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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드컵 人터뷰16 -이을용上] 2002월드컵은 가족 같은 분위기

정민건TV 2010. 3. 31. 11:58

 

[월드컵 人터뷰16 -이을용上]

 


왼발로 2002 월드컵을 빛냈던 이을용 ⓒ손춘근
대한축구협회(KFA) 홈페이지에서는 DAUM과 공동 기획한 '월드컵 특집 릴레이 人터뷰'를 남아프리카 공화국(이하 남아공) 월드컵이 열리는 6월까지 격주로 게재합니다.

국내 최대 인터넷포털 운영사이자 KFA 공식후원사인 DAUM과 함께 기획하고 운영하는 '월드컵 특집 릴레이 人터뷰'는 2010 남아공월드컵을 준비하는 대표팀을 응원하기 위한 홍보 프로그램으로써 한국축구의 국민적 붐 조성을 꾀하고자 하는 취지를 담고 있습니다.

인터뷰 대상은 월드컵과 관련된 인물들이며, 현 대표팀 선수들을 비롯해 추억의 스타, KFA 행정인, 역대 월드컵대표팀 감독 등이 릴레이 인터뷰에 참여할 예정입니다. 특히 KFA 및 DAUM 홈페이지를 통해 축구팬들의 질문들도 수렴해 궁금한 점들을 해소시켜 드립니다. 인터뷰는 KFA 홈페이지와 DAUM 홈페이지에 기사와 동영상으로 게재됩니다.

16번째 인터뷰 대상자는 '2002 한일월드컵'의 4강 주역인 이을용 선수(35, 강원)입니다. 강원 태백에서 태어나 황지중앙초-강릉중-강릉상고를 졸업한 '강원의 아들' 이을용 선수는 1995년 한국철도에 입단했습니다. 이후 상무를 거쳐 1998년 부천SK(현 제주 유나이티드)로 옮긴 이을용 선수는 '2002 한일월드컵'을 마친 후, 당시 최고 이적료를 기록하며 터키 트라브존스포르로 이적했습니다. 2006년 다시 K리그 FC서울로 돌아온 그는 2009년 강원FC 창단과 동시에 고향에서 남은 열정을 불태우고 있습니다.

이을용 선수는 '연습생 신화'의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선수생활을 접고 막노동과 웨이터 생활을 경험했던 이을용 선수는 실업팀이던 한국철도에서 다시 축구를 시작해 월드컵에 두 차례나 출전했습니다. 거스 히딩크 감독(64, 네덜란드)은 무명에 가깝던 이을용 선수의 재능을 알아보고 '2002 한일월드컵'에서 그를 중용했으며, 그 결과 이을용 선수는 1골 2도움으로 한국의 공격을 이끌었습니다. 또한 '2006 독일월드컵'에서도 토고-프랑스전에 선발 출전해 1승 1무를 이끈 장본인이기도 합니다.

월드컵 특집 인터뷰 16번째 주자로 인터뷰하게 되어 반갑습니다. 고향팀 강원에서 활약하고 계신데요. 요즘 근황이 궁금합니다.

강원도에 프로팀이 창단하고 나서 고향 팀에 와서 운동하고 있고, 2010시즌 시작해서 지금 초반인데, 초반 페이스가 안 좋아서 많은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어요. 앞으로는 좋아질 것 같아요.

이번 시즌 소속팀 강원이 힘든 출발을 하고 있습니다. 요즘 팀 분위기는 어떤가요?

초반에 페이스가 너무 안 좋으니까.(웃음) 지금 팀이 전체적으로 어린 선수들 위주로 구성돼있는데, 많이 침체돼 있어요. 일요일 게임을 통해서 반전을 기해야죠. (인터뷰는 지난 26일 진행됐으며 강원은 이틀 뒤 열린 K-리그 5라운드에서 전남에 5-2 대승을 거뒀다.)

작년과 비교할 때 강원FC의 부족한 점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작년보다 올해 부족한 거는 아직까지 저희 신생 팀이 선수 측면에서 다른 팀보다 약하다고 보고 있거든요. 선수들이 조금 더 경험을 쌓고, 좋은 선수를 보강을 하면 정말로 강원도 팀이 앞으로 더 좋아질 거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팬들은 올 시즌 강원에서 볼을 간수하는 선수가 이을용 선수 밖에 안 보인다고 하던데요.

축구가 저 혼자만 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우리 팀이 젊은 애들이 많고 내셔널리그나 대학리그에서 했던 선수들이 왔기 때문에 아직 경험적인 것이 많이 부족해서 그래요. 그것만 잘 채워가면 제가 볼 때는 저 뿐만 아니라 나머지 선수들도 다 좋아질 거에요.

젊은 선수들과 미드필드에서 상대하기에 체력적인 어려움은 없으신가요?

아직까지는 체력적으로는 그렇게 크게 느낀 거는 없어요. 운동장에 들어가면 게임에 집중을 하니까 아직까지 체력적으로는 문제가 없습니다. (체력 관리 요령이 있나요?) 잘 먹고 잘 쉬는 게 체력적인 회복이 빨리 될 수 있는 요령이죠.

학창시절 강릉에서 축구를 하셨는데, 약 15년 만에 강릉에 다시 돌아와서 축구를 하시니 감회가 새로울 것 같습니다. 과거의 강릉 축구 열기와 비교를 하신다면요?

예전에 제가 학교 다닐 때 농상고(강릉농공고-강릉상고) 정기전이 있었고, 강원도가 원래 축구를 좋아하는 동네고. 지금 강원도 프로축구 창단하고 나서 아직도 팬들은 축구에 대한 열정과 열망이 아직도 많이 있는 것 같아요.

그 팬들을 저희가 더 좋게 해주기 위해서는 저희 팀이 어느 정도 좋은 성적을 내야 되고, 재미있는 축구를 보여줘야지 팬들이 다시 운동장으로 찾아오는데, 그럴 수 있도록 우리 선수들이 노력은 하고 있는데 지금 시즌 초반에 팀 성적이 조금 안 좋으니까 겉에서도 이런 저런 얘기가 많이 있는데...

우리 선수들이 어떻게 해야 된다는 걸 알고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조금만 지켜봐 주시면 제가 볼 때는 예전에 강원 축구를 좋아했던 분들이 '아~ 이제 강원 축구 재미있다'는 얘기가 나올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고향 클럽인 강원FC에서 활약하고 있다 ⓒ이상헌
강원이 하루 빨리 제 자리를 찾길 기대하겠습니다. 그럼 본격적으로 월드컵과 관련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국가대표팀 데뷔전이 1999년 3월 28일 브라질과의 친선경기였습니다. 후반 7분에 노정윤 선수와 교체돼 들어갔는데 기억나시나요?

그 때 저희가 브라질을 1-0으로 이긴 걸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때도 지금 대표팀 맡고 계시는 허정무 감독님이 대표팀을 맡아 계셨고, 그때 처음으로 선발됐어요.

뭐라고 말할 수 없이 좋았죠. 후반에 들어가서 게임 뛰었고. A매치 첫 경기였거든요. 첫 경기였고 브라질 대표팀과 하니까 세계적인 스타 선수들하고 첫 A매치를 했는데. 그때 끝나고 나서 딱 기분 좋았던 게 허정무 감독이 와서 잘 했다고, 첫 경기 치고 게임내용이고 모든 면에서 좋았다고 한 마디 해줄 때 그 때 제가 축구를 하면서 참 많은 자신감을 얻었죠.

이 경기에서 38분간의 대표팀 데뷔전을 치르신 후 약 2년 5개월간 대표팀에 거의 모습을 보이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히딩크 감독님께서 부임하시면서 대표팀 경기에 나서게 됐는데요.

그 게임 끝나고 나서 또 선발 됐는데, 대표팀에서 연습하다가 어깨를 다쳤을 거에요. 동대문운동장에서 연습하다가 어깨가 탈골이 돼서 수술을 하고 대표팀을 나왔을 거에요. 나왔다가 재활하고 다시 대표팀 되고 그랬을 거에요.

당시 부천 SK(현 제주 유나이티드) 소속이셨는데 대표팀에 발탁된 계기가 있다면요?

내가 듣기로는 대표팀에서 어렸고, 그 때는 열심히 하고 투지 있고 그런 모습을 많이 산 거 같아요. 그래서 대표팀을 뽑아줬던 걸로 생각하고 있어요.

사실 부천 SK에 입단하기 전까지는 힘든 과정을 겪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한국철도-상무를 거치신 기록이 있는데, 중간에 막노동도 하시고 나이트에서 웨이터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당시를 회상하신다면요?

(겸연쩍은 웃음)그 때하고 지금하고는 천지차이죠. 저한테는. 그래도 제가 했던 게 축구이기 때문에 '그래도 축구만큼 편한 직업이 없구나' 생각을 많이 했어요. 요새 사람들보다는 어린 나이 때 고생을 많이 했으니까, 그러면서 축구를 하면서 많이 깨우치게 된 거거든요. 정말 '내가 이걸로 해서 성공을 못하면 어디 나가서도 무슨 일을 해도 못한다'는 생각으로 다시 운동을 시작한 게 저한테는 좀 많은 자극제가 된 것 같아요.

그렇게 힘든 과정을 겪으시면서 다시 축구를 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된 동기가 있나요? 실력은 어떻게 향상시키셨나요?

나가서 회사 다니는 사람들을 보면 참 돈을 어렵게 번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일단 운동 그만두고 나서 좀 쉬다 보니까 다시 운동을 하고 싶다는 생각도 많이 들었고. 그렇기 때문에 운동을 다시 할 수만 있다고 한다면 정말 한 번 죽기살기로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한국철도에 들어갔거든요. 내가 고등학교 다녔을 때 한국철도 연고가 강릉이었거든요. 그때 한국철도하고 고등학교 다닐 때, 상고 운동장에서 운동 같이 하고 게임도 같이 뛰고 그랬거든요. 그러면서 한국철도에 계시던 이현창 선생님께서 저를 보시고 그래서 '을용이 쟤는 대학교 어디 가냐'고 해서 울산대 간다고 하니까 '잘 됐다' 하셨죠.

울산대에 가서 제가 운동에 대한 흥미가 없어졌어요. 그래서 울산대 입학을 하고 나서 그냥 짐을 싸고 나와버렸거든요. 그냥 나왔는데 그때 울산대 감독님이 최만희 감독님이셨는데, 감독님이 입학만 하고 나서 '네가 1년을 쉬든지, 2년을 쉬든지, 다시 운동이 하고 싶을 때 들어와라'고 그러셨어요.

그런데 제가 체육학과니까 실기시험을 봐야 되는데, 오전과목만 보고 내가 '아, 운동 못한다. 입학하면 뭐하겠냐' 생각해서 보따리를 싸서 나왔죠. 그래서 이리저리 방황을 했죠. 하다 보니까 한국철도가 강릉 전지훈련을 왔는데 이현창 선생님께서 다시 물어보셨나 봐요. '을용이 운동 잘하고 있냐' 해서 '그 놈 울산대 가서 그만두고 나왔다'고 그러니까 이현창 선생님이 그러면 한 번 찾아보라고, 찾아서 데려오면 자기가 다시 한번 가르쳐 보겠다고 하셨나 봐요.

그런 계기가 돼서 고등학교 선생님께서 저희 부모님께 전화를 하셔서 을용이 어디 있는지 알아보시고 다시 하고 싶으면 학교로 오라고 해서 저희 부모님께서 '너 운동 다시 시켜줄 테니까 다시 해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제가 '그럼 어디서 운동을 다시 시작하냐' 그랬더니 '한국철도에서 너를 다시 한 번 키워보고 싶다고, 그래서 너를 데리고 오라고 했다'고 그래서 운동을 하게 됐죠. 한국철도의 이현창 선생님이 저한테 정말로 은인 같은 선생님이죠.

몇몇 팬들은 이을용 선수를 '부천의 지단'이었다고 기억하시기도 합니다. 이을용 선수가 부천에서 맡았던 역할과 임무는 무엇이었나요?

그 때 부천에 있을 때도 미드필더였어요. 저 부천에 있을 때 저희 선수들 다 좋은 선수들이었어요. 그때 미드필드에서는 윤정환-김기동-윤정춘 선수에 저까지 해서 다이아몬드 시스템을 썼거든요. 니포(발레리 니폼니시, FC톰 톰스크) 감독님이 계실 때 이 네 명의 미드필더가 좋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정말 탄탄한 미드필드였죠. 제가 처진 미드필더를 봤고, 정환이 형이 공격형 미드필더를 봤고. 양쪽 사이드에 기동이 형하고 윤정춘 선수. 그 때 4명 모두 볼을 다 찰 줄 아는 선수들이었어요. 저는 초반에 드래프트해서 들어간 상태였는데 형들이 많이 도와줬고, 그러면서 좋은 소리를 많이 들었던 거 같아요. '저 놈 볼 예쁘게 찬다. 다부진 면도 있고' 그런 소리를 많이 들었어요.

그 당시에는 지금보다 나이가 어렸으니까 당시에는 골키퍼 포지션을 빼놓고 모든 자리를 소화를 다 해봤어요. (이)임생이 형이 수비수였지만 임생이 형이 다쳐서 나가면 제가 스토퍼도 보고. 젊었을 때는 다부진 면이 있어서 몸싸움을 해도 많이 밀리지도 않았고, 당시에는 웨이트도 많이 했어요.

그래서 수비 보면서 지금 인천에서 은퇴한 우성용 선수도 수비하면서 잡아본 기억도 있고. 키 차이가 많이 나는데 그때는 뭐 뭘 해도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에, 그 선수와 헤딩경합을 해도 그 선수 헤딩을 못 따게 하기도 했고. 그때는 아무것도 모르고 열심히 할 때였던 거 같아요. 겁 없이 달려왔던 것 같아요.

화려했던 부천 시절(아래줄 오른쪽에서 2번째가 이을용) ⓒ피치포토
히딩크 감독님 체제 하에서 이을용 선수는 신데렐라로 떠올랐습니다. 거의 무명이었는데 대표팀의 주축으로 떠올랐으니까요. 2001년 8월 15일 체코와의 친선경기부터 14경기에 연속으로 출전하셨는데요, 언제 2002월드컵에 출전할 수 있겠다고 확신하셨나요?

처음에 히딩크 감독님이 오셨을 때, 저한테 운이 안 좋았던 것이 처음 소집을 해서 울산에 내려갔어요. 홍콩 4개국 대회인가를 앞두고 대표팀 들어갔다가 울산대와 게임을 뛰다가 또 다쳤어요.

거의 대표팀에서 다쳐서 제가 수술을 많이 했거든요. 그래서 6~8개월 정도 대표팀에 못 들어가고 그런 게 좀 많았어요. 처음에 히딩크 감독이 한국 대표팀에 부임을 했을 때 1기 때도 선발이 돼서 울산에서 훈련을 하다가 연습게임을 하면서 다쳤고. 연골을 다쳐서 한 6개월 정도 대표팀을 떠나있었고. 내가 알기로는 홍콩 4개국 하고 또 뭐였더라? 아무튼 그 경기를 TV로 보면서 '나도 저기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그때 저는 병원에서 재활하고 있었고. 안 다쳤으면 '나도 지금 저기에 있어서 히딩크 감독한테 정말 좋은 모습 보여서 월드컵 한 번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갖고 있었죠.

다치고 나니까 '대표팀 이제 힘들겠구나'라고 생각했죠. 히딩크 감독님이 처음 오셨으니까 첫 이미지가 참 좋아야 되거든요. 첫 이미지에서 자기 실력 보여줘야 되는데, 뜻하지 않게 부상을 당했어요. 재활하는 동안 대표팀 최주영 닥터 선생님으로부터 갑자기 전화가 왔길래 "어쩐 일로 전화하셨냐"고 하니까 "히딩크 감독님이 너 체크하라고 하셨다. 언제쯤 낫고, 언제쯤 게임을 뛸 수 있는지를 체크를 해보라고 해서 전화를 했다"라고 하시더군요.

"지금 재활 중"이라고 했고, 최주영 선생님도 6개월 정도 걸린다는 걸 알고 있었죠. 재활을 하고 나서 7월부터인가 리그가 시작하면서 뛰기 시작했거든요. 그러면서 히딩크 감독님과 베어벡 코치님이 와서 게임을 지켜보셨고, 다시 선발되어 체코에 가서 게임 뛰고 그랬을 거에요.

거기서 못하면 어차피 월드컵 못 가는 거니까 '마음 편하게 그냥 열심히 하는 모습 보여주자'라고 했던 게 저 나름대로 열심히 했고, 게임을 뛰어도 외국 선수한테 밀리고 이런 느낌은 전혀 받지 않았으니까. 히딩크 감독님이 그런걸 잘 본 것 같아요. 대표팀에 왼발잡이가 별로 없었는데 제가 왼발 쓰는 것을 보고 "너는 충분한 자질이 있다" 하시면서 좋은 인연을 갖게 된 것 같아요.

소문에 의하면 부상 당했을 때 히딩크 감독님이 낫기만 하면 월드컵에 데려가겠다고 했다던데요?

아뇨. 그런 얘기는 없었고요. 최주영 선생님한테 계속 체크만 하라고 하셨어요. 정해성 선생님한테도 전화가 와서 "어떤 상태냐"라고 물어보시고, 저는 '지금 계속 재활하고 있고 조금 있으면 리그에 뛰어도 될 것 같다'고 계속 중간중간 체크를 했어요.

2002 월드컵 폴란드전에서 승리한 후 기뻐하는 모습 ⓒKFA 홍석균
2002 월드컵 폴란드전에서의 첫 골은 아직도 생생합니다. 이을용 선수가 왼쪽에서 패스를 받아 황선홍 감독님에게 패스를 했었죠. 당시 황선홍 감독님의 움직임을 계속해서 지켜보고 있었나요?

제가 패스를 넣어주고서도 봤으니까. 일단은 당시에 선홍이 형이 있던걸 봤어요. 제 앞에 수비수가 있었기 때문에 그 선수만 감아서 빠지면 좋은 찬스가 오는 거죠. 제가 잘한 거 보다는 일단 선홍이 형이 일단 발을 잘 갖다댔어요. 그 장면은 가끔 티비에 나오는데, 패스도 좋았지만 일단 선홍이 형이 임팩트를 잘 했기 때문이죠.

제가 봤을 때는 단지 월드컵 첫 단추를 잘 끼웠기 때문에 대표팀에 뜻하지 않게 수훈을 세운 것 같아요. 그 때는 홈이고 하니까 대표팀에 있으면서 훈련을 많이 했어요. 훈련한 대가가 운동장에서 나온 거 같아요.

그 때는 거의 한 가족처럼 너무 많은 시간을 보냈기 때문에, 선수들을 보면 각자가 다 알아요. 이 선수는 이런 스타일이고, 이 선수는 패스를 어떻게 주고. 개개인이 다 파악을 했기 때문에, 그리고 또 히딩크 감독님이 미팅을 하면서 그런 얘기를 많이 했어요. "우리 팀에 있는 선수가 어떤 장점을 갖고 있고, 어떤 약점을 갖고 있는지 그런 것을 파악을 잘해야 한다. 그래야 운동장에 나가서도 패스 하나를 주더라도 너희들이 그 선수에 맞는 패스를 줄 수 있다". 그러면서 선수들끼리 얘는 이런 스타일, 얘는 이런 스타일, 그런 것을 다 알았죠. 그런 것도 많은 도움도 됐고.

그리고 워낙 선홍이 형이 골게터다 보니까 페널티 박스에서 빠져 다니는 게 워낙 좋아요. 그래서 그 움직임을 보면 그 상황에서 보면 딱 보여요. 패스 주는 사람의 정확성 그런 게 중요하죠.

황선홍 감독님은 폴란드 전에 출전하기 전에 애국가를 들으면서 뭔가 뜨거운 게 목구멍에서 나오는 것 같다고 말씀하셨었는데, 이을용 선수도 그런 게 있었나요?

지금도 마찬가지일거에요. A매치 게임을 하면 월드컵 때도 그렇고, 월드컵 하기 전에 A매치도 항상 가슴에 손을 얹고 애국가를 들으면 항상 자기가 모르는 희열을 느껴요. 생각을 해보면 애국가라는게 정말로 우리 선수들한테는 많은 힘을 주는 거 같아요. 자기도 모르게 우리나라에 대한 자긍심이 생겨요. 지금 선수들도 그럴 거에요.

2002 월드컵 스페인과의 8강전에서 ⓒKFA 홍석균


2차전이었던 미국전은 잘 풀리지 않는 경기였습니다. 아마 이을용 선수도 미국전은 잊지 못하실 것 같은데요. 이 경기에서 페널티킥을 실축하셨죠. 당시 상황을 설명해 주신다면요?
원래 연습 때도 제 코스가 그쪽이었어요. 연습 때 코스는 코스인데, 원래 땅볼로 찼어야 되는데 너무 정확하게 하려다 보니까 골키퍼 막기 좋은 허리 쪽으로 떠서 갔는데. 원래 땅으로 패스하는 식으로 땅으로 깔아서 찼어야 했죠. 저도 모르게 너무 정확하게 차려다 보니까 이게 좀 뜬 거 같아요. 골키퍼도 또 읽었고.

그걸 못 넣고 나서 원래 선수들이 월드컵 같은 데서 페널티킥 못 넣으면 자기 플레이가 안되거든요. 더 위축이 돼서. 그런데 저는 처음에 못 넣고 나서는 거짓말 안하고 2~3분 동안은 위축이 많이 됐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홍)명보 형이나 선홍이 형이 괜찮다고 하고...

또 전반전 끝나고 들어와서 히딩크 감독님이 얘기하는 게 "너는 할 수 있다. 후반에 지금 페이스 대로만 하면 분명히 뭔가 하나 할거다" 그런 얘기를 해주면서 자신감을 넣어주셨죠. 또 운동장에 나갈 때도 핌 베어벡 코치님이 "너는 연습 때 하던 식으로만 그렇게 네 플레이만 하면 충분히 역할을 할거다" 그렇게 말을 많이 해줬어요. 그게 자신감이 참 많이 붙었던 것 같아요. 당시 코치셨던 박항서 감독님도 머리를 툭 때리면서 "야 괜찮아, 있는 그대로 네 실력대로만 해. 잊어버리라고"라고 격려해주셨죠.

저도 페널티킥 못 넣은 이후에 시간이 지나면서 페이스를 찾았고, 아무 생각 없이 전반전 끝나고 나와서 '괜찮다. 이 페이스면 우리가 충분히 미국을 잡을 수 있을 거다'라고 생각했고요. 제 스스로도 들어가서 어시스트를 하든지, 골을 넣든지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들어가니까 잘 풀렸어요. 플레이 자체에서는 할 것을 다 했다고 생각해요.

경기가 끝나고 나서 했던 히딩크 감독님이 "후반전에 들어가서 내 실력대로 했다. 게임 내용은 정말 좋았다. 뛰었던 선수 중에 네가 최고로 잘해줬다"라고 칭찬해주시더군요.

이 경기에서 안정환 선수의 동점골을 어시스트 하셨죠. 그리고 경기 막판에 왼쪽을 완벽하게 돌파한 후 최용수 선수에게 결정적인 패스를 하셨는데 최용수 선수가 골대를 넘겨 버렸죠. 최용수 코치님의 인터뷰를 보니까 이을용 선수께서 패스 타이밍을 늦추셔서 타이밍 잡기가 힘드셨다고 하던데요.

그 때 상황이 패스 타이밍이 늦은 게 아니라, 원래 골게터는 좋은 패스가 와도 골을 못 넣을 수 있는 게 축구거든요. 그런데 제가 그 당시 사이드 라인을 치고 가서 한 명, 두 명을 제쳤는데, 패스를 한 번에 바로 주려고 할 때 상대 수비수가 '통밥'을 재고 있었어요. 그래서 패스를 주려다가 미국 선수 주장인가? 머리 긴 애가 앞쪽으로 쏠리는 걸 봤거든요. 그래서 패스 타이밍을 한 번 늦추고 나서 줬던 겁니다. 패스를 바로 줬으면 바로 커트 당했을 거에요.

페인팅을 한 번 줬는데 얘가 움직이더라고요. 그래서 그 선수가 움직이는 사이로 제가 넣어줬죠. 그런데 용수 형은 설마 설마 하다가 볼이 오니까 툭 댄 것이 뜬 거예요. 나중에 "야, 주려면 바로 줬어야지" 그러더라고요. 그런데 바로 줄 수가 없는 걸 뭐. (웃음)

제가 볼 때는 그 때 준비를 못한 거죠. 끝나고 나서도 명보 형이 용수 형한테 하는 말이 "야 너는 그것도 못 넣냐?" 그랬어요. 그것 때문에 한참 형들이 약 올리고 그랬어요. 용수 형이 그걸 넣었으면 분위기 타서 컨디션이 쭉 올라오고 그랬을 거에요. 아직도 그 이야기를 하면 재미있어요.

누가 잘했니, 못했니 그런 건 없어요. 운동장에서는 아무리 패스를 잘 줘서 단독을 만들어줘도 그 선수가 골 넣을지는 50대 50이거든요. 골키퍼가 있기 때문에.

2002 월드컵 터키와의 3-4위전에서 골을 넣고 환호하는 이을용 ⓒKFA 홍석균
미국전 이후 포르투갈전과 이탈리아전에는 아예 나오지 않으셨는데요. 전술적인 이유였나요? 아니면 미국전 페널티킥 실축에 따른 정신적 충격 때문이었나요?

그런 건 없었고요. (이)영표가 부상에서 회복이 됐고, 그 때 같은 경우는 선수들이 워낙 열심히 뛰다 보니까 체력적으로 떨어질 단계였거든요. 그러면서 히딩크 감독님이 뜻하지도 않게 용병술을 참 많이 쓰셨어요.

체력적인 안배를 많이 해주더라고요. "오늘은 쟤가 선발로 나갔지만, 다음엔 네가 나갈 수 있다. 아니면 교체로 들어갈 수 있다" 그런 걸 참 잘한 거 같아요. (안)정환이 같은 경우도 선발도 안 뛰게 하고 후반에 조커로 들어가게 하고, (이)천수도 그렇고, (차)두리도 그렇고요. 보면 그런 건 참 잘한 거 같아요.

강팀과의 경기에 나가고 싶지 않았었나요?

글쎄요. 독일하고 4강전 할 때는 정말 한 번 해보고 싶었어요. 왜냐면 전반에 게임을 보는데 흐름을 보면서 '저렇게 저렇게 하면 내가 충분히 찬스를 만들어 줄 수 있는데'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독일전을 한 번 뛰어봤으면 좋겠다는 아쉬움이 남았는데, 선수 운영 면에서는 감독이 알아서 하는 것이기 때문에 거기에 대해서는 뭐. 그리고 2002 월드컵 때는 벤치에 있는 선수들이고 뭐고 전부 다 마음 졸이면서 게임을 봤기 때문에..그 때는 정말 명보 형이나 선홍이 형 등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너무 가족 같은 분위기였기 때문에 누가 게임을 뛰고 안 뛰고 그런 거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어요.

스페인전에서는 후반 32분에 교체로 들어가셨는데요, 경기는 승부차기까지 갔습니다. 승부차기 몇 번째 키커이셨나요? 승부차기로 미국전 실축의 멍에를 벗어야겠다는 생각은 안 하셨나요?

히딩크 감독님이 그 때도 저보고 "첫 번째로 찰래? 두 번째로 찰래?"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 제가 안 찬다고 하니까 감독님이 다시 짜서 명보 형을 준 걸로 알고 있거든요. 찼으면 모르죠. 제 코스로 안 차고 그냥 냅다 찼을 거에요. 히딩크 감독님이 "좋다. 너 차지 마라" 그러시면서 첫 번째 키커를 선홍이 형을 세웠어요.

무조건 이겨야 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히딩크 감독님이 차라고 계속 강요를 했으면 어쩌면 찼을 수도 있었을 거에요 그런데 그 상황이 그 때는 누가 못 넣고 지면 그런 것도 있지만 내 스스로도 그랬어요. '차라고 그러면 그냥 못 찬다고 얘기를 하자' 그래서 안 찼을 거에요. 명보 형도 "너 찰래? 안 찰래?" 물어봐서 "형님 저 못 차겠습니다"라고 말했으니까요. 그나마 그래도 이겼으니까.

2002 월드컵하면 이을용 선수의 환상적인 왼발 프리킥이 떠오릅니다. 터키와의 3-4위전이었는데, 본인이 차고도 너무 완벽해서 놀라지는 않으셨나요?

프리킥 그쪽 코스는 연습을 많이 했거든요. 반대쪽은 천수, (유)상철이 형이 연습했어요. 끝나고 개인적으로 남아서 연습시켰는데, 그쪽 코스는 나 혼자 왼발잡이니까 차는 연습을 많이 시켰어요.

그런데 골을 넣고 나서 저도 좀 놀랬죠. 잘 맞았다 싶었죠. 더군다나 그게 골대를 약간 맞고 들어갔기 때문에 코스가 더 좋게 보였어요. 그것도 계속 연습을 해왔던 게 도움이 많이 된 것 같아요. 지금도 프리킥 잘 차는 선수들 보면 팀 훈련이 끝난 뒤에도 남아서 개인적으로 프리킥 연습을 많이 해요. 연습 때도 많이 들어갔죠. 히딩크 감독님이 잘 찬다고 칭찬하셨고요.

下편에 계속...
인터뷰=손춘근, 영상=정민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