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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민건 (ⓜing)
[ⓜ 신문선 축구담론19] 기성용을 키워낸 축구인 아버지 기영욱
'기성용 선수가 축구인 아버지를 두고 있다' 는 사실을 미디어에서 많이 접하셨을 겁니다. 오늘은 축구 선수의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를 하죠.
기성용 선수의 아버지 기영욱씨는 고종수, 윤정환 그리고 마스크맨으로 유명했던 수비수 김태영과 국가대표 골키퍼로 활약하고 있는 김영광을 포함해 많은 국가대표 선수를 길러낸 금호고등학교의 축구 감독으로 활동했습니다. 기영욱씨는 국민은행 선수 시절, 센터 하프로서 아주 높은 사기와 헤딩능력을 갖췄었으며 상대팀 스트라이커들을 꽁꽁 묶는 마크맨으로도 그 명성이 자자했습니다.
어릴 때 발견한 기성용의 축구 소질
기영욱씨가 기성용을 축구 선수로 만든 계기가 상당히 재밌습니다. 현재 기영욱씨는 금호 고등학교를 떠나 광양 제철 고등학교의 체육 교사로 재직하고 있습니다. 기성용 선수가 초등학교 3학년일때 광양 제철 중학교 축구부를 방문하게 됩니다. 그 때 입학을 앞두고 있던 신입 선수들이 게임 중이었는데 기영욱씨가 아들이 함께 게임을 할 수 있도록 후배인 감독에게 부탁합니다. 경기 중 패널티 지역에서 프리킥을 얻게 되었고 어린 기성용이 키커로 나서게 됩니다. 공이 어린 기성용보다 커 보이던 그때 기성용이 공을 오른발로 휙 감아 차는 것이었습니다. 볼은 골문 모서리로 적중했고, 이것을 본 기성용의 아버지는 기성용 선수를 축구 선수로 키우겠다고 결심합니다. 그 후 모진 마음을 먹은 기영욱씨는 어린 기성용을 호주로 축구 유학을 보냅니다. 초등학교를 갓 졸업한 아들이 얼마나 어리고 여렸을까요. 하지만 축구에 대한 열정과 도전 의식이 더 중요했습니다.
축구 유학, 굳이 호주였던 이유
축구 유학 비용이 한 달 300만 원, 1년이면 3000만 원을 훌쩍 넘었습니다. 그 당시, 축구 유학은 브라질이 대세였습니다. 하지만, 기성용 선수를 호주로 보낸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는 환경이 좋은 곳에서 축구를 마음껏 하길 바라는 점과 또 하나는 축구 유학을 다녀온 후 혹시 실패하게 되더라도 영어만 배워온다면 축구 외의 다른 직업을 가질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한 기대감이었습니다. 축구 에이전트나 축구 행정 등의 직업에 영어는 필요한 조건이므로 호주에서 유학시 영어는 해결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있었던 겁니다. 그 당시 일반적인 문화와 판단을 뒤로한 것이었죠.
떠날때 " 아버지인 나는 국가대표로서 팬들의 사랑을 받지 못했다. " 라고 아버지로서 부탁합니다. 기성용 선수는 그의 당부를 가슴에 새기고 호주로 떠나 5년 동안 영어공부와 축구공부를 열심히 합니다.
아버지의 뜨거운 아들 사랑
5년간의 축구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기성용 선수는 금호고등학교에서 잠시 활동하다 FC 서울에 입단하게 되죠. 그때가 17살이었습니다. 불과 2년 만에 기성용 선수는 한국 최고의 스타 선수로 발돋움 하게 됩니다. 늘 긍정적이었고, 분명한 꿈이 있었습니다. 그 꿈은 바로 초등학교를 마치고 호주 유학길에 올랐을 때 아버지가 당부했던 한국 국가대표입니다. 아버지가 이루지 못했던 국가대표 선수에 대한 한을 풀어 달라는 당부를 실현하고자 남보다 부지런히 그리고 끊임없이 운동장에서 매일 훈련했던 겁니다. 이런 기성용 선수의 성공 뒤에는 아버지의 열정과 자식에 대한 사랑이 있었습니다.
기성용 선수의 아버지는 자신의 꿈을 아들을 통해 이뤘습니다. 지난 한해, 아버지로서 가장 행복했을 사람은 기영욱씨가 아닐까요.
예전에 기영욱씨는 아들에게 마음이 아프거나 서운했던 점이 있느냐고 물었던 적이 있습니다. 당연히 없을거라 생각했지만, 한때 성숙하지 못한 발언으로 미니홈피를 통해 집중 공격을 받은 기성용 선수에게 서운한 감정을 느꼈다며 축구 선수로서 더욱 성숙해지란 당부를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요즘도 끊임없이 축구 선수로 가야 할 숙명의 길을 강조한다고 합니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덧붙이겠습니다. 기성용 선수 집이 어디인지 아시나요? 광양 백운산 중턱의 가파른 길에 기성용 선수가 FC서울 계약 때 받았던 2억 원을 그대로 투자하여 아버지가 지 직접 집을 지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집의 마당에 조그마한 축구장을 만들었습니다. 바로 자신의 아들이 뛸 수 있는 공간을 만든 것이죠. 기성용 선수는 새해에도 아버지와 함께 그 운동장에서 땀 흘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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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성용 선수는 축구인과 팬들로부터 사랑받는 한국축구의 재목으로 훌쩍 자랐습니다. 자식에 대한 기대와 애정이 올 시즌 기성용 선수의 가슴에 뜨겁게 전달되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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