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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드컵 人터뷰16 -이을용下] 06 월드컵은 개인적으로도 큰 손해...

정민건TV 2010. 4. 6. 00:30

 

[월드컵 人터뷰16 -이을용下] 06 월드컵은 개인적으로도 큰 손해...

 

터키 트라브존스포르에서 활약할 당시의 이을용 ⓒ트라브존스포르


- 2002 월드컵이 끝난 후, 당시 대표 선수 최초로 해외 진출에 성공하셨습니다. 최고 이적료(160만 달러, 한화 약 20억 6천만 원)를 기록하면서 터키의 트라브존스포르로 이적했습니다. 왜 터키로 이적한 건가요? 혹시 월드컵 3-4위전을 터키와 치른 것이 영향을 끼쳤나요?

그럴 수도 있죠. 터키를 나가야 되나, 아니면 다른 리그를 나가야 되나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때는 다른 리그에서도 오퍼는 많이 있었어요. 생각을 좀 많이 했어요. 지인들하고 얘기도 해보니까 "터키 리그도 앞으로 좋아진다" 그러더라고요.

월드컵 끝나고 나서 누가 테이프를 먼저 끊어야지 뒤에 있는 선수도 빨리 유럽으로 진출하는 계기가 될 것 같았어요. 그래서 제가 터키를 나가야겠다고 생각했죠. 제가 나가고 나서 선수들이 한 명씩 나가기 시작하더라고요. 월드컵에서 우리가 좋은 성적을 못 거뒀으면 유럽 나기기 힘들었겠죠. 근데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내니까 좋은 이미지를 갖게 된 거 같아요. 유럽 사람들이 아시아 축구를 새롭게 보는 계기도 됐고요.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한국 축구가 잘 되려면 실력이 있는 선수들은 유럽에 나가서 해봐야 한다. 몸을 부딪혀보고 게임도 뛰어보고 하다 보면 선수들이 자신감이 쌓이고 자연스럽게 한국축구는 강해질 거다'라는 생각도 많이 했죠.

유럽 나가는 첫 테이프를 잘 끊으면 한국 선수도 많이 나가면 3~4명 정도는 더 나갈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하고 나서 선수들 몇 명이 줄줄이 나가버리니까 유럽에서 이제 한국 선수를 다시 보게 되고, 그러면 밑에 있는 선수들이 자연스럽게 나가게 되는 발판을 마련해줄 수 있거든요. 지금 나가있는 선수들 보면 다 잘하고 있으니까 참 잘 된 것 같아요.

- 트라브존스포르 이적 첫 해, 중위권이던 소속팀을 터키컵 우승까지 이끌었습니다. 당시 터키 축구는 어느 정도 수준이었나요?

그 때 한참 터키 축구가 유럽에서 인정해주기 시작한 시기였어요. 터키에서는 4대 명문팀이라고 하면 갈라타사라이, 페네르바체, 베식타스, 그리고 트라브존스포르거든요. 이 네 팀은 항상 '빅포(Big 4)'라고 얘기를 해줘요. 내가 갔을 때에는 트라브존스포르가 좋은 성적을 못 냈어요. 그런데 외국 선수들을 보강하면서 2003~2003 시즌은 좋은 성적을 내고...

우승은 갈라타사라이와 페네르바체가 주로 하지만 그 팀을 이길 수 있는 저력이 있는 팀이 트라브존스포르거든요. UEFA컵(현 유로파리그)나 챔피언스리그 같은 데는 꼬박꼬박 나가는 것 같아요. 3위 안에 들고 거의 그렇더라고요.

터키 트라브존스포르에서 활약하던 모습 ⓒ트라브존스포르
- 트라브존스포르에서 1년을 보낸 후, 임금 체불 등의 문제로 안양 LG(현 FC서울)로 돌아오셨습니다. 그리고 2년 후에 다시 트라브존스포르로 가셨는데요. UEFA 챔피언스리그 출전과 독일 월드컵을 염두에 두고 결정을 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당시 트라브존스포르로 재이적을 결심한 계기가 있다면요?

트라브존스포르에서 1년 있어보니까 유럽 클럽들은 거의 채무 관계가 있더라고요. 그런데 거의 세 달을 넘기지는 않아요. 세 달 될 때 두 달치 월급 주고 다 그러거든요. 그런데 제가 그런 시스템에 적응이 안 되니까...

그리고 첫 시즌이 끝나고 트라브존스포르에서 다시 재계약을 하자는 얘기가 나왔어요. 그런데 "나는 못하겠다"하고 다시 안양 LG로 와서 6개월 정도 훈련을 하는데 트라브존스포르에서 다시 오퍼가 왔어요. 다시 올 생각 없냐고 물어봐서 다시 한 번 생각해봤는데, 그때 말하는 게 월급이고 수당 같은 건 제때 준다고 했어요.

2006 월드컵 생각도 하기는 했는데, 트라브존스포르에 나가서 첫 이미지를 좋게 하고 들어온 것 같아요. 트라브존스포르 시민들에게 이미지를 좋게 해놓으니까 다시 오퍼가 들어온 거죠.

(경기력 면에서도) 제가 사이드 포지션에 있으면서 도움을 많이 줬어요. 그 때 트라브존스포르 수비 라인이 나이가 어렸어요. 애들하고 잘 맞았고, 또 게임을 하다 보면 전술적으로 내가 애들 리드도 해줬고요. 그렇기 때문에 트라브존스포르에서 뛰었던 게 저한테도 선수생활을 하면서 참 많은 도움이 된 거 같아요.

- 고대하셨던 챔피언스리그에서는 뛰셨나요? 트라브존스포르는 예선 2라운드에서 탈락한 걸로 알고 있는데요.

예선을 하면서 우리가 못 올라갔죠. 떨어지고 나서 UEFA컵에 바로 나갔죠. 월드컵과 챔피언스리그는 진짜 대단한 것 같아요. 저는 챔피언스리그에서 뛰는 선수들 보면 대단한 선수라고 생각해요. (박)지성이나 (이)영표도 챔피언스리그에서 뛰었다는 자체가 영광일 거에요.

유럽에서는 챔피언스리그가 월드컵보다 나았으면 나았지 떨어지지는 않아요. 챔피언스리그는 뭐라고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좋죠. 참가하는 선수들도 대단하고, 구단 자체도 좋아지기 때문에.

인터뷰 중인 이을용 ⓒ정민건
- 트라브존스포 재이적 즈음에 대표팀에서는 조 본프레레 감독과 마찰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부상과 관련된 문제였다고 알려졌는데요. 어떤 사건이 있었나요?

마찰이라기보다는...하긴 저 아니어도 본프레레 감독과는 많은 마찰이 있었죠. 감독하고 얘기하다가도 안좋게 말다툼하고 그랬던 게 저한테는 손해가 많이 있었다고 봐요. 한국 선수도 외국 감독에게 자기가 주장하고 싶은 말은 또박또박 말하는 시대가 됐기 때문에요. 본프레레 감독하고는 중국에서 한 두 번 정도 말한 거 빼고는 없었어요. 무엇 때문이라고 확실히 답변은 못 드리겠네요.

(당시 감독의 눈 밖에 났기 때문에 대표팀에 선발되지 못한다는 말이 있었는데요?) 눈 밖에 난 건 모르겠고, 느려서 대표팀에 안 뽑았다는 기사를 듣고 느낀 게 '그래? 그런데 대표팀에 나보다 느린 선수도 많은데?' 했죠. 저는 시간을 두고 기다렸죠. 그런데 기자들이 계속 물어봤나 보더라고요.

- 당시 대표팀에 선발되지 못하는 기간이 길어지자 한 인터뷰에서 "2002 월드컵 미국전에서 페널티킥을 실축한 뒤 주위의 격려로 눈물을 닦을 수 있었던 그 때처럼 단 한번이라도 다시금 기회가 주어지길 소망한다"고 말하셨습니다. 대표팀 발탁이 간절하셨나요?

그렇죠. 대표팀에 다시 들어가고 싶은 생각이 있었죠. 다시 들어가려면 '내가 터키리그에서 꾸준하게 게임을 뛰어야 된다'는 생각이 있었고, '꾸준하게 뛰다 보면 언젠가 한 번은 기회를 주겠지' 생각을 했어요.

그러다가 레바논에 가서 경기할 때였던 거 같은데 허정무 감독님이 수석 코치였어요. 그 때 언론에서 '터키 리그에서 잘하고 있는데 왜 안 뽑는지 모르겠다'고 보도를 많이 하니까 허정무 감독님이 본프레레 감독님한테 '한 번이라도 기회를 주자. 한 번 테스트를 해보자' 그랬나 봐요.

그래서 레바논으로 넘어갔는데, 게임 3일전만해도 계속 베스트로 훈련하고 전술적으로도 다 했어요. 허정무 감독님도 "내일 선발로 나가니까 있는 대로 게임해라"고 말씀하셨는데 아침에 일어나니까 멤버에서 싹 빠진 거에요. 교체선수에도 못 들고. 내가 본프레레 감독님한테 뭘 그렇게 잘못했는지. 그럼 연습 때 베스트 멤버에도 넣지를 말든가요.

신문 기사에서도 '기회를 한 번 주겠다' 그런 기사를 봤었고. 너무 어이가 없었죠. 원래 제가 대표팀에 뽑혀도 게임을 못 뛸 바에는 대표팀에 안가겠다고 했었거든요. 그런데 에이전트가 한국 코칭스태프랑 상의를 하고 나서 '본프레레 감독이 한 번 기회를 주겠다'고 해서 온건데, 경기 전 날에는 게임 뛴다고 하더니 아침에 일어나니까 코치 선생님께서 "을용아 미안하다. 너 멤버 빠졌다" 했으니까요. 그 때 저는 "예 알겠습니다. 그런데 저는 뭐 하러 불렀어요? 터키에서 팀 게임이라도 뛰게 내버려두지"라고 말한 게 기억나요.

그때 빠진 애가 누구였냐면 (김)동진이, 저, 그리고 한 명 더 있었어요. 우리는 벤치에도 못앉고 관중석에 가서 봤어요. 한국 기자들도 저희를 보더니 "게임 안 해? 네가 선발로 나간다고 했는데?"라고 묻더라고요.

허정무 감독님도 황당하신 거에요. 어차피 선발 라인업은 감독이 짜는 거잖아요. 저는 "괜찮습니다" 말하고서 게임 끝나고 새벽 비행기 타고 터키로 와서 다음 날 트라브존스포르 경기에 바로 뛰었어요. 허정무 감독님이 한국에 도착한 뒤에 전화를 하셔서 미안하다고 하시더라고요.

경기후에 기자들도 의아해서 본프레레 감독님한테 물어봤나 봐요. '다른 애들은 다 기회를 주는데 왜 이을용한테만 기회를 안 주는 거냐?' 그랬더니 본프레레 감독이 '너무 느려서 안 된다"고 말을 했다고 하더라고요. 할 말이 없었죠. 그래서 제가 어떤 기자 분한테 "제가 느려서 게임을 못 뛰는 거에요? 그럼 대표팀에 저보다 느린 애들도 많은데, 저보다 느린 선수들도 한 번 물어보지"라고 농담했던 적도 있었어요.

- 2005년 9월에는 딕 아드보카트 감독이 대표팀에 선임됐습니다. 그러면서 이을용 선수도 대표팀에 다시 선발되기 시작했지만 경기에는 좀처럼 출전하지 못했습니다. 혹시 2006 독일 월드컵을 못 갈 것이라고 생각하셨나요? 2002 월드컵과 달랐던 점은 무엇이었나요?

아드보카트 감독님이 오셨고 핌 베어벡이 코치로 있었어요. 저는 대표팀에 1년 넘게 못 들어가고 그랬으니까 아드보카트 감독님을 볼 기회가 별로 없었어요. 그 멤버로 가다가 핌 베어벡 코치님이 저에 대한 걸 많이 봐왔기 때문에 A매치 때 유럽에 있는 선수들을 다 불러서 테스트를 해보자고 그랬나 봐요. (홍)명보 형도 그렇게 제안했었고. 그러면서 첫 게임을 나갔고 게임 내용도 좋다 보니까 그 다음부터는 계속 대표팀에 들어갔죠.

2006 독일 월드컵 토고전에서 ⓒKFA 홍석균
- 2002 월드컵과 2006 월드컵은 어떤 차이가 있었나요?

2002년과 2006년은 분위기가 조금 달랐죠. 제 생각에는 팀을 리드해줄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했는데, 2006년에는 리드해줄 수 있는 사람이 없었어요. 선수들이 한 번 해보자 하는 의욕도 부족했고. 그러다 보니까 우리가 속한 조의 전력을 본다면 우리가 갖고 있었던 실력을 조금만 더 발휘했다면 16강에 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2006년에는 선수 개개인의 자존심이 너무 강했던 것 같아요. 그런걸 딱 휘어 잡아줄 수 있는 사람이 있었어야 했는데... 2002년에는 명보 형이 그런 걸 했었는데, 2006년에는 뭔가 모르게 그런 게 없었던 것 같아요.

대표팀은 다 자기 팀에서 에이스라는 선수들이 오기 때문에 쉽게 뭐라고 얘기는 못해요. 프로페셔널이기 때문에 각자가 알아서 해야지, 누가 얘기해서 들었으면 벌써 했겠죠. 근데 2006년에는 거의 하기는 열심히 했어요. 뭔가 모르게 안된 게 안타까웠지. 그 때 (최)진철이 형도 있었고, (이)운재 형도 있었고, (안)정환이, 저, (김)남일이도 있었지만 밑에 있는 선수들은 게임 못 뛰니까 밖에서 투덜투덜거리는 것도 있었고. 2006년에는 선수들이 조합이나 딱 뭉치는 응집력 그런 게 많이 없었던 거 같아요.

- 월드컵 사상 원정 첫 승을 거뒀던 토고전에서 선발 출장하셨습니다. 경기를 잘 하고도 전반 31분 선제골을 내주며 어려운 경기를 했는데요. 경기 중에 선수들의 분위기는 어땠나요?

토고전은 우리가 충분히 잡을 수 있었던 경기였던 것 같아요. 그런데 선수들이 첫 경기이다 보니까 너무 긴장을 많이 한 거 같아요. 토고전을 하면서 느낀 게 '한국 선수들은 일단 실점을 먼저 해야지 그 때부터 막 하려고 하는구나'라는 거에요. 실점하기 전에 그런 플레이를 보여줘야 되는데 항상 골을 먹고 나서 '에이, 모르겠다. 이판사판이다' 하는 식으로 해버리니까. 한국 선수들은 그 때 근성이나 투지가 그때 나오는 것 같아요. 그 전부터 그렇게 해야 되는데 항상 실점을 하고 나서 그렇게 하려니까 시간이 늦죠. 골을 넣고 비기든가. 2006년에는 그런 게 조금 있었던 것 같아요.

- 토고 전에서 이천수가 프리킥으로 동점골을 넣었는데요. 이을용 선수도 왼발 프리킥이 좋았습니다. 월드컵을 앞두고 가나와의 평가전에서 왼발로 골도 넣었고요. 직접 차고 싶은 생각은 없으셨나요?

있었는데 천수가 그랬어요. "형, 이건 내가 한 번 차 볼게."
그래서 제가 "그래. 너 차라"고 말했죠. 그 때 제가 찼으면 안 들어갔을 수도 있어요. 천수가 워낙 자신감이 있으니까 자기가 찬다고 한 것이기 때문에. 제가 차고 싶은 생각도 있었지만 워낙 천수가 완강하고 욕심이 있으니까 "너 차라" 했던 게 잘 된 것 같아요.

- 이후 안정환의 역전골이 터지기 전에 교체돼서 나오셨습니다. 두 번째 경기인 프랑스전에서도 후반전에 교체되셨는데요. 체력적인 문제가 있었던 건가요?

종아리 쪽에 타박상을 당해 별로 상태가 안 좋았어요. 그때 발목도 안좋아서 최주영 닥터 선생님한테 치료를 받으면서 운동을 병행했거든요. 운동장에서 뛰려고 하면 종아리 인대가 약간 부어있는 상태였거든요. 뛰려고 하면 근육이 올라오는 느낌이어서 "이래서 내가 되겠나" 했더니 최주영 선생님이 일단 운동만 병행하라고 하셨죠.

결국 나중에 핌 베어벡 코치님에게 최주영 선생님이 얘기를 했죠. 그랬더니 "왜 그걸 지금 얘기를 하냐" 그러니까 최주영 선생님이 자기가 보니까 참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랬다고 하셨어요. 결국 운동장 나가서 100%를 발휘하지 못하면 선수한테도 손해죠.

저는 2006년 월드컵을 하면서 손해를 많이 봤어요. 트라브존스포르에 있을 때는 프리미어리그 에이전트들이 와서 게임을 많이 봤거든요. 거기에서는 내가 좋은 모습을 보였고, 2006년 터키리그 끝나고 나서 대표팀에 선발되다 보니까 체력적인 문제도 있었고, 다리 상태도 안 좋았어요. 그러다 보니까 나의 실력을 100% 발휘하지 못했는데 에이전트들이 와서 "리그 때보다 몸 상태가 안 좋은 것 같다"고 하면서 왜 그런지 확인을 해보더라고요.

2006 월드컵에서 어느 정도 제 플레이만 보여줬으면 다른 팀으로 이적을 하려고 했거든요. 터키 리그를 끝나고 트라브존스포르에는 (세뇰) 귀네슈 감독이 오셨어요. 트라브존스포르에서는 2년 재계약을 하자고 했고, 저는 "다른 팀으로 가겠다"고 말하고 대표팀에 들어왔죠. 그리고 다른 팀을 알아보다가 서울로 돌아왔고. 터키리그에서 오라는 데는 있었어요. 베식타스에서 오라고 했었는데, 베식타스 갈 바에는 트라브존스포르로 돌아가죠. 그냥 '국내에서 마무리를 하자' 생각해서 한국으로 돌아왔어요.

2006 독일 월드컵 프랑스전에서 비에이라를 상대하는 모습ⓒKFA 홍석균
- 독일 월드컵 프랑스전은 역시 힘든 경기였습니다. 이을용 선수는 이 경기에서 티에리 앙리나 패트릭 비에이라, 지네딘 지단 같은 선수를 상대했는데요. 같이 뛰어보면서 가장 뛰어나다고 생각했던 선수는 누구인가요?

주눅들거나 그런 건 없었어요. 가장 뛰어난 선수는 (지네딘) 지단이죠. 볼 센스가 정말 대단한 것 같아요. TV에서 본 것보다 같이 게임을 해보니까 정말 볼을 잘 차더라고요. 볼을 잘 차는 선수들하고 뛰다 보면 '뒤에도 눈이 달렸구나' 하는 말이 저절로 나오게 돼 있어요.

(선수 생활 중 같이 뛰어본 선수 중에 가장 대단한 선수는 누구였나요?) 지단인 것 같아요. 그 당시에는 그 만한 선수가 없었던 것 같아요. 정말로 저렇게 볼을 예쁘게 잘 찰까. 지단도 볼을 예쁘게 차는 스타일에요. 게임 흐름이나 그런걸 보면서 '참 볼 쉽게 찬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죠.

- 강호 프랑스와 비기면서 당초 계획대로 토고에 승, 프랑스와 무승부를 거뒀습니다. 이제 스위스만 꺾으면 원정 최초 16강 진출이었는데요. 아쉽게도 스위스전에는 출전하지 않으셨습니다. 무슨 문제라도 있으셨나요? 중요한 경기였는데 젊은 선수들이 상당히 많이 출전해 의아했습니다.

제가 봐도 조금 의아했어요. 그 때 게임은 경험이 있는 선수들이 뛰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 때 체력적인 것 때문에 그런지 젊은 선수들을 많이 기용하더라고요. 나도 아드보카트 감독을 의아하게 생각했어요.

(종아리 상태는) 많이 나아진 상태였어요. 경기장 밖에서 어린 선수들이 "이럴 때 형이 뛰어야 되는데"라고 했는데 뜻하지도 않게 젊은 선수들이 많이 들어갔어요. 뛰는 양으로 승부를 하려고 한 건지 아니면 뭐 때문에 그런 건지. 그 경기 끝나고 나서 코칭 스태프끼리도 여러 의견이 있었을 것 같아요. 명보 형도 스위스전은 미드필드에서 리드해주는 선수가 있으면 충분히 좋은 게임을 할 수 있을 거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했나 보더라고요. 스위스가 워낙 잘하는 팀이긴 하지만 아쉬움이 많이 남았죠.

- 스위스전 두 번째 실점은 많은 논란이 있었는데요. 당시 경기장 분위기는 어땠나요? 수긍하는 분위기였나요?

운동장에서 심판이 인정을 했기 때문에 그냥 수긍을 하고 넘어가는 상황밖에 안 됐어요. 크게 어필을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 두 골을 먹고 나서는 선수들도 망연자실했죠. '아~ 졌구나' 그랬죠. 끝나고 나서 애들이 허탈감도 있었고 그런 게 조금 많았어요.

- 혹시 어린 선수들이 게임을 못 나가면 투덜투덜댄다고 했는데, 그런 영향으로 스위스전에 어린 선수들이 나간 것은 아닌가요?

글쎄요. 그런데 다 그래요. 누가 게임 뛰고, 누가 못 뛰면 다 투덜투덜하게 되어 있거든요. 리그에서도 마찬가지에요. 그 때 젊은 선수들은 16강에 들어야만 병역혜택이 있었어요. 아드보카트 감독님도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나 생각해요.

실질적으로 아무리 우리 선수들이 유럽에서 뛰고 있다고 해도 실력차는 나거든요. 스위스와 게임을 할 때도 스위스가 더 나았죠. 모든 면에서 우리가 졌으니까요. 투지나 정신력 면에서 거의 지고 들어가는 거죠.

- 월드컵을 두 차례나 경험한 선배로써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자기가 갖고 있는 실력을 운동장에서 발휘만 해준다면 아무리 좋은 팀이라도 해볼 수 있을 거예요. 우리 한국 선수만의 장점이 있으니까 선수들이 마음 편하게 운동장에서 보여주면 대등한 경기를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안방에서 말고 원정에서 다시 한 번 16강에 들어야지 '한국축구가 이제는 정말로 강하구나'라는 것을 전세계에 알릴 수 있어요. 지금 젊은 선수들 보면 예전보다 볼은 참 잘 차요. 유럽에서도 팀에서 인정받는 그런 선수들이 있기 때문에 유럽파 선수들과 국내 선수들이 콤비네이션만 잘 맞추면 충분히 아르헨티나나 그리스, 나이지리아랑 붙어도 충분히 잘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 이을용 선수 하면 소위 '을용타'라 불리는 2003년 동아시아선수권 중국전 퇴장이 떠오르는데요. 이번 동아시아 대회에서 우리가 중국에 0-3으로 진 게 이을용 선수와 같은 정신력이 없어서 졌다는 말도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모르겠어요. 저는 게임을 못 봐서. 그때 강원 FC팀이 중국 쿤밍으로 전지훈련을 갔었거든요. 0-3으로 졌다고 해서 저희도 깜짝 놀랐어요.

(대표팀이 투지를 잃었다고 생각하시나요?) 그렇지는 않을 거에요. 개인적으로 컨디션이 안좋았거나 아니면 우리 대표팀 전술이나 선수들이 잘 안됐던가 그런 거지. 지금 봐서는 그렇게 크게 문제 될 게 아닌 거 같아요.

축구라는 경기가 계속 이길 수는 없는 거거든요. 잘 가다가도 한 게임 질 때도 있고. 그게 축구이기 때문에 중국전에 졌다고 해서 선수들 정신력을 탓할 문제가 아닌 것 같아요. 동아시아 대회에서 성적을 못내서 얘기가 나온 것 같은데 멀게 봐야죠. 조금 있으면 월드컵이 시작되니까 그때까지는 질책하고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강원에서의 이을용 ⓒ이상헌
- 사람들은 이을용 선수의 성공과정을 '연습생 신화'라고 말합니다. 지금까지의 선수 생활을 뒤돌아 보신다면요?

정말로 앞만 보고 열심히 했던 것 같아요. 어금니 꽉 물고 운동만 열심히 했던 것 같아요. 부천 SK에 들어와서도 거짓말이 아니라 1년은 야간 운동을 계속 나갔으니까요. 그때는 '1년 뒤에 내가 베스트 멤버로 앉아야 되겠다' 생각했어요. 그런데 시즌 초반부터 게임을 뛰게 되고 경기를 하면서 '운동 진짜 열심히 해야 되겠다'고 느꼈어요. 남들이 하지 않는 새벽에 일어나서 운동도 하고, 저녁에도 운동을 정말 많이 한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까 '노력한 만큼 그 대가를 받는다'는 말이 맞는 것 같아요. 지금으로 봐서는 정말로 축구를 잘 선택했던 거 같아요.

-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목표에 대해서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목표는 정말로 강원 축구가 잘 됐으면 좋겠어요. 제 고향에 프로팀이 생겼기 때문에 강원 축구가 잘 되는 모습을 봤으면 좋겠고, 강원도에서 운동을 마무리 하게 되면 정말 좋은 지도자가 되는 게 꿈이에요. 선수들 육성하면서 공부도 하고 그래야 될 것 같습니다. 기회가 되면 유럽에 나가서 유럽 축구 접하면서 공부도 해보고 싶고. 그 다음은 차근차근 계획을 짜야 될 것 같습니다.

- 긴 인터뷰 감사 드립니다. 강원FC에서 좋은 모습 보여주시길 바라겠습니다.

공식질문1. 축구는 (내 인생의 동반자)다.

(아내가 서운해 하시겠네요?) 아니에요. 서운해도 어쩔 수 없어요. 와이프한테도 얘기한 게 뭐냐면 "축구가 내 직업이고, 축구가 내 인생을 같이 살아줬기 때문에 축구는 나의 인생의 동반자다. 내가 운동을 그만 두더라도 또 이 바닥에서 내가 선수들을 육성하고 그럴 것이기 때문에, 어차피 축구라는 것은 나의 동반자이기 때문에 서운해도 어쩔 수 없다"고 말했어요. 집사람도 다 이해해줄 거에요.

공식질문2. 월드컵은 (나의 꿈)이다.

축구선수라면 월드컵은 꿈이죠.
(지도자로서도 월드컵을 목표로 하고 계신가요?) 그런 생각은 다들 갖겠죠. 좋은 지도자가 돼서 선수들 잘 가르치고 팀을 잘 만들면 그건 자연스럽게 뒤에 따라오는 거기 때문에 거기까지는 생각을 안 해봤어요. 지금 당장은 강원FC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되도록 만들고 싶은 게 제 생각이죠.

인터뷰= 손춘근 / 영상= 정민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