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스타人터뷰] 홍명보 "AG 이란전, 사실 경기 전부터 눈물 바다"
* 상편에 이어...
D : 올림픽 팀과 함께한 시간 중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간은?
"지난 광저우 아시안 게임이 가장 힘들었어요. 왜냐하면 저는 2012년을 준비를 해야 하는데, 선수들이 국제 경기 경험을 할 수 없는 나이이고, 이 선수들을 어떻게 발전시켜야 하는지 굉장히 많은 고민을 했어요.
아시안 게임은 23세 선수들이 나갈 수 있는 대회인데 제가 21세 선수들을 데리고 나갔었죠.. 주위에서 비난도 있었지만 감독으로서 저는 그렇게 결정했어요.
아시안게임은 선수들에게 군혜택의 메리트가 있는 대회이기 때문에 선수들이 경기에 임하는 각오가 남달라요. 그런데 항상 저희는 그게 문제였어요. 너무 강한 압박감. 그게 선수들에게 굉장히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최대한 없애려고 했는데 잘 안됐지요. 제가 간절함이나 처음 축구를 했던 마음으로 시합을 나가라고 주문했던 건 그만큼 선수들의 압박감이 심하기 때문이에요.
아시안게임에서 선수들이 아주 고생하고 노력한데 비해서 원하는 걸 못얻은 것이 조금 아쉽지만 저도 그렇고 팀도 그렇고 선수들도 그렇고 많은 걸 배운 건 사실이에요.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힘들었다기 보다 아쉬움이 남는 그런 시간이었어요."
D : 그 때 심경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음... 허탈? (허허허)"
D : ‘아시안 게임 3위’는 힘든 순간이 아니라 기쁜 순간으로 꼽으실 줄 알았어요.
"3-4위 전 같은 경우는 저희 선수들이 도저히 경기를 나갈 수 없는 상황이었어요. 그만큼 아주 정신적인 상태, 육체적인 상태가 바닥이었는데 그걸 이겨내고 그렇게 동메달을 딴 건 어떻게 보면 선수들의 힘이죠. 그 순간도 아주 기쁜 순간이라고 얘기할 수 있죠.
그런데도 아쉬움이 좀 있는 거죠."
D : 올해 구자철, 박주영, 지동원, 홍정호 선수 인터뷰때 모두들 아시안 게임 이란전에서 축구 외적인 것들과 축구를 하는 이유에 대해 많이 배웠다고 했는데 그렇게 만들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일까요?
"저도 처음 시도하는 거였지만 3.4위전을 앞두고 나는 꼭 미팅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선수들이 말을 하진 않지만 뭔가 분명히 마음속에 아주 큰 덩어리 같은 게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거든요. 그걸 제가 끄집어 내야겠다고 생각하고, 미팅을 하면서 제 얘기부터 했어요.
선수들과 동그랗게 의자를 놓고 앉아서 내가 지금 처해있는 상황, 나의 생각 이런 걸 얘기하고 한 선수씩 자기의 생각을 얘기했죠. 세 번째 선수가 얘기를 하는데, ‘지난 경기에 내가 패스미스를 해서 골을 먹었다, 결과적으로 이겼지만 굉장히 미안했다’ 그런 얘기를 시작하는 순간부터 다들 훌쩍훌쩍하기 시작했어요.
다들 엉엉 울었죠. 저도 눈물이 막 나서 참으려고 했는데 어쩔 수가 없었어요. 한 사람씩 모두 자기의 마음을 이야기했죠. 어떤 선수는 ‘경기에 뛰고 싶은데 다른 선수가 내 포지션에 있어서 미움을 가졌다’ 등 그런 마음을 정말로 다 털어놓았어요.
그리고 다음날 훈련을 하는데 선수들이 몸이 너무 가벼운 거에요. 자신의 마음의 상태를 누군가 들어주었다는 것이 굉장히 행복했던 것 같아요. 정신과에 가서 상담을 하면 들어주는 게 기본이잖아요. 무작정 감독으로서, 코치로서 결정하고 지시하는게 아니라 들어주는 마음으로 다가가서 심리적인 치료가 됐다고 생각해요. 그 결과 선수들이 육체적, 정신적으로 확 회복이 된 듯한 느낌을 받았어요. 그 순간이 저도 잊혀지지 않아요."
D : 형님 리더쉽이네요. 친형 같은 느낌이 없으면 이런 얘기를 터놓고 할 수 없었을거 같아요.
"그렇죠 못하죠. 저희는 2009년부터 청소년 때부터 같이 생활을 해왔기 때문에 감독, 선수, 코치의 관계가 어느 정도 형성이 되어 있어요. 이럴 때는 감독, 이럴 때는 형님, 이럴 때는 무슨 역할이라는 게 정립이 되어 있죠.
이번 사우디전이 끝나고 그날 경기 뛰었던 선수가 ‘감독님, 오늘 승리 축하드립니다’ 하고 저한테 문자를 보냈어요. 제가 P교육을 받기 위해서 파주에 있었는데 그 문자를 보고 다른 지도자들이 깜짝 놀라더라고요. 아니, 어떻게 선수가 감독한테 이런 문자를 보낼 수 있냐고.
하지만 저희 팀이나 저의 입장에서는 좋은 메시지에요. 축하할 일이 있으면 축하한다고 서로 얘기하고, 축하 문자는 축하 자체니까. 그런데 다른 지도자들은 이해를 잘 못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하지만 저희는 그런 마음이 다 형성이 되어 있죠."
D : 눈빛만 봐도 통하시는군요.
"네. 그렇죠. 그런 선수들하고 계속 할 수 없는 게 참 문제지만."
D : 각 경기마다 ‘간절함’이나 ‘처음 공을 찰 때의 동심’ 같은 테마를 잡으시던데, 그 외에 재미있는 테마가 있었나요?
"경기를 이겨야 하는 건 기본이지만, 오늘 경기는 어떻게든 이겨야 해, 이러진 않아요. 선수들을 편안한 상태로 만들어 주면서도, 머릿속에 콕 박힐 수 있는 그런 단어를 생각하죠.
오만전 같은 경우는 저희한테 3점, ‘쓰리포인트’가 굉장히 중요해서 그게 테마였고, 우즈벡 전에서는 상암에서 처음 뛰는 선수들이 있었기 때문에 자신감과 정신력이 필요했어요. 이렇게 좋은 경기장에서 뛸 수 있는 기회가 앞으로 얼만큼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즐겁게 하라고 ‘인조이’라는 테마를 만들었죠."
D : 그럼 가장 보람있었던 순간은 언제일까요?
" 예전에 청소년 대표를 맡을 때 두 가지의 목표가 있었어요. 하나는 이 선수들을 앞으로 잘 성장 시켜서 한국 축구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 국가 대표가 될 수 있는 그런 선수들로 키우고 싶다는 것이었고, 또 한 가지는 2012년에 있는 런던 올림픽에서 좋은 성적을 얻으면 좋겠다는 목표였어요. 지금 많은 선수들이 국가 대표로 활약하고 있고, 해외에 나가서 잘 하고 있으니 그게 가장 보람이지요.
물론, 이 선수들에게 축구를 가르친 건 제가 아니고 다른 지도자들이지만, 짧은 시간을 같이 하면서 축구 외적인 부분을 나름대로 성숙시켜야 하기도 했고, 인성적인 부분에 대해 조언해주기도 했으니까요. 경기를 나가고 못나가고를 떠나서 선수로서, 인간으로서 잘 자라는 걸 보면서 아주 보람을 느끼죠."
D : 어떤 분들은 박주영이나 지동원 같은 해외파 선수가 자리를 못잡고 있는게 아니냐는 말씀도 하시는데요.
"일단 새로운 환경에 가게 되면 그 환경에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하죠. 제가 보기엔 지금 그런 시간인거 같아요. 지동원 선수의 경우는 아직 어리고, 지금의 경험이 아주 좋은 힘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박주영 선수의 경우는 프랑스 리그에서 잘하다가 더 좋은 팀에 그에 맞는 능력을 인정받아서 간 거 잖아요. 경기를 못나가는 건, 저희들보다 본인이 가장 힘든 시간이 아닐까 해요. 선수가 경기에 나가지 않으면 경기력에 문제가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 선수는 능력이 있는 선수니까 빠른 시간 내에 경기에 나올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D : 이영표 선수가 높은 연봉 수준을 포기하고 가족이나 다른 가치를 위해 MLS에 진출한 걸 보면 감독님과 비슷한 부분이 있어요. 선배 입장에서는 어떻게 보시나요?
"이영표 선수가 밴쿠버 팀에 입단이 확정된 걸 기사를 통해 봤는데 저는 아주 훌륭한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곳에도 배울 점이 많아요. 은퇴 후에도 좋은 경험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그 선수가 영국에서도 훌륭한 리그에서 뛰고, 분데스리가에서도 뛰긴 했지만 여기는 또 다른 형태의 리그거든요. 미국은 축구가 약한 나라가 아닌가, 그런 생각을 많이 하시는데 그곳 피파 랭킹이 저희보다 높고, 축구 수준도 높기 때문에 이영표 선수의 선택은 훌륭한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D : 박지성 선수가 자선축구 경기에 갈 수 없어서 안타깝다고 전해 달라셨어요.
"저희 자선 경기에 지성이도 예전에 참가했었고, 참 고마웠죠. 이제는 부를 수도 없고, 와서도 안되죠. 하지만 그런 마음을 갖고 있다는 데 대해 기쁘게 생각합니다. 맨유 같은 경우는 최고의 클럽이고 거기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니 자부심도 크게 가지면 좋겠고, 앞으로 한국 축구를 위해서도 큰일을 해야 하는 선수니까 부상없이 시즌을 잘 마쳤으면 하는 생각입니다."
D : 혹시 특별히 좋아하는 스타일의 선수가 있으신가요?
"기본적으로 저는 2009년부터 같이 있었던 선수들은 다 좋아하고요. 좋아하는 스타일의 선수라고 하면 겸손한 선수? 겸손한 선수를 좋아하는 편이죠. 축구 스타일을 말씀하시는 건 아니죠? 저는 겸손한 선수 좋아해요."
D : 그럼 멋있는 축구 선수가 되기 위한 한 가지 자질을 꼽는다면 어떤 걸 꼽으시겠어요? 머리스타일? (웃음)
"(웃음) 저는 긴 머리 스타일 좋아해요. 저는 다른 건 모르지만 머리 스타일 같은 건 전혀 선수들한테 얘기하지 않는 편이죠. 하지만 자기한테 맞는 머리 스타일이 있거든요. 맞지 않는데 자꾸 그런 스타일을 고집하는 선수들이 있어요. 그런 선수들한테는 제가 말을 해주죠. 너한테 안어울린다고. (웃음)
역시 축구 축구지능이 필요하죠. 물론 기술도 있어야 하지만 요즘에는 축구의 공간이 좁아져서 컴팩트한데서 축구를 하니까, 선수들에게 빠른 시간에 빠르고 정확한 판단이 요구됩니다. 그러니 역시 축구 지능이 있으면 좋겠죠."
D : 한국 축구 발전을 위한 홍명보 감독님의 역할을 고민하실 거 같은데.
"아직 거기까지 생각하고 있지는 않아요. 저는 젊고 어리고 앞으로도 배워야 할 것이 많이 있고 해야할 일도 있어요. 저한테 주어지지 않은 일이기 때문에 무엇인지 아직 잘 몰라요.
하지만 지금 내 앞에 있는 일부터 차곡차곡 해 나가는게 더 중요하지 않을까, 나중에 무엇을 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무엇을 하려고 할 때 준비되어 있는지 아닌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준비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일을 하면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까.
앞으로 제가 무엇을 하더라도 준비되어 있는 사람이 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D : 그 ‘무엇’이 궁금하네요. 지도자의 길이나 행정직에 대해서도 언급하신 적이 있죠.
"지도자를 언제까지 할지는 잘 모르죠. 저는 '행정' 이라는 게 ‘올바른 결정’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얼마나 올바른 결정을 하느냐. 그럴 때 지금 감독의 역할을 하는 것이 아주 큰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또 한가지는 제가 지금 하고 있는, 재단을 통한 사회 공헌은 끝까지 하고 싶어요."
D : 행정에 뜻을 둔 분의 입장에서 조광래 감독님 경질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개인적으로는 분명 절차가 잘못 되었다는 생각이 들죠. 그런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저도 집에서 TV를 보면서 내용을 접했고, 그와 같은 처지의 입장에 있는 사람이라... 소식을 접할 당시에는 굉장히 충격이었습니다."
D : 새 감독 후보에 거론되는 것만으로도 불쾌하다는 보도가 있었는데요.
"후임으로 거론 된다는 것이 '불쾌하다'라는 뜻은.... 물론 대표팀 감독은 저한테는 영광의 자리이죠. '불쾌하다'는 말은 쓰지 않았는데...
저에게는 지금 담당하고 있는 역할이 있고, 지금도 힘들어서 다른 것까지 할 수 없는 입장인데 자꾸 제 이름이 거론되니 좀 '불편'한거죠. 그리고 제 코가 석자인데, 지금 제 앞에 놓여진 일도 아주 중요하고 큰 일인데... 제가 거론되는 것은 때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올림픽에만 전념을 하고 싶습니다.
만약에 제가 대표팀 감독이 되고 싶었다면 지난 남아공 월드컵 후에 저에게 주어진 기회를 잡았었겠죠. 하지만 2009년부터 지금까지 제 머릿속에는 한가지 '런던 올림픽' 밖에 생각을 안하고 있기 때문에 이번 새 감독 후보군에서 좀 빠져줬으면 하는 생각입니다."
D : 본인 의사와 달리 감독 겸임 이야기가 계속 나오고 있어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인지 없는 일인지를 먼저 판단할 것이지만, 그 판단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아닌거죠."
D : 이번 사태에 대한 해결 방법이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해결 방법에 대해서는 사실 저도 잘 모르겠어요. 그런 역할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잘 모르지만 협회에서 수습을 잘 해야하고, 또 잘 하지 않을까 합니다."
D : 감독이나 선수가 아닌 인간 홍명보로서 인생의 어떤 목표가 있다면?
"저는 음... 지금의 솔직한 심정인데요, 저는 굉장히 내성적이고 말도 별로 없고, 이렇게 나서는 걸 별로 안좋아하고, 어떻게 보면 사회생활에 굉장히 적응하지 못할 것 같은 그런 소년이었고, 운동을 하면서도 그랬지만, 대표선수가 되고 이름이 알려지고 하다보니 지금은 어떻게 할 수가 없지만...
제가 만약에 다시 태어나게 된다면 절대로 유명해 지지 않는 삶을 살고 싶어요. 굉장히 불편하고 저하고는 잘 맞지 않는 것 같은데 지금은 돌릴 수가 없으니까요. (웃음)"
D : 그러면 다시 태어나서 뭐가 되고 싶으세요? (웃음)
"그냥 평범하게 살고 싶어요. 저는 엄마가 신발을 사주시면 일부러 흙을 묻히고 들어갈 정도로 내성적이었어요. 새신발을 신고 가면 아이들이 쳐다 보잖아요. 그게 싫었어요. 그 정도로 아주 소극적이었는데 지금은 그렇게 할 수 없으니까 마음이 좀 불편하죠.
모르겠어요. 뭐를 할지는. 다시 태어나도 축구는 하겠죠."
D : 축구는 하는데 유명하지 않은 선수가 되고 싶으신거에요? (웃음)
"그러면... 음... 그렇지마는... 축구를 하지 말든가 그러면. (웃음)"
D : 홍명보 인생의 ‘바람’이 있다면?
"지금은 저를 위해서 앞에 나서는게 아니라 저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 저의 조직에 도움을 주는 사람들과 더불어 행복하게 살고 싶어요. 각자 다 본인의 임무가 있겠지만 저는 ‘팀’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해요. 어떤 훌륭한 선수도 팀을 해치지 못하는 거죠. 모두가 팀 안에서 팀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걸 좋아하기 때문에 저뿐만 아니라 아마 저희 선수들도 우리 팀 만의 색깔이나 문화에 대해 애정을 갖고 있는 것 같아요. 모두 다 같이 더불어서 행복하게 살고 싶은 마음이에요."
(인터뷰: 배나영 / 영상: 정민건)
'♡ 스포츠영상발전소 > 국가대표축구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 Daum 스타人터뷰] '지성 복귀? 전북 대패?' 최강희 감독 인터뷰! (0) | 2012.03.19 |
---|---|
[ⓜ Daum 스페셜] 지동원에게 보내는 홍명보의 새해 영상편지! (0) | 2012.01.01 |
[ⓜ Daum 스타人터뷰] 홍명보 "같은 처지의 사람이라 충격, 감독 거론 불편" (0) | 2011.12.10 |
[ⓜ Daum 스타人터뷰] 김기동 “잡초같은 인생, 소리없이 강했다” (0) | 2011.11.25 |
[ⓜ Daum 스타人터뷰] 그라운드의 철인, 김기동 축구 히스토리! 上 (0) | 2011.11.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