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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준희 샤우트풋볼240] 마라도나 전설 가능케 한 동료들은 누구?

정민건TV 2011. 9. 27. 10:20

 

[ⓜ 한준희 샤우트풋볼240] 마라도나 전설 가능케 한 동료들은?

- 마라도나와 나폴리 전설 (하) -

 

“마라도나가 나폴리 사람들의 기도에 응답했다”고 할 정도로 마라도나는 나폴리 사람들의 신앙과도 같은 존재였다. 마라도나의 도착이 나폴리를 다른 차원으로 끌어올렸으며, 나폴리 전술의 핵심도 분명 마라도나였다.

하지만 1986년의 아르헨티나가 그러했듯이, 나폴리 역시도 마라도나 이외의 다른 좋은 선수들을 보유하고 있었다. 마라도나 이외의 아르헨티나 멤버들인 네리 품피도, 호세 루이스 브라운, 오스카 루게리, 세르히오 바티스타, 호르헤 부루차가, 호르헤 발다노 등의 능력이 경시되지 말아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마라도나와 더불어 활약했던 나폴리 다른 동료들도 경시될만한 수준이 결코 아니다.

결국 마라도나가 속했던 팀들은 딱 ‘절반의 의미’에서만 “마라도나의 원맨 팀”으로 해석되어야 하며, ‘또 다른 절반의 의미’에서는 “마라도나의 재능이 적절히 활용될만한 좋은 팀에서 마라도나가 뛰었다”고 해석될 수 있다. 마라도나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아르헨티나나 나폴리의 전설은 불가능했을 공산이 크지만, 그렇다고 마라도나가 나쁜 팀들에서 뛰었던 것은 결코 아니라는 의미다.

 

* 브루노 지오르다노 - 공격수 (나폴리 1985-1988) / 이탈리아 국가대표 1978-1985 (13회 1골)
1987/88시즌 카레카의 도착으로 완성된 ‘Ma(마라도나)-Gi(지오르다노)-Ca(카레카)’ 트리오의 한 명. 1978/79시즌 세리에 A 득점왕. 나폴리의 ‘MaGiCa’는 지오르다노가 팀을 떠나면서 한 시즌 만에 해체되지만, 지오르다노의 자리는 안드레아 카르네발레에 의해 대체되며 공격의 ‘삼각편대’가 유지된다.
절묘한 오른발 킥 능력을 지니고 있었고 왼발도 곧잘 사용했다. 위치 선정 및 기술도 훌륭해 70년대 후반 이탈리아를 대표할만한 젊은 스트라이커로 각광받기도 했다. 하지만 1980년 승부조작 스캔들로 체포되었고 징계를 받아 최고의 전성기를 날려버린 의미가 있다. 고향 클럽 라치오의 강등과 더불어 나폴리 유니폼을 입게 된다. 라치오 선배 조르지오 키냘리아와 함께 라치오의 전설을 논할 때 빠지지 않고 언급되곤 하는 인물.

 

* 카레카 - 공격수 (나폴리 1987-1993) / 브라질 국가대표 1982-1993 (60회 29골)
브라질이 월드컵과 지독하게 인연을 맺지 못하던 시절의 공격수. 1987년 나폴리에 도착해 ‘MaGiCa’ 트리오의 일원이 된다. 위치 선정이 훌륭했고 드리블 능력, 기술적 측면도 갖추고 있었다. 발과 머리에 모두 능했다.

 

* 페르난도 데 나폴리 - 우측면 미드필더 (나폴리 1986-1992) / 이탈리아 국가대표 1986-1992 (54회 1골)
‘삼각편대’ 공격자원들 이외에 나폴리의 공격에 적잖이 기여했던 사나이. 스태미너, 활동량, 성실성이 뛰어난 선수였다.

 

* 치로 페라라 - 수비수 (나폴리 1984-1994) / 이탈리아 국가대표 1987-2000 (49회)
장구한 선수 경력을 나폴리와 유벤투스 두 클럽에 절반씩 바쳤다. 유벤투스 감독을 거쳐 현재는 이탈리아 21세 이하 감독.

 

* 안드레아 카르네발레 - 공격수 (나폴리 1986-1990) / 이탈리아 국가대표 1989-1990 (10회 2골)
지오르다노의 뒤를 이어 공격의 ‘삼각편대’를 구성했다. 폭넓은 움직임과 민첩함을 지닌 스타일이었으나 1990 월드컵 이탈리아 대표 팀에서만큼은 결정력 문제를 드러내며 살바토레 스킬라치에 자리를 내주고 만다.

 

* 알레망 - 수비형 미드필더 (나폴리 1988-1992) / 브라질 국가대표 1983-1990 (39회 6골)
1986. 1990 월드컵에서 활약한 전투적인 수비형 미드필더. 나폴리의 성공에 큰 몫을 했다.

 

* 지오바니 프란치니 - 좌측면/중앙 수비수 (나폴리 1987-1994) / 이탈리아 국가대표 1986-1988 (8회)

* 살바토레 반니 - 중앙 미드필더 (나폴리 1984-1988) / 이탈리아 국가대표 1981-1987 (41회 4골)

 

* 지안프랑코 졸라 - 처진 공격수 (나폴리 1989-1993) / 이탈리아 국가대표 1991-1997 (35회 10골)
‘마라졸라’라 불리며 마라도나의 후계자로 지목받았던 재능만점 공격수. 발의 방향은 다르지만 마라도나의 프리킥을 보며 자신의 프리킥을 연마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마라도나의 나폴리 시대 말기에 마라도나, 카레카와 더불어 공격의 삼각편대로 나서기도 했다. 마라도나가 팀을 떠난 이후에도 카레카와 공격 콤비를 이뤘다.
실력에 비해 이탈리아 국가대표로서는 그리 행복하지 못했지만, 잉글랜드 첼시의 팬들에겐 지금에 이르기까지도 최고의 실력, 최고의 귀감으로 칭송받는 인물이다.