의 호프집에 들렀다가 집에 가서 자는 게 일이었다.
형님하고 이야기하러 매일같이 들르던 호프집에 어느날 아르바이트 생이 바뀌었더라. ‘저기 저 아가씨는 누구에요?’ 그랬더니 형이 소개를 해주었다. 잠깐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내가 숫기가 없어서 다가가질 못했다. 룸메이트였던 은철이 형이 보다 못해 나서서 엮어줬다. 그 때부터 만났다. 정말 첫눈에 반한거다.
* 최고의 요리, 김치찌개
아내가 여러 가지 요리를 많이 해준다. 그런데 제가 좋아하는 건 아니고, 애들이 좋아하는 걸 주로 한다. 스파게티, 스테이크, 이런 거. (웃음) 저는 고등어 갈치 조림이나 김치찌개 이런 걸 좋아하는데. 돼지 고기 숭숭 썰어넣은 김치찌개 하나면 제일 좋다.
* 아내는 내조의 여왕
나는 혼자 생활하면서 10시면 자고, 아침에 운동하러 가는 절제된 생활을 했다. 결혼하고 나서도 한 달 동안 합숙하러 가고, 전지훈련 가 있고 하다 보니 모든 게 제 위주로 돌아가고 있었다. 어느 날 아내가 울면서 얘기할 때까지 나는 몰랐다. 그날 이야기를 나누면서 서로 많이 이해하게 되었다. 지금도 뭐든지 나한테 맞춰주는 아내가 너무 고맙다. 다른 생각 안하고 축구 생각만 할 수 있게 해 주는게 참 고맙다. 아내는 내조의 여왕이다.
* 아내에게는 비밀!
이런 거 말해도 되나. (웃음)
500경기를 뛰었던 날, 경기 끝나고 서포터즈한테 인사를 했다. 그런데 집사람한테도 마이크가 돌아갔다. 아내가 하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우리는 서로 그런 말을 해본 적이 없는데! 아내가 ‘결혼하기 전에 이벤트 한번 없었다’ 그러는 거다. 나는 순간적으로 아찔해서, ‘어이쿠, 지금 여기서 이벤트를 해달라는거야?’ 이런 생각에 긴장을 하고 있었다. 아내 쪽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그랬더니 서포터들이 ‘지금해! 뽀뽀해!’ 소리를 지르고 난리가 났다. 아내가 ‘저기요, 잠깐만요, 진정들 하시고요.’ 그러면서 ‘저에겐 한 경기, 한 경기가 이벤트였어요.’라고 말을 이어갔다. 언젠가는 꼭 이벤트를 해줘야 되겠다고 생각한다. 생각만...(웃음)
◆ 김기동의 축구인생 - “내 인생을 표현하자면 아마도 ‘절실함’이 아닐까”
* 최고의 경기 : 후반 45분에 들어간 데뷔전
프로 데뷔전. 어떤 경기와도 바꿀 수 없는 경기다. 이 경기를 위해서 2년 반을 고생하고, 내 자신과의 싸움을 이겨냈다. 너무나 기다리고 고대하던 경기였다. 동대문 운동장에서 후반 45분에 교체로 들어갔던 기억이 난다. 경기장에 첫발을 내디딜 때의 설레임! 너무 흥분하고, 긴장해서 경기가 어떻게 끝났는지도 모르겠다.
* 최악의 경기 : 그런 경기는 없는 것 같다.
경기장에 가면 내 모든 것을 보여주기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한다. 경기가 끝나고 기술적인 면을 보자면 부족한 부분도 있겠지만, 그 외에는 나의 모든 것을 걸고 뛰기 때문에 ‘나는 최선을 다했다’라고 생각한다.
* 데뷔 6년만에 넣은 첫 골
어떤 걸 꼽아야 할까. (웃음) 골을 많이 못넣어 봐서. 데뷔전 골을 꼽아야겠다. 프로로 데뷔한지 6년 만에 첫골을 넣었다. 왜냐하면 나는 수비형 미드필더였고, 뒤쪽에서 패스를 연결하는 역할이어서 프리킥이나 페널티킥도 안찼었다. 전남전에서 마지막에 제가 감아찬 골이 들어가서 우리가 승리했다. 늦게 터진 데뷔전 골! 게다가 역전골! (웃음)
* 재능대 노력의 비율
100을 놓고 보면 나의 재능은 40정도밖에 안되는 것 같다. 재능이 40, 노력이 60. 나는 신체적인 조건이 뛰어난 게 없고, 앞에서 끌어주는 사람도, 선배도 없었고, 정말 잡초같은 인생을 묵묵히 살아온거 같다. 나 자신과 싸우면서.
* 내 인생을 표현하는 한 단어
‘열정’인 것 같기도 하고... 절실함? 아... 절실함이 맞는 거 같다. 무슨 일이든 자기한테 그런 절실함이 없으면 안되는거 같다.
* 할아버지 김기동
어느 저기, 먼 시골에 내려가서 꼬마들하고 공 차야지. 골키퍼 보면서 ‘이리로 차봐, 이렇게 차야지’ 하고 시골 마당 운동장에서 아이들과 놀고 있을 것 같다.
* 김기동에게 축구란?
영원한 반려자, 라고 해야 하나. 10살부터 30년을 축구만 했으니. 축구는 나의 동반자.
*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승부조작
안타까웠죠. 운동하는 사람들이라 그런가 좀 순진했던 거 같다. 처음에는 그게 그렇게 큰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시작한 거 같은데, 발을 들여놓고 나니 일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게 되고, 결국 발을 빼지도 못하고 그렇게 되었겠지.
하지만 노력 없이 얻을 수 있는 건 없다고 생각한다. 자기가 피땀 흘리지 않은 결과물들은 금방 허물어진다. 노력없이 그냥 얻는 건 다 물거품이 된다. 승부조작에 대해서는 좀... 그렇다. (들릴락 말락하게) 조금 선수들이 부끄럽고.
* 소리없이 강한 음지의 영웅
제가 지금까지 화려한 선수 생활을 해보진 않았던 것 같다. 스포트 라이트를 받거나, 화려하게 주목받지 않고, 묵묵하게 달려왔다. ‘소리 없이 강하다’ 이런 광고가 있지 않나. 내가 그랬던 것 같다. 소리없이 내면을 강하게 단련해 왔다. 이런 내 모습이 후배들에게 모범이 되었으면 좋겠다. 나를 생각하면 오랫동안 성실하게 선수 생활을 해야겠다고, 본받을 수 있는 선배로 기억되고 싶다.
* 후배들아, 꿈을 가져라
꿈과 목표가 분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걸 위해서 열정을 가지고 노력을 하고 최선을 다하고. 누구나 최선을 다하고 노력한다고 해서 다 이루는건 아니고, 그 가운데 좌절과 실패가 있겠지만, 그걸 이겨내면 좋은 분명 좋은 결과물이 있을 것이다.
(인터뷰 : 배나영 / 영상 : 정민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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