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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준희 샤우트풋볼218] 기성용, 차두리의 팀이 정말로 강했을 때!

정민건TV 2011. 6. 20. 11:26

 

[ⓜ 한준희 샤우트풋볼218] 기성용, 차두리의 팀이 정말로 강했을 때!

- 축구 역사상 최고의 팀은 어디일까 (18) -

 

(샤우트풋볼 게재 순)
1. 과르디올라의 바르셀로나
2. 미켈스의 아약스
3. 사키(그리고 카펠로)의 밀란
4. 세베스의 무적 헝가리
5. 1970 브라질
6. ‘유럽 5연패’ 레알
7. '토털풋볼' 네덜란드
8. 베켄바워의 바이에른
9. '카테나치오' 인터밀란
10. 페이슬리의 리버풀
11. 플라티니의 유벤투스
12. '조가 보니또' 산토스
13. '더 머신' 리베르
14. 디 스테파노의 미요나리오스
15. '갈락티코' 초기의 레알
16. '골든 트리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17. 크라이프의 '드림팀' 바르셀로나
18. 구트만의 벤피카
19. 지코의 플라멩고
20. '마스터' 텔레의 상파울루
21. 1948 잉글랜드
22. '원더 팀' 오스트리아
23. 1999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24. 리피의 유벤투스
25. ‘골든 제너레이션’ 아약스
26. '월드컵 2연패' 브라질
27. 지단의 프랑스
28. 마테우스의 서독
29. '원조 챔피언' 우루과이
30. ‘토털풋볼 계승자’ 스페인
31. ‘황금 미드필드’ 1982 브라질

 

(지난 회에 이어...)

 

32. ‘리스본의 사자’ 셀틱 (1965-1970)

- 1966, 67, 68, 69, 70, 71, 72, 73, 74 스코틀랜드 리그 우승. 1966 컵위너스컵 4강. 1967 유러피언컵(챔피언스리그) 우승. 1970 유러피언컵 준우승. 1972, 1974 유러피언컵 4강.

 

- 특히 1967년에는 참가한 모든 대회에서 우승하는 금자탑. 유러피언컵, 스코틀랜드 리그, 스코틀랜드 컵, 스코틀랜드 리그 컵, 그리고 글래스고 컵.

 

- 67년 셀틱의 유럽 제패는 축구사적으로 작지 않은 의미가 있다. 55년 유러피언컵 시작 이후 레알 마드리드(6회), 벤피카(2회), AC밀란(1회), 인터밀란(2회)만이 우승을 차지함으로써 그 때까지 유러피언컵은 라틴 유럽의 전유물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셀틱은 사상 첫 번째로 서유럽 북부에서 우승컵을 가져간 팀이 되었고, 이는 유럽 클럽 축구의 물줄기를 북부로 돌려놓은 계기가 됐다. 스코틀랜드 클럽 셀틱의 우승을 시작으로 1984년까지 18시즌 동안 유러피언컵은 잉글랜드, 네덜란드, 서독 클럽들의 무대가 된다(이 기간 중 라틴 유럽의 우승은 69년 AC밀란이 유일).

 

- 또한 셀틱은 ‘영국’ 클럽으로서 유럽 챔피언이 된 첫 번째 클럽(잉글랜드 클럽으로는 이듬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최초)으로 기록됨과 더불어, 당시의 우승은 지금에 이르기까지도 유일무이한 스코틀랜드 클럽의 유럽 챔피언 기록으로 남아있다.

 

- 1967년 유러피언컵 결승전 셀틱과 인터밀란의 대결은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역사를 통틀어서도 흥미만점의 결승전으로서 오래도록 기억되는 한 판. 유럽 축구사의 명승부들 가운데 하나. 경기력 면에서 매우 강렬한 인상을 던져준 셀틱이었다.

 

- 축구사의 전설적 명장 엘레니오 에레라가 이끄는 인터밀란은 ‘카테나치오’를 집대성한 팀이자 유러피언컵을 이미 두 차례나 제패했던 당대의 강호였기에 틀림없이 셀틱보다 월등히 유력한 우승후보였다. 결승전의 장소 또한 포르투갈의 리스본이었으니 셀틱에겐 별반 유리함이 없는 곳.

 

- 경기에 돌입해서도 셀틱은 경기 시작 7분 만에 다소간 아쉬운 페널티킥을 허용했다. 인터의 스타 산드로 마촐라가 침착하게 골을 성공.

 

- 하지만 이 실점에도 불구하고 셀틱은 ‘카테나치오’ 스타일의 인터를 경기 내내 맹렬하게 두들겼다. 셀틱의 공격 축구는 토털풋볼에 가까운 것이었으며 결국 셀틱은 62분 동점골, 84분 역전골에 성공함으로써 부단한 노력에 걸맞은 결과를 이끌어냈다. 셀틱의 용감한 공격이 수비 숫자를 극도로 많이 두면서 역습을 꾀했던 강호 인터에게 끝끝내 항복을 받아낸 것. 이 셀틱에게 붙여진 별칭이 바로 ‘리스본의 사자’다.

 

- 이 경기에서 셀틱은 무려 42개의 슈팅을 터뜨렸는데 절반 이상이 모두 골문을 향한 유효 슈팅이었다. 두 개의 슈팅이 골대를 때렸고 13개는 골키퍼 지울리아노 사르티에 막혔다. 골에 가까운 장면들이 계속 터져 나왔고 골키퍼 사르티는 끊임없이 몸을 던져야 했다. 반면 인터의 전체 슈팅 숫자는 단 5개에 불과했다.

 

- 이 시절 셀틱을 이끌었던 감독 조크 스틴은 현대 축구의 스코틀랜드 출신 4대 명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4인방은 매트 버스비, 빌 샹클리, 알렉스 퍼거슨, 그리고 조크 스틴이다.

 

- 셀틱의 우승 및 경기력이 더욱 빛나는 이유는 당시의 셀틱 멤버가 모두 글래스고 반경 30마일 이내에서 태어난 선수들이었다는 사실. 진정한 지역 토박이 선수들만으로 최강의 경기력을 선보였던 셀틱이었다.

 

- 당시 선수들 가운데 첫 머리에 언급되어야 하는 인물은 ‘셀틱 역대 최고의 선수’로 꼽히곤 하는 지미 존스턴이다. 측면 공격수 존스턴은 상대 수비를 농락하는 빼어난 드리블 능력과 기민함을 보유했던 선수. 그의 기술적 플레이와 천재성은 셀틱 전체를 끌어올리고 고무시키는 힘이었다. 인터와의 결승전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열린 레알 마드리드와 셀틱의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 헌정 경기(1967년 6월 7일)’에서도 존스턴의 기술은 베르나베우의 관중들을 열광시켰다(경기 결과도 셀틱의 1-0 승).

 

- ‘위대한 주장’ 중앙 수비수 빌리 맥닐, 드리블 능력에 득점력까지 겸비했던 정상급 측면 수비수 토미 게멀 또한 언급될 만한 주요 선수들.

 

- 이후에도 셀틱은 1970년 다시 한 번 유러피언컵 결승에 오르지만 네덜란드의 페예노르트에 연장 접전 끝에 패퇴한다. 72년 준결승에서는 인터와의 재회가 이루어지기도 하는데, 이번에는 인터가 승부차기로 셀틱을 누르고 결승행을 이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